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쿤체의 시를 만나는 시간/ 나를 마주하는 시간
< 뒤처진 새 >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건널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 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 라이너 쿤체 -
라이너 쿤체의 시집을 사기 위해 여러 사이트를 뒤진 적이 있다. 쿤체의 시는 독일에서도 상당히 인기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쿤체의 시집은 많지 않고 번역은 전영애 씨가 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라이너 쿤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유명한 시 <두 사람>을 통해서다.
< 두 사람 >
두 사람이 노를 젓는다
한 척의 배를
한 사람은
별을 알고
한 사람은
폭풍을 안다
한 사람은 별을 통과해
배를 안내할 것이고
한 사람은 폭풍을 통과해
배를 안내할 것이다
마침내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기억 속 바다는
언제나 파란색 이리라
- 라이너 쿤체 -
한 사람은 별을 알고 한 사람은 폭풍을 안다. 한 사람은 별을 통과해 배를 안내하고 한 사람은 폭풍을 통과해 배를 안내할 것이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지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한 배에게 탄 운명 공동체다. ‘별’은 이상을 ‘폭풍’은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별을 통과하든, 폭풍을 통과하든 마침내 항해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는 '기억 속 바다가 파란색이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전해온다.
삶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항해와 같다고들 한다. 변화무쌍한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는 것은 항해하는 이에게는 흔한 일상일 것이다. 폭풍우를 피하는 방법도 잘 알아야 함은 물론이지만 별빛을 쫓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상과 현실... 삶에서 둘의 조화를 이루기란 참 어렵다. 이상이 앞서면 현실은 무력해지고 현실이 앞서면 품어야 할 이상이 소멸해버린다. 시인은 그래도 ‘마침내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기억 속 바다는 / 언제나 파란색 이리라’ 라고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나와 마주하는 시간』의 독일어 원제는 “ 너 자신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 한다.
“나 자신”이 아니라 “너 자신” 이란 말에서 주어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너’는 이 책을 펼치는 독자가 될 것이니 의미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위의 시 ‘뒤처진 새’는 독일 피셔 출판사에서 나온 원본에는 들어 있지 않다고 한다. 한국어 번역본에 시인이 직접 추가해 준 시라 하니 유독 관심이 생긴다. 쿤체는 ‘뒤처진 새’를 눈여겨 바라보는 사람이다. 사실 그의 어린 시절이 ‘뒤처진 새’ 같았는지도 모른다.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랜 시간 핍박을 견뎌야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시간의 돌길을 다 달려와 그 끝머리, 오직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에 다다른다.
< 나와 마주하는 시간 >
검은 날개 달고 날아갔다, 빨간 까치밥 열매들
잎들에게 남은 날들은 헤아려져 있다
인류는 이메일을 쓰고
나는 말을 찾고 있다, 더는 모르겠다는 말,
없다는 것만 알 뿐
- 라이너 쿤체 -
나와 마주하는 시간..... 나는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있고 시인은 시에서 ‘나는 말을 찾고 있다. 더는 모르겠다는 말, 없다는 것만 알뿐.’이라고 적고 있다. 나는 그가 더 알고 싶고 그의 작품이 더 알고 싶으나 그는 더는 모르겠기에 말을 찾고 있다고 한다.
오랜만에 바라본 하늘이 푸른빛이다. 뒤처진 새가 없는지 올려다본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 또한 그에게 내 힘을 보태기 위해서.... 어쩌면 현실의 나 또한 뒤처진 새인지도 모른다. /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