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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기다리는가

파괴되지 않는 것은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

우리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기다리는가

파괴되지 않는 것은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 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 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라는 사실을 생각한다. 얻으려는 끝없는 노력의 결과 얻게 된 모든 것들은 질서와 조화가 아닌 혼돈의 산물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안정된 것, 정지된 것, 조화로운 것 안에서는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려 들지 않는다. 

무언가를 시도하기 위해서는 끝없이 마음 안에 파랑이 일어야 한다.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은 겉으론 조화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끝없이 파랑이 이는 바닷가다.

그 바닷가에서 얻어진 모든 것들은 혼돈의 결과물... 파랑과 파도를 거쳐야 성장할 수 있음을 안다.      

    .


‘혼돈이라는 막무가내인 힘의 거대한 소용돌이, 그것이야말로 우연히 우리를 만든 것이자 언제라도 우리를 파괴할 힘이라고 말이다

. “혼돈은 우리의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의 꿈, 우리의 의도, 우리의 가장 고결한 행동도. 절대 잊지 마라.”          


독수리와 파란 꼬리 스킹크의 이야기     

독수리가 날아와 스킹크의 파란 꼬리를 잘라먹는다. 상처 입은 스킹크 도마뱀은 독수리 둥지로 올라가 알을 잡아먹으며 "이 알들에는 새 꼬리를 만들기에 충분한 만큼의 고기가 들어있어." 그리고 둘의 행동은 계속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독수리는 내려와 새로 난 꼬리를 잘라먹고 도마뱀은 둥지로 올라가 알들을 먹어치운다 하지만 어느 쪽도 완전히 패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꼬리에는 더 많은 알을 만들 고기가 충분하고 알에는 또 하나의 파란 꼬리를 만들 고기가 충분하므로               

먹고 먹히고 용도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리할 수밖에 없는 반복의 행위들

우리는 때로 독수리이고 우리는 때로 파란 꼬리 도마뱀이다.

꼬리를 잘라먹어야 알을 낳아 종족을 보존할 수 있고, 꼬리가 잘린 도마뱀은 독수리 둥지의 알을 먹어야 꼬리가 자라난다. 돌고 도는 관계.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러하지 않은가.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자연에 참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연의 법칙은 바꿀 수 없으며 그 법칙을 거스르는 자는 공기로 된 방망이를 휘두르는 셈이다. 우주 앞에서 너무나 무력한 그의 주먹..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어쩌면 진화가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은 “ 우리는 실제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 능력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세상이 기본적으로 냉담한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은 보장되지 않고, 수십만 명을 상대로 경쟁해야 하며, 자연 앞에서 무방비 상태이고,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이 결국에는 파괴될 것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작은 거짓말 하나가 그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낼 수도 있고, 인생의 시련 속에서 계속 밀고 나아가도록 도와줄 수도 있으며, 그 시련 속에서 가끔 우리는 우연한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 불렀다. 파괴되지 않는 것은 낙관주의 와는 전혀 무관하다... 파괴되지 않는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그것은 실제로 우리를 찢어발기고 파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가 이야기한 ‘우리 안의 파괴되지 않는 것’ 은 낙관적 의미의 본질은 아니다.

파괴되지 않고 여전히 도사리고 있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그 파괴되지 않은 것이 우리를 파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내 안의 파괴되지 않은 것들을 생각한다.

그 파괴되지 않은 것을 인정하면 나는 파괴될 수 있지만 사실은 파괴되는 것이 꼭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진 않을 것 같다.  


고대그리스어 ἀπὸ μηχανῆς Θεός (아포 메카네스 테오스)

라틴어: Deus ex machina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란, 그리스 연극에서 쓰인 무대 기법의 하나.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극의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고 결말로 이끌어 가는 기법이다.. ex machina(기계 장치로 구성된)이라고 줄여 말하는 경우도 있다.     

에우리피데스가 즐겨 쓴 수법으로, 기중기와 같은 기계를 이용해서 갑자기 신이 공중에서 나타나 위급하고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는 데서 나온 말로 매우 급작스럽고 간편하게 작중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사기 캐릭터나 연출 요소 등을 일컫는 말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기계 장치로 무대에서 내려온 신이라는 뜻이다.      

당시 고대 그리스 연극에 널려 있던 클리셰는  발단, 전개, 위기, 절정까지는 평범하게 인간의 생활이라는 틀에 맞춰서 진행되다가 어려운 상황이 대두되면  기중기 같은 기계를 타고 내려온 신이 "나는 올림포스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다"라고  한 뒤 악을 평정하고 정의로운 자에게는 상을 주는 구조다.                              

아리스토 텔레스나  호라티우스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사용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알 수 없는 과거의 사건이나 예언 혹은 고지해야 하는 미래의 사건을 이야기할 때"만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예외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지금은 올림푸스 산에서 갑자기 신이 내려와 악과 정의를 판단하며 혼란스러운 세상을 평정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그리스 시대에도 물론 연극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단어가 마법의 주문처럼 계속 입속에 맴도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고 정의롭지 않으며 공정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 것이다.    

  

혼돈의 결과물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고  좋은 것 또한 혼돈의 결과물임을 생각한다. 

하지만 혼돈을 경험하는 일은 두렵다. 혼돈의 결과물을 받아들이는 일도... 

내 안에 도사린 파괴되지 않은 것이 나를 파괴하려 들 때 앞으로 나아가야 할 힘을 갖지 못하였을 때, 두려움이 들 때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순간을 기대하는 것이다.

순식간에 상황이 종료되는 구조, 우리에게 익숙한 권선징악의 교훈으로 마무리되는 지나치게 단순하고 명징한 종결을... 바라는 것은 강요된 학습의 결과일지모 모르지만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시대,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특히나 지금처럼 갈등과 분노. 혐오가 부각되는 시기이기에 더욱 데우스 액스 마키나를 외치고 싶은 것인지도....


배려와 공존. 이해와 존중. 사랑과 희생. 정의와 공정이란 단어를 혹시 사전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길 바라게 되는 요즘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저마다의 신이 내려오시어 상황을 종결하길 기다리기보다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 범위 안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실행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무더위가 몰려오는 6월... 나무들의 초록이 짙어간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우리 사회가 평화롭고 아름다우며 정의롭고 공정하며... 존중과 배려로 가득하기를

/ 려원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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