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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기묘한 존재

나는 나를 관찰한다

by 잇슈


어떤 날에는 어떤 음식을 먹어도 아무 맛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처음에는 이 감각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생강 김밥을 먹었을 때, 맛은 모르겠는데 혀끝은 얼얼한 걸 느끼며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 우울증 증상 중 하나였다.

우울증 내담자를 만나서 상담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녀는 음식에 대해 얘기할 때 유독 인상을 쓰고는 했다.


‘먹어봤자 아무 맛도 안 나고...’


그러다가 고개를 진저리 치듯 하는 행동을 보이고는 했다. 그때는 단순하게 그녀가 맛을 못 느낀다는 점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우울증으로 인해 미각이 둔해질 때마다 그녀가 떠올랐고. 그때 그녀를 온전히 공감해 주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후회가 밀려 올라왔다.


음식을 먹기는 하는데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마치 입 안에 어떤 고체나 물컹거리는 물질을 넣고 질겅질겅 하다가 못내 씹어 삼키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뭔가 목뒤로 넘기니까 목구멍에도 묵직한 감각은 스쳐 가는데. 정작 이게, 내가 먹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으니까. 오히려 더 진이 빠지고 버거운 감각.


‘내가 뭐 하는 거지’


생각하며, 뒤이어 올라오는 현실 자각 타임. 빼꼼 얼굴을 들이미는 자괴감 때문에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그런 순간들이 생겼다.

내 소중한 제자가 갑작스레 먼저 떠났을 때. 내 삶의 모든 것과 같이 사랑했던 외할머니와 사별했을 때. 우연한 계기로 온라인 사칭범을 알게 돼서 반자발적인 범죄 피해자가 됐을 때 등등. 나와 같은 슬픔과 고통을 느꼈을 내담자들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상담사도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는 이상. 내담자를 공감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여러 경험을 통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의 삶의 경험을 상담사로서의 삶에 대입해 본다는 건 나 자신을 더욱 겸손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사람과의 문제 때문에 우울해져 허덕이다가도.

이렇게 또 사람과의 문제에 대해 깨닫고 그 우울을 딛고 설 수 있기도 하다.

사람이란 기묘한 존재 같다. 나도, 다른 그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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