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

The Moon and Sixpence. / 서머싯 몸



고갱은 1897년 타히티에서의 삶을 완성 짓는 대작을 남긴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 거의 4미터에 이르는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 삶의 본질과 인간의 참모습을 형상화하고자 했다. 타히티의 바다와 푸른 산줄기가 배경으로 묘사되어있고 오른쪽 아래 어린이와 세 명의 여인, 중앙에는 과일을 따는 젊은 여인, 왼쪽 아래에는 웅크리고 앉아 귀를 막고 있는 늙은 여인이 묘사되어 있다. 고갱은 인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하나의 화폭에 담으로써 평생에 걸쳐 묻고 싶었던 삶의 근원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원시 낙원이었던 아타의 오두막, 이제 보이지 않는 힘이 드리워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처 따지 못한 야자열매가 문둥병에 걸린 스트릭랜드의 몸처럼 썩어 들어가며 달착지근한 악취를 풍겼다.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 그가 흙벽에 그린 그림은 아마도 평생에 걸쳐 찾고자 했던 물음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답이었을 것이다. 아타는 스트릭랜드의 유언대로 오두막을 불태운다. 그의 질문과 답을 지운다.

서머싯 몸은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인 고갱이 묻고 싶었던 질문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소설 ‘달과 6펜스’에서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에 투영시키고 있다. 실제 고갱은 증권 중개인이었고, 파나마 운하에서 공사장 인부로 일하기도 했으며 타히티에서 원주민 여인과 동거하면서 타히티의 원시성을 담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이 작품은 제삼자인 ‘나’라는 인물이 내레이터 역할을 하여 직접 경험한 것들을 서술하거나 주변인들의 회상을 통해 스트릭랜드의 삶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화자인 ‘나’는 작가 서머싯 몸의 분신으로 스트릭랜드 즉 고갱의 예술 세계를 독자에게 들려주고 있다.

런던에서 증권 중개인으로 일 하던 사십 대 남자가 아내 에이미에게 ‘절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파리로 떠난다. 다정하고 세련된 아내와 사랑스러운 자녀를 둔 그가 갑자기 종적을 감춘 것에 대해 세인들은 불륜을 의심한다. 에이미는 사건의 진위를 알아보고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하려고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비난할 거요?”,“상관없소”, “그럼 승산 없는 도박을 하자는 겁니까?”, “나는 그려야만 하오.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는 헤엄을 치느냐 못 치느냐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소, 살기 위해 헤어 나오는 것이 중요할 뿐이지.”

스트릭랜드는 새 연인이 생겨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품어왔던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안락한 현실을 버렸다.

몽마르트르에서 활동하는 더크 스트로브는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물심양면 지원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고마워하지도 않으며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병에 걸린 스트릭랜드를 돌보던 스트로브의 아내 블란치는 야수적 관능과 원시성을 지닌 그에게 빠져들고 결국은 거부당한 사랑 때문에 자살한다. “난 사랑 같은 건 원치 않아. 때론 욕구가 생기기도 하지만 모든 욕정에서 벗어나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내 일을 하고 싶소, 그 여자의 몸이 근사해서 누드를 그리고 싶었을 뿐 다 그리고 나니까 흥미가 사라지더군”, “블란치는 나한테 버림받아서 자살한 게 아니라 어리석고 균형 잡히지 않은 인간이라 죽은 것이오. 그 여자 이야기는 그만하지. 내겐 전혀 중요할 게 없는 사람이니까.” 블란치의 죽음에 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찾아간 스트릭랜드는 면전에서 여자들은 사랑밖에 모르는 존재라고 냉소와 환멸을 드러낸다. 나는 어떤 보이지 않는 위대한 정신들을 표현하려는 그의 거대한 힘에 설득당하고 만다.

