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공간은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다

칸디다 회퍼의 사진 작업

버려진 공장이나 무너진 집들을 주로 찍는 ‘폐허 사진’장르가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무언가 존재하던 것들이 부재한 공간 앞에서 왜 사람은 멈춰서는가. 아파트 부지로 확정되어 사람들이 떠난 주택가. 버려진 것들과 남겨진 것들. 공간에 머물던 이들은 부재하고 흔적만 남은 곳에서....머지않아 사라질 것에 대한 애도인지, 기억의 환기인지.


빈공간을 주로 찍는 독일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는 ‘건축의 초상화’를 사진으로 보여준다.

회퍼는 “제 작품의 주제는 공공 장소와 반 공공 장소입니다. 사람이 없을 때가 더 좋습니다. 공공 건물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포착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극장, 궁전, 오페라 하우스, 도서관 등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얼마 후, 저는 사람들이 이 공간에서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이 공간들이 그들에게 어떤 행동을 하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부재중인 손님이 종종 대화의 주제가 되는 것처럼 아무도 없을 때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 없는 공간마다 사진을 찍기로 했어요.”

회퍼는 사진 작업을 할 때 주변 조명만을 사용하고 그녀의 눈에 포착된 빛을 중심으로 사진을 찍는다.

“모든 공간은 빛에 관한 것입니다.”


공공장소. 사람들이 머물다 간 장소. 그녀는 빈공간에서 무엇을 찾아내려는 것일까.

사람들의 흔적, 기억, 장소에 스민 시간들, 사물들의 인내심, 들숨과 날숨, 시선이 머물던 벽, 지문들

어떤 공간이 비어있다고 하여 정말 비어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상자 하나를 준비한 다음 상자 안에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채운 뒤 다시 그것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원래대로 빈 상자로 만들어 둔 뒤 상자는 비어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답을 하는 철학 놀이가 있다.

육안으로 보이는 상자는 빈 상자이다. 그러나 정말 빈? 상자일까?

아마도 칸디다 회퍼가 빈 공간을 찍는 작업도 이런 철학적 질문과 비슷한 의도가 아닐까 싶다.

비어있는 공간. 처음부터 비어있던 공간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존재하던 무언가가 사라진 공간이다. 같은 공간 안에 부재하는 것들. 사람이거나 사물이거나...


부재를 견디기 힘든 때가 있었다. 어떤 형태로든 부재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에 빈공간으로 남겨진 그곳을 떠났다. 삶이란 그러한 것이 아닌가.

누구든 그 부재를 견딜 수 없게 하는 빈공간 때문에 힘들어본 경험이 있을 테니까.

장미의 계절. 장미넝쿨이 흐드러지던 유년의 집 생각이 난다. 아마 스물의 초입까지 머물렀던 그 곳을 허둥지둥, 쫓기듯 떠나버린 것은 그곳에 남겨진 아버지의 흔적 때문이었다. 마당 어딘가를 바라보아도 그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그의 느릿한 움직임이 연상되었기에.. 햇살 좋은 그 집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다.

장소는 본질적으로 시간의 흔적을 품고 있다.

칸디다 회퍼의 작업은 부재로 인한 허무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머물던 공간이 일시에 빈 공간이 되는 그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빈공간이 지닌 힘, 보이지 않는 끌어당김을 보여주는 작업일 것이다. 아무도 없는 빈 성당.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색색깔의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그곳은 사람을 끌어당긴다. 빈공간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 빈공간은 우리 안의 것들을 끄집어 내게 한다.... 온전한 비움에 이를 때까지.

머물다 사라지는 것. 꽃이든 사람이든 사물이든.....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공간에 담겨 있다가 사라진다. 남겨진 공간들. 비어있음의 시간들. 비어있기에 또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마법처럼.....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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