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가? 달이 묻는다.
"너는 이 삶을 다시 한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
정월대보름날이다.
일 년 중 가장 큰 보름달이 뜬다는 날.
대보름에 대한 유년의 기억은 따사롭다. 풍성한 나물, 약밥, 김, 두부 소고깃국...
찰밥(약밥)에 김을 싸서 노적처럼 세워두던 모습..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기억 속 사소한 것들도 의미로 다가온다.
상차림이나 의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언가에 마음을 다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모성의 계보처럼 각인된 대보름날의 풍경. 달을 향한 기원.... 풍요와 온기.
그 시절의 대보름날이 그립다.
2월의 한 복판, 추운 날씨 속에도 달은 환하게 떠있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처럼 죽음과 삶을 반복하고 싶다던
사토 쇼고의 소설 <달의 영휴> 생각이 났다.
“하느님이 이 세상에 태어난 최초의 남녀에게 죽을 때 둘 중 하나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어. 하나는 나무처럼 죽어서 씨앗을 남기는, 자신은 죽지만 뒤에 자손을 남기는 방법, 또 하나는 달처럼 죽었다가도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는 방법.... 인간의 조상은 나무 같은 죽음을 선택해 버린 거지. 하지만 난 달처럼 죽는 쪽을 택할 거야. "
"달이 차고 기울 듯이."
"그래. 달이 차고 기울 듯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거야."
나무처럼 죽어서 씨앗을 남기는 방법.. 이미 죽지만 ‘후손’의 몸속 어딘가 아주 작은 유전자의 일부로 살아가는 법과 달처럼 죽음과 삶을 반복하는 방법. 순환적으로 차고 기우는 방법.
달처럼 순환적으로 차고 기우는 것은 니체의 영원회귀와는 다르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영원회귀'(永遠回歸, Ewige Wiederkunft). '영겁회귀’는 엄밀히 말하자면 동일한 것을 영원히 반복한다는 것.('The Eternal Recurrence of the Same'. )이니까.
"오, 사람아! 너의 삶 전체는 마치 모래시계처럼 되풀이하여 다시 거꾸로 세워지고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또 끝날 것이다. ㅡ 네가 생겨난 모든 조건들이 세계의 순환 속에서 서로 다시 만날 때까지. 그 사이의 위대한 순간의 시간, 그다음에 너는 모든 고통과 모든 쾌감과 모든 친구와 적과 모든 희망과 모든 오류와 모든 풀줄기와 모든 태양빛을 다시 되찾을 것이다. 모든 사물의 연관 전체를 되찾을 것이다. 네가 하나의 낟알로 들어 있는 이 고리는 항상 다시 빛난다. 그리고 인간 존재 전체의 모든 고리 속에는 항상 어떤 순간이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는 단 한 사람에게, 그다음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결국 모든 사람에게 가장 강력한 생각, 즉 모든 것의 영원회귀라는 사상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ㅡ 인류에게 이때는 매번 정오의 순간이 된다.
니체전집 12
너의 삶 전체는 마치 모래시계처럼 되풀이하여 다시 거꾸로 세워지고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또 끝날 것이다.
모래시계처럼 되풀이되는 삶이라니... 위대한 순간의 시간, 모든 고통과 모든 쾌감과 모든 친구와 적과 모든 희망과 모든 오류와 모든 풀줄기와 모든 태양빛까지도...
그 안 어딘가에 있을 내 모습까지도..........
최대의 중량 ー 어느 날 낮, 혹은 어느 날 밤에 악령이 너의 가장 깊은 고독 속으로 살며시 찾아들어 이렇게 말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아왔던 이 삶을 너는 다시 한번 살아야만 하고, 또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만 할 것이다. 거기에 새로운 것이란 없으며, 모든 고통, 모든 쾌락, 모든 사상과 탄식, 네 삶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네게 다시 찾아올 것이다. 모든 것이 같은 차례와 순서로 ㅡ 나무들 사이의 이 거미와 달빛, 그리고 이 순간과 바로 나 자신도. 존재의 영원한 모래시계가 거듭해서 뒤집혀 세워지고 ㅡ 티끌 중의 티끌인 너도 모래시계와 더불어 그렇게 될 것이다! ㅡ 그대는 땅에 몸을 내던지며, 그렇게 말하는 악령에게 이를 갈며 저주를 퍼붓지 않겠는가? 아니면 그대는 악령에게 이렇게 대답하는 엄청난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너는 신이로다. 나는 이보다 더 신성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노라!" 그러한 생각이 그대를 지배하게 되면, 그것은 지금의 그대를 변화시킬 것이며, 아마도 분쇄시킬 것이다. "너는 이 삶을 다시 한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모든 경우에 최대의 중량으로 그대의 행위 위에 얹힐 것이다! 이 최종적이고 영원한 확인과 봉인 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그대 자신과 그대의 삶을 만들어나가야만 하는가?
