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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Jul 03. 2022

이 주의 시들-거품

쉽게 사라진다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거품을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네요.

거품, 액채나 고체 위에 생기는 방울을 뜻하는 말이죠. 높은 밀도의 기체가 위로 떠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고요. 하지만 이런 외형적인 모습이나 정의는 문학적으로 큰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건 거품의 성질에 있으니까요.

조금만 건드려도 터지고, 속이 텅 빈 풍선과도 같은 방울. 이게 사람들이 거품하면 흔히 떠올리는 모습입니다. 허무하고 실속이 없다는 의미로 자주 쓰이는 단어인 이유죠. 멀쩡히 있을 때보다 사라질 때, 속의 본질을 볼 때 거품은 문학적 효력을 발휘합니다. 따라서 허망한 이 방울들을 어떤 식으로 다루느냐가 이번 주제의 핵심이었습니다.

과연 어떤 작품들이 베스트 자리에 올랐을까요.
함께 보시죠.


1. P.Dybala님의 '거품'

https://m.fmkorea.com/4752304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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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너를 만날 때, 정말인지 작아보이기 싫었다.
네가 떠난 이후 여전한 내 모습을.
스치는 짧은 순간이라도 빛나보이고 싶었다.

자세를 바로잡고 가슴을 편다.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바르고
눈빛에 여유를 덮어본다.

오늘밤 내 일기장에는 씻어낸 거품만큼 작아진 내가 덩그러니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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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거품을 대하는 자세는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고 봅니다. 실속이 없는 걸 알고도 애써 꾸미기 위해 가져다 쓰느냐, 아니면 다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느냐. 화자는 전자를 택했네요.

시간이 지나서 만났을 땐 우리 둘 다 멋진 사람이 되어 있겠지. 예전에 작별을 고했을 때 들었던 말은 결코 인사치레가 아니었습니다. 그랬다면 화자가 이토록 간절히 거품을 바르지도 않았을 테니.

그렇게 애를 쓴 대가는 무엇이었을까요. 상대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고 얻은 얄팍한 당당함? 일기장에 적힌 진실을 보고 느낀 수치심? 어쩌면 둘 다일지도요. 여기서부턴 상상에 맡겨야겠죠.

잘 읽었습니다.


2. 진철28님의 '가게의 탁자'

https://m.fmkorea.com/4760180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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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왈칵 내 모든 열정을 쏟았다 생각했는데
거품에 가려져 안에 무엇이 사라져버렸네

남은 열정들을 모으고파 그릇을 뒤집으니
거품들이 그 위를 타고 올라 날아가선
두둥실 나를 떠나가니,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난 이제 아픈 기억만을 쏟고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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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투명하고 텅 빈 속을 가진 거품은 모순적이게도 진상을 덮는 일에 능합니다. 열정을 쏟은 일의 현황이 어떤지, 애지중지 아껴놓은 자산의 양이 어떤지 알고 싶어도 거품은 그 위를 덮어서 진실을 숨깁니다.

일이 이렇게 잘 되고 있었나? 이게 양이 이 정도로 많았나? 이런 생각이 든다면 그건 다 거품이 만든 작품입니다. 뭘 봐도 진짜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때는.

실상을 알아챘을 땐 늦어도 너무 늦었습니다. 거품은 나에게 빈 공간만을 선물로 주고 훌쩍 사라져버리죠.

잘 읽었습니다.


3. 전략평론가님의 '5월의 맥주 (거품)'

https://m.fmkorea.com/474539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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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를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수분은 빠져나가고
알코올은 흡수되어 내 몸의 세포를 뜨겁게 달군다.
살면서 그토록 뜨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술에 취한 듯 기억나지 않는다.

거품은 이런 나를 희롱한다. 
무거운 침묵이 거품으로 흘러내린다. 
한순간 부풀어 올랐다가
푸시시 꺼져버리는 거품처럼
삶의 청춘도 함께 소멸한다.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5월의 보리밭을 떠올려본 적이 없다. 
그것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내 삶의 부분들은
무엇으로 발효되었는지도 모른 채로
나는 오늘도 무심한 세월을 술잔으로 비워낸다.

지나간 기억들이 탄산가스처럼 
톡톡 나를 건드린다. 
형체 없이 다가오는 기억들은 
내 삶의 또 다른 행적인가. 
문득 술 속에 섞여 술이 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그리고 누군가의 가슴 속에 천천히 스며들어 
빛깔과 향기가 좋은 잘 익은 술이 되어 
그의 삶을 독하게 취하도록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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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생활 속에서 의미있는 거품을 찾으라면 은근히 자주 언급될 것 같은 맥주 거품이 소재로 쓰였네요. 맥주 > 거품 > 청춘 > 삶 > 소망으로 전개가 다소 널을 뛰지만, 맥주를 마셔야 생각할 수 있는 사색의 통일성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술은 참 부러운 존잽니다. 밤마다 사람들이 찾는 건 물론이고 날이 밝을 때까지 입술을 맞춰주죠. 애인이나 친구보다 더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도 있고요. 이쯤 되면 술 속에 섞여 술이 되고 싶다는 충동...이해가 좀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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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거품...상상력을 펼치기엔 안성맞춤이었던 단어였죠. 이미지하기 쉬운 특성도 있었고요. 글을 보고 어디에 생기는 거품인가 추측해보는 것도 재밌었습니다.

다음 주에도 좋은 작품들과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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