그 청년의 집 부엌 시계는 2시 30분에 멈춰버렸다

<부엌 시계 > 볼프강 보르헤르트

부엌 시계 / - 볼프강 보르헤르트 -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작품 ‘부엌 시계’의 주인공은 노인처럼 보이는 스무 살 청년이다. 청년은 2시 30분을 가리키는 동그란 접시모양의 부엌 시계를 들고 나와서 공원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가장 기막힌 일은 하필이면 시계가 2시 30분에 머물러 있다는 거예요”

낮 2시 30분이 아닌 밤 2시 30분. 청년에게 그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털 스웨터를 입고 빨간 목도리를 두른 맨발의 엄마가 부엌 타일 위에 서서 시린 발을 비비며 늦게 들어온 아들의 밥을 차려주던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또 이렇게 늦었구나.” 오직 그 말씀만 하시고 밥을 차려주시고 청년은 너무도 당연하게 그 밥을 받아먹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한순간 정지되어버렸다. 시간은 2시 30분에 시계는 멈추어있는데 마땅히 있어야 할 모든 것은 사라지고 없다. 오직 희고 푸르고 둥근 접시모양 시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겉은 젊으나 이미 늙어버린 듯한 청년의 말을 들으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생각만을 한다. 자신의 신발을 내려다보거나 자신의 유모차를 들여다보면서 청년의 슬픔은 오직 청년의 것이라는 태도라는 보인다.


우리는 항상 시간과 기회가 영원하리라고 생각한다. 불행한 일은 절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설령 그 일이 벌어지더라도 나와 가족의 삶은 큰 변화가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전쟁'이라는 불가항력적인 불행은 청년 젊은이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고, 숫자 2시 30분에 멈춰버린 시계만을 남겨주었다. 아마도 그는 평생 2시 30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시린 발을 비비며 늦은 저녁밥을 챙겨주시던 어머니, 따뜻한 집은 흔적조차 없지만 청년은 이 모든 것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한다. 살아남았기에 기쁜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기에 감당해야만 하는 슬픔의 무게는 무겁다.


공원의 사람들은 청년의 불행에 겉으로는 귀 기울이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무관심하다. 왜냐하면 전쟁이 포화 속에서 그들은 간신히 살아남은 자들이기 때문이고, 청년이 반복해서 말하는 2시 30분은 그들에게는 무의미한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마지막 문장을 ‘그의 옆에 앉은 남자는 자기 신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신을 쳐다보지 않았다. 끊임없이 천국이란 단어만을 생각하고 있었다’로 끝냈다. 자기가 신고 있는 신을 내려다는 보지만 쳐다보지는 않는 남자. 끊임없이 현실에는 없는 '천국'이란 단어만을 떠올리고 있다. 우리가 신는 신발은 내려다보고 제대로 쳐다보아야 볼 수 있는 현실의 것이고, 신 (god)은 올려다보아야 하는 천상의 것이다. 전쟁 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오직 머릿속으로만 다가갈 수 없는 천국을 꿈꾸고 있다.


어느 누구도 청년이 손에 든 부엌 시계의 멈춰버린 숫자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 누구의 집이든 포화로 멈춰버린 시계가 한 두 개는 있게 마련일 것이고 저마다의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을 테니까. 청년의 삶도 2시 30분에 멈춰버렸지만... 그건 청년에게만 닥친 불행이 아니다. 청년에게 있어 전쟁 전의 밤 2시 30분이라는 시간은 어머니의 온기와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천국의 시간이었지만 전쟁 후 청년 혼자서 맞이하는 밤 2시 30분은 고통과 공포의 시간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기억의 지속> 이 떠오른다. 치즈처럼 녹아버린 시계들은 저마다 제각각의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살아있는 것은 아무도 없는 황량한 배경 속. '죽은'시계들이 아무렇게나 녹아내린다.

기억이 지속된다. 인간의 기억 속. 어떤 특정 시간들은 기억 속에서 재생되고 지속된다.

청년의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의 집 부엌 시계는 2시 30분에 죽어버렸다. 죽은 시계를 안고 이미 마음이 먼저 죽어버린 청년이 어머니와의 기억을 지속시키려 애쓴다. 털 스웨터를 입고 빨간 목도리를 두른 맨발의 엄마가 부엌 타일 위에 서서 시린 발을 비비며 늦게 들어온 아들의 밥을 차려주던 그 시간. 그 기억의 지속.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단편 < 부엌 시계>는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상실한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은 우리들의 삶에서 수없이 많이 일어난다. 2시 30분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정지되어버린, 회복 불가능한 현실. 불가항력적인 사건 속에서 청년은 노인처럼 늙어버렸다. 살아남은 자에게 '죽은'시계는 '죽은'이들을 기억하게 하는 고통의 상징이다.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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