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모르겠어에는 작지만 견고한 날개가 달려있지
<단어를 찾아서 >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
그 단어는 화산 같아야 한다.
격렬하게 솟구쳐 힘차게 분출되어야 한다.
무서운 신의 분노처럼,
피 끓는 증오처럼.
(...)
우리가 내뱉는 말에는 힘이 없다.
그 소리는 적나라하고, 미약할 뿐.
온 힘을 다해 찾는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비스와봐 쉼보르스카
비스와봐 쉼보르스카는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 혼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거추장스러운 망토와 가면, 장신구들을 모두 벗어던진 채 고요한 침묵에 잠겨 아직 채 메워지지 않은 종이를 앞에 놓고 조용히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그런 순간이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모르겠어.”라는 두 마디 말에는 작지만 견고한 날개가 달려있어서 끊임없이 “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가운데 새로운 영감이 솟아난다고 말한다. 그러하기에 진정한 시인이라면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나는 모르겠어”를 되풀이해야 하며 시인은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통해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시인은 자신이 쓴 작품에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또다시 망설이고 흔들리는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그녀의 말이 울림을 준다.
지극히 당연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어느 것 하나 평범하거나 일상적이지 않은 세상 속에서 우리가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내가 안다고 표현하는 것들이 변하는 것들에 대한 착각이거나 기만이 아닐까
시인처럼 가슴에서 솟구치는 말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장 용감하게 내뱉은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거룩함으로 포장하고,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로운척하며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온건함을 가장한다. 내 안의 나를 드러낼 화산 같은 단어를 찾기란 어렵다.
나를 감추는 단어, ‘모르겠다’는 진실을 왜곡시키는 단어들. 힘은 없으면서 소리만 요란한 단어들 앞에서 결국 시인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로 마무리하고 만다.
말과 글... 말이 뱉어내는 것이라면 글은 토해내는 것이라 할까. 말의 분출이 입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글의 분출에는 온몸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알지 못한다. 현대사회에서 ‘안다’고 하는 것은 때로 폭력적이다. 안다는 것의 범위, 깊이를 어디까지로 한정할 것인가. 세상에 ‘안다’고 하는 이들은 넘친다.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모른다’를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자는 적어도 자신에게는 정직한 사람들이며 말과 글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다.
사이 툼블리의 작품 < 파노라마>는 내면의 삶의 한 부분을 보여 주기 위해 특수 제작한 거울과 같다. 검은 칠판에 무언가를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한 흔적처럼. 이해할 것 같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
'앎'과 '무지'의 충돌의 흔적들. 내면의 파노라마를 보는 듯한 그림에서 쉼보르스카의 말 ‘나는 모르겠다를 떠올린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앎을 향해 가는 첫발을 내딛는 것이리라. 무수한 낙서처럼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진실을 담은 내면이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정말 모르겠다.
한 여름의 절정. 숨을 곳 하나 없는 강렬한 태양 아래. 끓어오르는 아스팔트 길. 매미의 절규 속에 나는 대체 무엇을 아는가? 내 감각 기관이 느끼는 것만으로 ‘여름’의 전부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여인은 개 두 마리와 산책을 하고 어떤 여인은 아파트 입구 마른 꽃밭에 물을 주고 있다. 짐을 들고 걷는 어떤 여인의 등은 땀으로 젖어있다. 또 어떤 여인은.... 그리고 또 어떤 여인은.... 사소한 풍경 속. 모든 것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여겨진다.
평범하고 일상적이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그 어떤 순간도 평범하지도 않고 일상적이지도 않다.
언젠가는 퇴장해야 할 인생극장 티켓을 손에 쥔 관객들이기에. 이 여름의 풍경을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마주할 수 있을까. 주어진 시간은 당연하고 때로 아무 가치도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결코 당연하지 않은 시간이 된다.
시인은 세상을 설명하기에는 단어들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자신의 시에 대해, 자신이 설명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적합한 단어의 부재를 경험한다.
나 또한 늘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나’로 살고 있는 ‘나’에 대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에. 결여의 인간이고 스스로를 제때로 알지 못하는 인간이기에. 내 입을 통해 발화되는 언어도 충분하지 않다.
이 여름을, 이 여름의 깊이를, 이 여름의 의미를.......... 그리고 오늘의 나를.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나를 정말 모르겠다.
"나는 모르겠어."
이 한 마디를 중얼거리는 시간이다.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