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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알려줘서 고맙다

나는 나를 관찰한다

by 잇슈


조금 버겁다고 느낀다. 심리상담사라는 직업을 소개한 후 열에 여덟에게서 경험했던 반응.


상담 사세요? 저 평소에 상담에 관심 많았는데. 뭐 좀 물어봐도 돼요?

좋은 일 하시네요. 근데 저도 심리학에 대해 궁금한 거 있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직업을 들으면, 자신이 그에게 아무렇지 않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고 여길 때가 있다. 우리는 처음 만났는데. 시작은 거의 비슷하다. ‘상담 또는 심리학에 대한 관심’, ‘상담 분야에 대한 호감 표시’, ‘상담사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긍정적 인상’, ‘상담실에 갈 예정이라는… 결말을 알 수 없는 그들의 계획’.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개인적인 자기 얘기와 몇 가지 질문들. 그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차분히 경청한 후 조심스럽게 의견을 얘기해 줬다.


"아마도 자존감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편하게 말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여러 번 깨우쳤다. 질문이 많은 사람들은 의외로 정답을 정해놓고 타인에게 묻는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그런 상태라는 걸 모른다. 그래서 답을 말하는 사람에게 곧바로 반문할 준비가 되어있다, 마치 자기 혼자 내면에서 해결하지 못한 싸움을 타인에게 의지해서 해소하려는 것처럼.


"아닌데? 나 자존감 높은데?"


예상대로 그는 나의 의견을 ‘우선’ 부정했다. 말끝의 톤도 높아졌고, 입술도 살짝 삐뚜름해졌다. 자잘한 짜증에 시동이 걸리고 있는 듯 보였다. 이럴 때 중요한 건 눈치이다.


나는 그에게 자존감이 낮다고 표현한 적 없어도 상대방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었다. 아마도 우리 사회가 만든 ‘높다’, ‘낮다’는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일 것이다. 사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은 곳에 있는 것처럼. 단지 단어 하나일 뿐인데도. 우리의 마음이 마치 한 겨울에 얇게 얼은 얼음의 그것처럼 언제 바스러질지 모르는 상태라면. 인간은 언제고 자기 자신을 지킬 준비가 되어있다. ‘공격이 최고의 방어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자신에게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상대방에게도 날을 세우는 것이다. 본인이 먼저 물어봤어도. 그걸 여러 번 겪다 보니 해결 방법을 찾았다. 이렇게.


"자존감이 낮다 높다는 건 사실 자존감 검사 후 볼 수 있는 그래프 결과와 관련된 평가고. 저는 자존감이 안정적이다 혹은 불안정하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자존감이 안정적일 때도 있지만, 스트레스가 많거나 어떤 사건을 겪으면 불안정해질 때가 있어요. 그렇게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아… 그렇네요. 불안정할 수 있어요. 최근에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네네."


그에게 걸린 건 결국 ‘낮다’는 단어 하나였을 듯하다. 남이 직접 언급하지 않은,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열등감. 깊숙하게 찔러 들어오려는 칼을 마주 잡는 것보다는 내 쪽으로 끌어안듯 당기는 게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 이제 잠시 이야기를 들어주면 이 시간도 지나가겠지. 그런 마음으로 잠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기도 했다.


나와 계속 인연을 이어갈 사람은 아니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됐다.

초면에 자신의 개인사를 보부상처럼 펼치는 사람에게서 배려심을 찾기는 어렵다.

첫인상이 그 사람의 모든 걸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에 대한 꽤 많은 단서를 준다.

차라리 처음부터 알려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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