니체, 《즐거운 학문》 341절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아왔던 이 삶을 다시 한번 살아야만 하고, 또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만 할 것이다. 거기에 새로운 것이란 없으며, 모든 고통, 모든 쾌락, 모든 사상과 탄식, 네 삶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네게 다시 찾아올 것이다. 모든 것이 같은 차례와 순서로.... 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으려면
매 순간 선한 의도로... 좋은 결말을 향해 가야 할 것이다.
방송에서 유난히 자주 들려온 노래 중 하나가
스페인 팝 그룹 'Mecano'가 부른 '달의 아들(Hijo de la luna)'이다. 노래 가사에 Hijo de la luna라는 말이 반복된다.
이 노래는 집시여인의 전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달의 아들은 집시들의 전설을 모티브로 한 스페인 노래라고 합니다.
옛날 어떤 집시가 있었는데 그녀는 혼자 살기가 너무 외로워 달의 여신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 했다. 달의 여신은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첫 번째 아이를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소원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여인은 담비빛처럼 새하얗고, 올리브색 대신 회색의 눈빛을 한, 달을 닮은 남자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조금도 자기를 닮지 않은 것을 안 남편은 아내를 죽이고 아이를 산 위에 버렸다.
아이를 달래기 위해 달은 요람 같은 모양의 초승달로 변했고 아이가 울음을 그치면 다시 보름달로 돌아갔다고 한다.
Tonto el que no entienda. Cuenta una leyenda.
전설을 하나 말해줄게요. 이해 못 하면 바보.
Que una hembra gitana Conjuró a la luna Hasta el amanecer. Llorando pedía.
한 집시 여인이 달에게 소원을 빌었죠. 동이 틀 때까지 울면서 빌었어요
Al llegar el día Desposar un calé.
집시 남자와 결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Tendrás a tu hombre, Piel morena, "
"넌 갈색피부의 남자를 얻을 수 있으리라"
Desde el cielo Habló la luna llena
하늘의 보름달이 말했어요
"Pero a cambio quiero El hijo primero Que le engendres a el.
"대신 그 대가로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 아이를 나에게 주렴
Que quien su hijo inmola Para no estar sola Poco le iba a querer."
난 혼자가 외로우니 그 아일 나에게 다오."
De padre canela Nació un nino
그들 사이에 남자아이가 태어났어요
Blanco como el lomo De un armino, Con los ojos grises En vez de aceituna
담비빛처럼 새하얗고, 올리브색 대신 회색의 눈빛을 한
Niño albino de luna
새하얀 달의 남자아이
"¡Maldita su estampa!
"저주받은 모습!
Este hijo es de un payo
이 아인 멍청한 사람의 아들
Y yo no me lo callo."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어"
Luna quieres ser madre
달아, 너는 어머니가 되고 싶은 거지
Y no encuentras querer
하지만 너는 사랑이 뭔지 모르지
Que te haga mujer
차라리 여자가 되게 해달라고 빌어요
Dime, luna de plata
말해줘, 은의 달님
Qué pretendes hacer, Con un niño de piel
인간 남자아이에게 무엇을 바라는 거니
A-ha-ha, a-ha-ha
아-아-아, 아-아-아
Hijo de la luna
달의 아들
Gitano al creerse deshonrado
집시 남자는 배신이라 확신했어요
Se fue a su mujer, Cuchillo en mano
손에 칼을 들고는 여자에게 찾아갔어요
"De quién es el hijo?"
"이 아인 누구 자식이야?
Me has engañado fijo."
넌 날 속였어"
Y de muerte la hirió. Luego se hizo al monte
집시 남자는 그녀를 찔러 죽이고는
Con el niño en brazos Y allí le abandonó.
산에 올라가 아이를 버렸어요
Y en las noches Que haya luna llena
밤에 보름달이 떠있으면
Será porque el niño Esté de buenas
그 아이의 기분이 좋기 때문인 거예요
Y si el niño llora Menguará la luna Para hacerle una cuna
아이가 울면 달은 초승달이 될 거예요, 아이가 울지 않게 요람을 만들어주느라
안아줄 팔도
업어줄 등도 없는 달이 눈처럼 흰 달의 아들을 위해 기꺼이 제 몸의 형태를 바꾸어 달의 아들의 요람이 되어준다.
잔인한 전설이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게 해주는 대가로 첫아이를 달의 아이로 삼겠다는 것.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여인. 결국 달은 여인을 통해 자신을 닮은 달의 아들을 가지게 된 셈이다...
생각이 많아지는 밤, 창밖이 바람 지나가는 소리로 요란하다.
같은 것의 반복...
만일 오늘 부는 바람까지, 지금 내가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이 순간까지도
내 머릿속의 생각까지도... 동일한 것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삶이라면...
그 삶이 좋은 삶이 될지, 그렇지 못할지는 결국 지금 이 순간에 달려있다는 의미다.
모래시계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그 생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
달이 묻는다.
달은 오늘의 바람과 어제의 눈보라와.... 그 모든 것마저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그 동일한 반복을 아무렇지 않게 수용할 수 있을까? 난 아직 그러하지 못하다.... /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