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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 사인에 대한 존중

나는 타인을 관찰한다

by 잇슈


몸이 아프면, 우울하거나 슬픈 게 아니라 서글퍼진다. 다른 나라에도 이 표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좀 더 복잡한 감정들을 섞어 놓은 것 같아서. 나는 이 단어를 가장 선호한다.


주변인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내 몸은 약하다.

어렸을 때는 다른 아이들처럼 술래잡기 놀이를 해도 혼자 코피가 나고는 했다. 한의원에서는 그걸 심장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알려줬다. 빠르게 달리면서 심장이 펌프질 하는데, 내 심장은 너무 약해서 그걸 못 견디고, 결국 모세혈관이 터지는 거라고. 실제로 중학생이 되면서 점차 놀이터에 가지 않게 된 후. 달리기 놀이도 줄다 보니. 점차 코피를 쏟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몸은 계속 약했기 때문에 중학교랑 고등학교 때도 교내에서 코피가 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초중고 내내. 그때 어떤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나 코피 나는 사람 처음 봤어.’


그렇게 나는 학교에서 몸이 약한 아이로 유명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태생이 약했으니까.


그러다가 2년 전, 죽을 뻔했던 대상포진을 경험한 후. 재활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대상포진은 두 번째였고, 재발한 그 질병이 남겨준 신경통은 어마어마했다.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상관없이 목 뒤 쪽과 등 허리, 때로는 손목을 타고 느껴지는 찌릿한 감각들이 엄청난 고통이었다. 그래서 다니기 시작한 운동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자기 중심성은 결코 누구도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듯하다.


필라테스 학원을 등록할 때. 나는 나의 여러 질병들을 줄줄이 나열했다. 해당 필라테스 학원이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교육도 받는 기관이었기 때문에. 학원에서는 나처럼 질병이 많은 회원은 처음이라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그 반응은 실제 수업에서의 행동과 일치되기 어려웠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나는 1:1 필라테스 수업을 들었고, 나의 강사님은 최대한 약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내 몸은 그조차도 따라가지 못했다. 필라테스를 받다가도 갑자기 허리에 문제가 생겨서 필라테스를 나가지 못하길 여러 번.


강사님은 자신의 기준에서 열심히 프로그램을 준비했고. 나는 그게 버거울 것 같다고 한사코 거절했음에도 시키는 대로 하다가. 그렇게 해보고 아프고, 도전하고 몸에 문제가 생기고. 여러 차례 몸져눕길 반복했다.


그리고 반년이 채 안 되게 고생하고 나서야. 필라테스 강사님과 나의 보폭이 맞춰졌다. 그 후 1년 넘게 필라테스를 꾸준히 한 지금은, 이전처럼 갑자기 몸에 통증이 재발해서 필라테스를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됐다.


자주 경험하는 상황이었다.

나의 질병은 주로 보이지 않는 곳에 빼곡하기 때문에. 내가 그들에게 무리라고 항변해도 ‘일반적으로’, ‘보통은’ 누구나 다 가능하다며 상대방이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는 일.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인간의 불신은 꽤 높았으니까.

상대와 자신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의 거절 사인을 한 번에 존중해 줄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자신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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