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방식으로 역사를 기억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재탄생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모든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어떤 방식으로 역사를 기억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재탄생될 수 있다


공동체에 깊이 각인된 역사의 기억이라면 그것이 좋든 싫든 전부 되새겨야 한다. 모든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 백종옥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은 역사를 가장 예술적으로 기억하는 도시 베를린의 공공 미술에 대한 백종옥의 사랑고백이다.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에 소개된 10곳의 장소는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다. 어떤 한 도시를 기억하는 방법은 도시 안에 자리 잡은 조형물들과의 마주침이고 이 조형물들은 박제된 것이 아니라 현대를 사는 이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힘을 지닌다. 저자 백종옥은 유학시절 만난 조형물들을 다시 기억하며 16년 동안 몰래한 사랑을 이 한 권의 책에 풀어놓고 있다.


기념조형물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에 설치되어야 하며 권위적인 방식이 아닌 도시에 스며드는 방식으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룰 때 설득력을 지닌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극 과잉의 현대 도시에서 사람들에게 스며들지 못하고 겉도는 조형물은 정체성과 무관한 말초적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기념조형물은 뜻하는 독일어는 ‘뎅크말’(Denkmal)인데 ‘한 번 더 생각하게 보게 하는 표시’라는 의미다. 경고의 의미가 강한 조형물은 ‘만말’(Manmal), 존경의 의미가 강한 조형물은 ‘에레말’(Ehrenmal)로 구분되어 있다. 이 책에서 지정한 10곳의 장소 중 노이에바헤 케테 콜비츠 조각상은 1차 대전 때, 도서관, 홀로코스트 추모비, 그루네발트역 17번 선로, 슈타우펜베르크 거리, 실슈트라세 정류장은 나치집권기, 체크포인트 찰리, 베를린 장벽,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는 2차 대전 후 동서독 분단의 역사를 담고 있다.


노이에바헤는 전쟁의 비극을 묵상하는 신위 병소다. 아들과 손자도 전사한 아픔을 지닌 조각가 케테 콜비츠는 시간이 정지된 듯한 텅 빈 공간에 피에타 형태의 조각상을 제작했다. 죽은 아들은 안은 어머니 머리 위로 둥근 창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이 들어온다. 최소한의 요소로 이루어진 묵상 공간이다.

베벨 광장 지하에는 가로 세로 각 120cm 정사각형 투명 유리로 된 미하 울만의 ‘도서관’이 있다. 책들의 화형식이 벌어진 바로 그 장소 지하에 설치된 경고의 조형물로 침묵과 정적으로 책들의 묘지를 형상화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그림자가 투명 유리를 통해 도서관의 빈 책장에 아른거릴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한다.

“낡은 것이 불타고 있다. 새로운 것은 우리 각자의 심장의 불꽃에서 다시 날아오른다”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는 1933년 5월 10일 밤 11시 저자의 이름을 부르며 책들을 불 속에 던져 넣었다. 많은 학자, 예술가, 작가들은 분서 명단에서 누락된 것을 도리어 수치스럽게 여기며 ‘나를 태우라’ 외쳤다. “그것은 단지 서막에 불과하다. 책을 불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사람도 불태우게 된다.”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가 적힌 동판이 비극적인 역사를 미리 암시하는 듯하다. 도서관을 땅 속 깊이 설치한 것은 치유되지 않은 흉터를 묻는다는 의미이면서 감춰진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자는 의미를 품는다고 할 수 있다.


코라베를리너 거리에는 침묵 속에 사라져 간 무명씨들을 위한 거대한 석관묘들이 있다. 홀로코스트 희생 유대인 600만 명을 추모하기 위해 불규칙적인 경사지대에 2711개의 추모비가 세워졌다. 나치의 주요 관청이 포진돼있었던 베를린의 심장부에 거대한 추모비가 자리 잡은 것은 과거를 철저히 기억하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다짐으로 보인다. 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간격(0.95m)으로 되어있는데 출입구도 따로 없고 중심과 주변의 구분 또한 없다. 추모의 장소이자 계몽의 장소, 만남의 장소이며 홀로코스트 흔적을 현재로 끌어내는 성찰의 장소라 할 수 있다.


그루네 발트역은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악명 높은 곳 중 하나였다. 죽음의 수용소로 추방된 이들을 추모하는 추모비가 17번 선로를 따라 양쪽 승강장 바닥에 설치되어있다. 기념조형물로서는 최소한의 형태를 취하면서 역사적 장소성을 보존하고 있다. 발아래를 응시하게 함으로써 자동적으로 애도의 묵념을 유도한다. 길이 180m 높이 3m의 ‘추방된 유대인을 위한 경고의 기념조형물’은 콘크리트 벽에 인간의 형상을 음각화한 작품이다. 갈라진 콘크리트 벽은 일상이 파괴된 인간 군상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준다.


