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휘어잡던 소년이었다

나만의 비밀 노트에 이미 알아버린 인생에대해적어볼 것이다

* 나도 한때는 그렇게 자작나무를 휘어잡던 소년이었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자작나무를 휘어잡던 소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걱정이 많아지고

인생이 정말 길 없는 숲 같아서

얼굴이 거미줄에 걸려 얼얼하고 근지러울 때

그리고 작은 가지가 눈을 때려

한쪽 눈에서 눈물이 날 때면

더욱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 자작나무 > 중에서


나도 한 때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세상은 온통 가능성의 창문들로 반짝였고 나는 밤새워 책을 읽고 글을 베껴 썼다. 문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교과서에 나온 시나 수필을 한 줄 한 줄 베껴 쓰며 밤을 하얗게 새우기도 하였다. 마냥 좋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무언가 나는 아무도 모르게 멋진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하였다.

대문 위에 시멘트로 만들어진 작은 공간은 유년시절 아지트였다.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낡은 나무 걸상에 앉아 레몬 빛 가로등으로 나방들이 질주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방들은 잿빛 날개를 펴고 전등을 향해 날아간다. 나방들은 왜 모든 것을 다 거는 것처럼 질주하는 것인가? 전등 아래 떨어진 나방들의 푸석거리는 몸뚱이들은 덧없는 환영들이었다. 추락과 죽음. 그 이상의 어떤 목적이 있었을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무도 보여주지 않을 나만의 비밀노트를 그곳에 숨겨 놓았다. 속상한 일들. 이루어지지 못한 일들, 원하는 것들의 나열에 불과한 것들이 공책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비밀이라 할 것도 아니지만 어린 나에게 공책에 적은 것들은 어느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오직 나만의 소유여야 했다.


몸집이 커지면서 날렵하게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없었다. 누군가 밑에서 사다리를 잡아주지 않으면 뒤뚱거리고 흔들리기 일쑤였다.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일이 두려워져서 나만의 공간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올라가는 것만큼이나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일이 공포였다. 누군가를 불러 사다리를 단단히 붙잡고 있으라고 당부하지 않고서는 이제 나의 아지트에서 지상으로 내려갈 수도, 지상에서 아지트로 올라갈 수도 없었다.

어느 순간 나무 사다리를 타고 그곳으로 올라가 나무 걸상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는 일들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곳에 감춰둔 비밀 일기장도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돌이켜 생각하면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던 그 시절만큼 나를 충만하게 해 주었던 시절이 또 있을까 싶어 진다.



인생이 정말 길 없는 숲 같아서/얼굴이 거미줄에 걸려 얼얼하고 근지러울 때/그리고 작은 가지가 눈을 때려 /한쪽 눈에서 눈물이 날 때면/더욱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성장을 통해서 가능한 것들의 영역이 점점 확대되기도 하지만 점점 축소되기도 한다. 어쩌면 가능하다는 것의 한계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는 것 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가능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일들을 재빨리 단념해 버리는 능력을 습득한 것인지 모른다. 어떤 것들이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 인생은 알 수 없는 숲 길 같다. 가능하다는 것도 생각 속에서만 가능할 뿐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깊은 숲 속으로 고개를 들이밀수록 작은 가지가 자꾸만 눈을 찔러 눈물이 날 때면 나도 시인처럼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쉴 새 없이 적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이 세상을 잠시 떠났다가

다시 와서 새 출발을 하고 싶어 진다

그렇다고 운명의 신이 고의로 오해하여

내 소망을 반만 들어주면서 나를

이 세상에 돌아오지 못하게 아주 데려가 버리지는 않겠지

세상은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

이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자작나무 타듯 살아가고 싶다

하늘을 향해 설백의 줄기를 타고 검은 가지에 올라

나무가 더 견디지 못할 만큼 높이 올라갔다가

가지 끝을 늘어뜨려 다시 땅 위에 내려오듯 살고 싶다

가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좋은 일이다

자작나무 흔드는 이보다 훨씬 못하게 살 수도 있으니까

로버트 프로스트


시인은 이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기에 자작나무를 타듯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자작나무의 끝 어린 소년이 나무를 타고 오른다. 나무가 감당할 만큼의 몸뚱이를 지닌 그 소년은 나무가 견디지 못할 만큼 높이 올라갔다가 최대한 아래로 가지를 늘어뜨려 내려오는 행위를 반복하며 가는 것과 돌아오는 것의 유희를 즐기는 어린 소년의 모습을 상상한다. 소년이 알고 있는 세계의 전부였을 자작나무 숲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다시 돌아와 새 출발을 한다면 유년의 나무 걸상 위로 나를 데려가고 싶다

날렵한 몸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레몬 빛 불 켜진 가로등 옆에 앉은 작은 여자 아이,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허둥지둥 사다리를 타고 다시 내려오던 볼 붉은 여자아이로 돌아간다면 나만의 비밀 노트에 이미 알아버린 인생에 대해 적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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