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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는 언제나 쌍방향

나는 타인을 관찰한다

by 잇슈


친구들은 내가 그들의 집에 놀러 가면 살짝 긴장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가 있는 친구들. 사실 나는 오은영 박사님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들의 집에 아동 상담을 위해 방문한 게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심리상담을 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내 친구들도 내 눈치를 볼 때가 있다.


눈치를 주지 않아도 눈치를 보게 되는 것.

어떻게 보면 그것 또한 인간이 지닌 기본적인 사회성일 것이다. 다만 이걸 어떻게 긍정적으로 활용하는가의 문제가 되겠지.


의외로 자존감이 불안정하거나 우울이 높은 사람들은 잘못된 눈치가 발달되어 있다. 그들이 눈치를 보는 부분은 자신이 심리적으로 취약한 부분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잠시 직장에 몸 담아 일할 때도 그런 사람들을 종종 만났다.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끝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일을 하는 직원

보고해야 하는 내용을 보고하지 않아서 문제를 일으킨 직원

개인적인 사유와 공적인 상황을 구분하지 못해서 다른 직원들을 경악하게 만든 직원


직장 내 인권 문제가 중요해진 건 알겠지만. 어디까지가 인권인지 그 지점을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직원들 때문에 오히려 상사가 역관광을 당하는 상황도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내 후임으로 들어온 직원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울었다. 그가 우는 상황은 간단했다.


“이거 왜 이렇게 한 거야?”


업무에 누락이 있었고, 나는 단지 질문했다. 그러면 그 직원은 ‘네?’하고 화들짝 놀라더니, 양쪽 입꼬리가 축 쳐지며 점점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그 직원은 우울증이 있는 상태였고, 그로 인해 곧잘 까먹거나 실수하는 등 업무에서 문제가 생기는 일이 많았다. 어떤 때는 비품 주문을 잘못해서 다른 물건이 오거나, 원하지 않는 물건이 대량으로 들어와서 예산 낭비가 된 적도 있었다.


그는 가정에 힘든 일이 있다고 했고, 그로 인해 우울증으로 약물 치료도 진행 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혼내거나 꾸짖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울기를 한 달 넘게 하자, 그걸 지켜보는 내가 오히려 정서적 학대를 받는 느낌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눈치를 보는 사람이 무조건 약자의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들이 불쌍한 존재라거나,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한 사회적 취약 계층이 아니라는 걸.


나도 심리상담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심리상담을 받으며 스스로 정화 작업을 했는데. 그 직장을 다닐 때도 나는 심리상담을 받던 중이었다. 그래서 회사의 상황에 대해서 말했다. 그러자 나의 상담사가 나에게 말했다.


“그러다 자기가 암 걸리겠네.”


실제로 나는 그 직원을 퇴사시킬 즈음에 자궁에 폴립이 생겨서 수술을 해야 했다.

근 1년을 함께 했지만, 그때까지 내가 그 직원에게 소리친 적은 딱 한 번이었다. 그 직원은 어느 날부터 자신의 업무 누락 실수에 대하여 계속 대표님 핑계를 댔고. 결국 대표님 앞에서 직접 확인해 보니, 대표님은 그 직원에게 지시한 일이 없었다는 걸 알았을 때. ‘너랑 더 이상 도저히 같이 일 못하겠다’라고. 일갈했다.


그때 대표님은 내가 직장에서 부하 직원한테 소리쳤다고 나를 비난했지만. 그 직원의 업무 실수를 수습하느라 크리스마스도 신정도 설날도 모두 반납했던 나는 당당했다. 그가 가정사와 우울증 문제가 있다고 해서 눈치를 보던 건 오히려 나와 다른 동료들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눈치는 언제나 쌍방향인 것이다.

직장인 상담 때 매우 유용하게 써먹는 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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