미지의 것에 다가가기 위해 망설임 없이 도전하고 자신을 얽어매는 모든 인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은 타히티에서 그린 작품들에 투영되었다. 티아레의 소개로 ‘아타’를 만나 안정을 찾고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영국이나 프랑스에서의 그는 둥근 구멍에 모난 못 같은 존재였다면 타히티에서의 그는 별의별 구멍에 다 맞는 자유로운 못이었다. 타히티는 원시적 야수성과 예술혼을 불태우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아타라는 여인과 두 아이를 낳고 살면서 나병에 걸려 죽기 전까지 수많은 그림을 남긴다. 그러나 그가 남긴 최후의 역작은 그의 유언대로 죽은 후 불태워진다.

스트릭랜드를 향한 세 여자의 사랑은 각기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에이미에게 사랑이란 신분과 품위 유지 수단이다. 세속적인 부와 명예, 세인들의 부러운 시선을 즐기며 정돈된 평화를 누리고 나중에는 자신의 전 남편이 광기를 지닌 천재화가임을 자랑하는 허세를 드러낸다. 스트릭랜드식 표현을 빌면 에이미의 사랑은 상대방을 가계부 안에 가두려는 사랑의 전형이다. 블란치에게 사랑은 완성되지 못한 사랑의 결말이다. 더크에게서 충족되지 못한 성적 갈망을 스트릭랜드를 통해 충족시키고 그를 관능적으로 소유하고자 했지만 그의 야수성과 원초적 본능을 꺾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타히티의 원주민 처녀 17살의 아타는 길들여지지 않는 원시성을 지닌 여인이다. 아타의 사랑은 소유에 있지 않고 그를 놓아주는 자유로움에 있었다. 벽에 그려진 작품들과 집을 통째로 태워버리라는 스트릭랜드의 유언을 실천에 옮긴 순수의 상징이다. 흔히 우리는 잘 정돈된 질서를 삶이라 부르고 사랑은 그 틈에 존재하는 변주로 생각한다. 스트릭랜드에게 사랑이란 어떤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가는 도구로서의 존재일 뿐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달과 6펜스’라는 제목에 초점에 두면 이 작품은 중년 사내가 달빛 세계의 마력에 끌려 6펜스의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을 다루는 작품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흔히 달은 닿을 수 없는 이상과 열망의 상징으로 6펜스는 가장 흔하고 하찮은 것으로 세속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둘 다 동그랗고 은색으로 빛나지만 지향점은 다르다. 화가의 현실은 6펜스로 대변될 만큼 곤궁하고 예술 세계는 달처럼 높고 닿기 어려운 경지다. 달에 이르고자 하나 세속의 무게 때문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6펜스를 과감히 던져버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달은 침묵 속에 우리를 늘 유혹하고 우리의 감추어진 열정을 깨우려 한다. 육신의 허기짐을 견디지 못하는 우리는 결국 6펜스를 소유하고 정신의 허기짐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은 달을 소유한다.

스트릭랜드는 평생을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길 원했다. 육신이란 건 언젠가는 버려질 것이기에 정신만이 고결하고 완전한 것으로 생각했다. 미를 창조하려는 열정에 사로잡혀있었고 그 열정은 자신이 서 있는 세계부터 무너뜨렸다. 현실의 안락함. 질서, 조화로움은 ‘나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에 대한 답이 될 수 없었다. 문둥병에 걸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은 작품에는 혼이 담겨있다. 결국 그는 죽음과 동시에 답을 얻었다. 작품 안의 타히티 여인들이 우리를 바라본다. 스트릭랜드 혹은 고갱이 우리에게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느냐?”라고 말을 건다.

서머싯 몸은 스트릭랜드의 ‘달과 6펜스’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6펜스의 세계는 우리를 길들인다. 단조로운 삶의 쳇바퀴와 같은 일상을 살고, 그 일상 속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잃어버린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끝없이 프레임 속에 자신을 가두며 살아간다. 세상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가끔 멈춰서 ‘어디서 왔는가’를 물어야 한다. ‘지금 여기’ 나의 현존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6펜스를 손에 쥔 채 바라본 밤하늘. 아득히 먼 그러나 한 걸음 더 다가온 달이 떠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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