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의 삶과 작품
잃다. 그리고 발견하다
비비안 마이어의 삶과 작품
비비안 마이어란 이름을 검색창에 치면
"비비언 도로시어 마이어(Vivian Dorothea Maier, 1926년 2월 1일 ~ 2009년 4월 1일)는 미국의 사진작가."이렇게 그녀의 정보가 뜬다. 1926년 2월에 태어나 2009년 4월에 생을 마감한 미국의 사진작가가 오직 그녀 한 사람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넓은 의미로 보면 세상의 누구든 사진작가? 인 채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다.
우리의 망막에 찍힌 풍경과 인물의 모습은 그 어떤 카메라로도 대체할 수 없다.
기억의 흔적으로 사라질 뿐이지만 그 어떤 카메라로도 담아내지 못하는 것들을 우리의 눈은 포착한다. 비록 그것이 순간일지라도. 비록 그것이 금세 잊히는 것일지라도.
검은 바탕에 흰 원피스 차림의 여인이 걸어가고 있는 표지 사진에 끌려 사고 싶었던 책이 있었다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라는 책. 비비안 마이어가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강렬한 흑백사진이 내 시선을 붙잡았다.
그녀는 세상에 없고, 세상에 살아있을 때 그녀는 사진작가가 아니었지만(사진을 찍는 사람이었지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작가라는 칭호를 붙여주지 않았으니) 죽어서 사진작가로 남았다.
일생을 보모, 가정부로 살아간 비비안 마이어는 40여 년간 수십만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다. 무려 하루에 필름 한 통씩 50년을 찍어야 하는 분량의 어마어마한 사진들이 SNS를 타고 흐르며 전 세계인들과 언론의 열광을 받은 건 사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임대료를 내지 못해 경매로 400달러에 거래된 창고의 네거티브 필름 상자들은 감히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미국의 보물이 되었다.
그녀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영원한 아웃사이더', '카메라를 든 메리 포핀스', '아이 돌보미로 살아간 천재 예술가', '예술 세계에서 가장 흥미롭고 강렬한 수수께끼', '불운한 성공'.
그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수많은 사진을 찍고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고, 철저히 알려지기를 꺼려했던 아웃사이더였다. 그러나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녀는 알고 있을까?
자신을 부르는 수많은 호칭들을... 천재, 수수께끼, 불운한 성공, 메리 포핀스, 아웃사이더...
그녀의 미스터리 한 삶을 영화로 제작한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라는 작품은 베를린 영화제, 선댄스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그 또한 그녀의 사후에 일어난 영광이다. 그녀는 알지 못한다.
비비안 마이어 (Vivian Maier)
1926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어머니의 고향인 프랑스 시골 마을 샹소르에서 보냈고, 열두 살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평생을 뉴욕과 캘리포니아, 시카고를 전전하며 보모와 간병인으로 일했다. 비비안은 극히 제한된 인간관계를 맺었고, 소수의 지인들에게조차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았으며 도무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없는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다. 무례하고 오만하며 심술궂은 ‘사악한 마녀’였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정중하고 다정하며 책임감 강한 ‘메리 포핀스’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15만 장에 이르는 작품을 남길 정도로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었지만 그 결과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대부분의 필름을 현상조차 하지 않은 채 상자에 넣어 창고에 방치했고, 창고 비용도 지불하지 않았다. 가장 친한 지인이나 고용주도 그의 기본적인 가족관계나 성장 배경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었고, 어떤 이는 자신의 보모에게 카메라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2008년 존 말루프와 초기 구매자들이 비비안의 작품을 발견하고 그 주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비비안은 자신이 가장 오랫동안 돌보았던 아이들인 겐스버그 형제의 보살핌을 받으며 로저스 파크의 벤치에서 미시간 호수를 바라보며 마지막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비비안은 2009년 4월 21일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책의 서문에 소개된 그녀의 약력이다.
왜 모든 사람의 약력은 ~~ 에 태어나서~~ 에 세상을 떠났다로 끝나는 것인가. 너무도 당연한, 너무도 익숙한 것에 대해 갑자기 생각이 멈춘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 사람의 삶에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존재한다. 희로애락의 모든 것들. 그것을 살아서 누리는 이도 있고 죽어서 누리는 이도 있다.
비비안 마이어.... 그녀는 왜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셨을까? 그녀의 눈에 포착된 1900년대의 뉴욕과 플로리다와 텍사스... 그 시절 그곳에 살던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 표정을 렌즈에 담았다. 웅크린 남자. 잠이 든 남자, 팔짱을 낀 연인, 카메라의 렌즈를 향해 잔뜩 불쾌한 표정을 짓는 여인... 산책을 가는 가족들... 그리고 그 풍경들 중 어딘가에 존재하는 마이어 자신.