작은 역사들을 위한 길바닥 추모석 ‘슈톨퍼슈타이네 프로젝트’는 추방하거나 살해한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군터뎀니히가 베를린 전역에 설치했다. 슈톨퍼슈타인은 ‘걸려 넘어지다’(스폴테른)과 ‘돌’(스테인)의 합성어다. 길바닥 추모석은 나치에 의해 희생된 이들이 망각되는 것을 막아주는 일종의 걸림돌이다. 가로 세로 10cm의 작은 돌에 개인의 역사가 압축되어있다.

<지크프리트 베르너하우스도르프카/이곳에 살았음

/1905년생/1943년3월1일 추방/ 아우슈비치 학살>

익명성이 아닌 개인의 거주지 앞에 설치된 추모석은 역사를 매우 구체적으로 실증하고 기억하는 작업이다. 전쟁 중 평범한 개인의 운명이란 대부분 경시되기 마련인데 개인의 역사를 발굴하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벤들러 블록에는 에리히로이슈가 1979~1980에 설치한 기념비가 있다. 헤닝 폰 트레스코 대위.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등은 히틀러의 집권에 반감을 품고 반 나치 운동을 전개하면서 히틀러 암살을 주도했으나 실패했다.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청동상은 비록 수갑을 차고 얼굴엔 고뇌가 서려있지만 당당한 모습이다. 수직 청동상 주변의 수평 동판에는 “그대들은 불명예를 참지 않았습니다. 저항했습니다. 자유와 정의와 명예를 위해 뜨거운 생명을 바쳐 그대들은 위대하게 영원히 깨어있는 회개의 표시를 했습니다.”라고 적혀있다. 리하르트샤이베의 고전 조각과 에리히로이슈의 현대 조각이 공간을 구성하여 방문객들을 벤들러 블록 역사의 안마당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실슈트라세 정류장은 유대인 이주 전문가.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아이히만을 기억하는 정류장이다. 아무 생각 없는 근면 성실함이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를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 설명했다. “왜 이 정류장이 경고의 장소인가?”라는 긴 울림을 지닌 짧은 문구가 정류장에 있다. 정류장에 머무는 이들이 잠시라도 과거를 기억하자는 취지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프리드리히 거리 43-45에는 냉전을 기억하는 체크포인트 찰리 검문소가 있다. 체크포인트 찰리는 동서 베를린 경계에 위치해있으며 연합군과 외교관 외국인들에게만 통행이 허락된 검문소였다. 물리적 심리적으로 동서 분단을 상징하는 장소다. 광고판 형식을 차용한 프랑크 틸의 ‘빛 상자들’은 개별 병사의 모습을 통해 냉전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베를린 마테 구역의 베르나워 거리는 분단의 부조리가 첨예하게 드러난 곳이다. 1961년 8월 13일 베로나 워 거리의 도로는 서베를린의 베딩 구역에 남쪽의 집들은 동베를린의 마테 구역에 편입되었다. 장벽은 베를린 시민의 평범한 일상을 순식간에 파괴했다. 장벽을 사이에 두고 목숨을 건 탈출이 빈번이 일어났고 138명이 사살되었다. 독일 통일 후 1.5킬로 미터 가량의 베르나워 거리 일대는 추모공원으로 탈바꿈했고 장벽의 일부, 국경 보안 시설의 일부는 기념조형물로 보존되었다.

1968년부터 28년간 베를린을 동서로 양분하고 서베를린을 고립시킨 3.6m의 콘크리트 장벽은 냉전의 대표 상징이었으나 서베를린 지역 장벽에는 개인적 추억의 낙서. 정치적 표어나 예술적 가치를 지닌 낙서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벽화 규모가 커질수록 장벽의 문화 예술적 가치도 커졌고 다채로운 그라피티가 세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이스터 사이드 갤러리는 불행한 과거를 반성, 경고, 추모, 상기시키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화합과 통일, 축제의 장으로 남겨졌다. 죽음의 경계선은 이제 예술의 벽이 되어 자유로운 지구인의 성지로 변모하고 있다.


세계 여러 도시에 있는 기념조형물, 특히 역사적 상징을 띄는 조형물들은 장소성, 예술성, 대중성, 접근성 등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세워져야 한다. 독일이 과거를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는 가는 이 책에 수록된 10곳에 위치한 조형물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듯하다. 독일은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 인정하고 수용하며 변화의 동력으로 삼는다. 독일인들에게 있어 역사란 고궁이나 박물관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박제된 것이 아니라 도시 곳곳에 살아 숨 쉬는 현재의 기록이다. 과거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삶에 끊임없이 소환되며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새겨진다.

이 책에 소개된 10곳의 조형물 중 몇몇은 지하나 바닥에 설치된 것들도 있다. 지하 도서관, 추모비, 추모석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게 되고 그 행동은 무의식적인 애도를 유도한다. 사람들 위에 군림하거나 거리감을 주는 조형물은 별로 없다. 사람들은 추모석 위에 앉거나 땅 위에 새겨진 추모비를 밞으며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경험한다. 베를린 도시 곳곳에 설치된 기념조형물은 개별화된 역사를 공동의 것으로 인식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위를 올려다보는 조형물이 아닌 아래로 고개를 숙여야만 볼 수 있는 조형물들을 바라보면서 역사 속에서 과거를 소환하며 그런 과정을 통해서 미래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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