그녀가 남긴 수십 만 장의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을 찾아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 심지어 그녀가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로 아무런 단서조차 남기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지속했다.
말 그대로 ' 그녀가 카메라'인 셈이다. 그녀가 가는 곳은 어디든 그녀의 렌즈 안에 붙잡히게 마련이었으니..
그녀의 흑백 사진들을 바라보면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은...
아무리 위대한 사진작가가 그녀의 사진에 대해 온갖 찬사를 늘어놓는다 해도 그녀는 알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녀는 죽음으로써 '삶'을 잃었고 남은 이들은 비비안 마이어를 '잃음'으로써 그녀의 사진을 얻었고 그녀의 삶을 발견했다. 그녀는 삶을 잃었고 그녀의 사진은 살아남아 영예를 얻었다.
잃음과 얻음. 그리고 발견함.
비비안 마이어라는 여인의 삶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리라... 삶의 공식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잃음으로써 무언가를 얻게 되고 또 누군가는 그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플로리다. 1. 9. 1957>
깊은 밤 하얀 드레스 차림의 여자가 고급 자동차를 향해 걷는다. 그녀를 기다리는 듯한 누군가가 차 안에 있을 것만 같다.
1957년 겨울밤. 잘 차려입은 그녀는 어디로 가는 길인가.
뒷모습은 아름답지만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1957년 겨울의 풍경.
작품의 제목 또한 없다. 단지 1957년 1월의 플로리다라는 단서만 존재한다
<1953년 뉴욕>
목 잘린 발들처럼.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은 구두들. 누군가와 함께 걷고, 함께 춤을 추고...
진열대의 구두들은 박제된 축제처럼 보인다. 마이어는 이 구두들을 찍으며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
또 다른 사진은 버려진 구두를 찍었다. 진열대에서 걸어 나와 누군가의 발이 되었을 구두 한 짝. 길가에 버려져있다. 존중 받음과 버려짐의 사이. 그 시간 동안 구두 한 짝에는 어떤 스토리가 담겨있었을까.
신발의 운명은 곧 주인의 운명이었음을 보여주는 은유 같은 것이 아닐까.
구두를 찍었을 당시 마이어의 표정이 궁금해진다.
날짜를 알 수 없는 날, 텍사스에서 찍은 사진
고개를 파묻은. 지팡이를 꼭 쥔 남자에게 어떤 슬픔이 관통한 것일까.
웅크린 남자의 모습에 공연히 마음이 아려온다. 슬픔이란 세계 공용어이기에...
그녀의 자화상... 유리 거울을 든 남자. 거울에 비친 비비안 마이어의 자화상. 카메라를 들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남자는 거울 속 마이어를 보고 마이어는 남자의 뒷모습을,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한 장의 사진 안에 시선들이 교차한다.
사진은 비밀에 관한 비밀이다.
사진이 많은 말을 할수록 그 사진에 대해 아는 것은 적어진다/ 다이안 아버스의 5장의 사진 중에서
사진은 비밀에 관한 비밀이라면 비비안 마이어는 사진을 통해 어떤 비밀을 말하고자 하였을까.
아기와 남자와 여인과 카메라를 든 자신과 버려진 의자. 구두 한 켤레... 비밀에 관한 비밀인가. 비밀에 관한 그녀 방식대로의 폭로인가.. 표정들.. 사진 안에 박제된 표정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사진으로만 말하고자 하였던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그녀의 소리 없는 폭로를 알아채기 위해.. 그러나 나는 그녀의 폭로를 온전히 이해할 만큼 지혜롭지 못하다. 그러나 그녀의 폭로를 느낄 수는 있다.
인화되지 못한 필름만 남아있다. 필름 통 속에 마이어가 존재한다. 그녀의 삶에선 제1의 의미였을 것.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이 알아주면 그만이었을까.
인화되지 못한 그녀의 꿈같은 것이었을까.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보며 1900년대의 미국을 여행한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들, 만날 수 없는 사람들. 그녀가 카메라의 렌즈를 들이대며 폭로하고 싶었던 그 시절의 아름다움과 추함, 불편함과 뻔뻔함, 궁핍과 부유, 질서와 무질서, 눈물과 웃음들... 편견과 분노의 시선들. 연민의 미소들을...
나는 그저 바라본다. 그녀를 '읾음'으로써 나는 그녀의 사진을 '발견한다'.
그녀의 사진들을 모아놓은 한 권의 책을 통해서..../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