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과 상해죄
매월 소년범을 만날 때마다 절대 빠지지 않는 범죄 행위 중 하나가 '폭행' 또는 '상해'이다.
둘 다 폭력을 휘두른 행위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을지 모르지만, 상해죄는 단순 폭행을 넘어 피해자에게 의료적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신체적 위해를 가한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폭행죄의 경우, 과거와 약간 달라진 점이 있는데. 아이들도 이제 어느 정도 알만한 내용들은 대체로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나라에서 결코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게 쉽지 않다는 현실을 아이들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부터 소년범 사건 중에서 약간 이상한 사건들이 경찰서에 오기 시작했다.
"피혐의자 임**은 20**년 7월 8일 13:11경 강원도 강릉시 **동 17번 길 한국고등학교 별관 1층 급식실 입구 앞에서 중식을 먹기 위해 급식실로 들어오던 피해자 김**이 피혐의자의 친구 이**과 어깨를 부딪혔는데, 피해자 김**이 사과를 하지 않고 지나쳤다는 이유로 김**의 팔을 끌어당기고 '이 **새끼야!'라고 욕을 하며, 급식실 밖으로 끌고 나가 피해자 김**의 얼굴을 주먹으로 5회 때려 피해자에게 안면골절이라는 진단을 받게 한 상해 행위를 가하였다."
사건을 살펴보는 동안 안면골절에 대해서 검색해 보기도 했다. 피해자가 정확히 어느 정도 다쳤는지 사전에 알아두는 것도 면담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사이 소년범 아이가 면담실에 들어섰고, 범죄심리사인 나를 슬쩍 보고는 까딱 인사를 한 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이는 살짝 짜증이 난 듯 자신의 머리를 흐트러뜨리기도 하였다.
그렇게 흔들어도 결국 짧은 머리카락이다 보니 휘날리는 것도 없지만 말이다.
코로 짙은 한숨을 내쉬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 면담 시작해도 될까요?"
"아, 예, 예."
아이는 살짝 긴장한 듯 혀를 짧게 내밀어 입술을 핥기도 한다.
내가 아이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동안 아이는 주로 단답형 대답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쥔 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것도 잊지 않은 것으로 보아, 꽤 초조하기도 한가 보다.
무엇이 아이의 상태를 그렇게 불안하게 만들었을까.
이런저런 질문을 통해 잠시 확인한 바로는 소년범과 피해자는 평소 복도에서 오다가다 마주쳐서 어느 정도 아는 사이였다. 약간 추가된 게 있다면, 피혐의자가 아니라 피혐의자 측 친구와 피해자가 평소에도 서로 사이가 안 좋아서 으르렁 거리는 사이였다는 것뿐. 그리고 소년범도 사실 피해자에게 맞았다는 사실이 추가됐다는 점.
"저기… 근데."
"아, 옙."
"이거 좀 심하게 때린 거 같은데… 그쵸?"
"… 예…."
"왜일까요? 뭐가 이렇게까지 화가 났을까?"
"하…."
"…."
잠깐이면 된다. 이미 아이는 스스로 설명할 준비가 되어있다.
아이가 앞서 보여준 긴장과 초조함이 가득했던 행동들이 그랬다.
그래서 아주 잠깐, 기다렸다.
"하… 아, 근데 진짜요."
"예."
"아니 근데 진짜 이게 좀 억울한 게요."
"그쵸, 억울하죠…. 본인도 맞았다면서요, 방금."
"아니, 그니까요. 근데 이 새, 아,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뭐 화가 나면 그럴 수도 있죠. 근데 방금 잘 참았어요. 지금 욕하면 안 되니까."
"아, 예, 감사합니다. 아니, 근데 진짜요. 걔가요, 먼저 그랬거든요? 그니까 먼저, 저보고 때리랬어요."
"아…!"
내 입에서 짧게 탄식이 나간다. 왠지 이후의 말은 더 들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느낌.
어느 날부터 오고 있는 사례들이 떠오르며, 이 소년범도 그 소년범들과 같은 사례일 것 같았다.
"아니, 그니까. 걔가 먼저, 서로 때리자! 그리고 서로 신고하지 말자! 이랬어요."
"아아…."
"그래서 저는 당연히 신고하지 않을 줄 알았죠!"
"아… 그럼 본인은 신고 안 했어요?"
"안 했죠! 안 하기로 했으니까요!"
"어… 허허…."
마치 산타할아버지의 그 소리처럼, 그저 헛웃음만 살짝 소리 내어 주었다. 눈은 웃지 않은 채로.
몇 달 전에도 서로 장난으로 한 대씩 치고 신고하지 말자고 했던 남자아이들 둘이, 각자 폭행으로 서로를 신고해서 서로가 소년범으로 경찰서에 와, 내가 면담을 했던 상황이 떠올랐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사건이 늘고 있는데, 왜 애들이 서로 이러고 있는지 어른인 나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어려웠기에 그냥 잠자코 듣고 있을 수밖에.
때리건 맞건,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아프지 않은가?
어쨌든 이후부터는 이제, 소년범의 억울함 가득 찬 하소연을 들어주는 시간이 시작된다.
그렇게 어느 정도 아이의 불만이 가라앉은 듯 보일 때.
"그래… 그래요. 이제 좀 마음이 어때요?"
"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이제…."
"그래요. 본인이 괜찮아졌다면 다행이죠. 근데 이번 사건을 통해 좀 배웠겠네요."
"네…."
"세상 참… 그쵸?"
"네…."
기운이 빠진 아이는 한층 누그러져있었다. 나에게 자발적으로 사과도 하니 말이다.
"앞으로도 친구가 신고 안 할 테니까 때려도 된다고 하면 때릴 거예요?"
"절대 아뇨."
다시 단호해지는 표정을 보며, 아이가 아직 화가 덜 풀렸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심리상담을 권유하며 면담을 종료했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서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물론 정당방위는 다른 문제이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상대가 '먼저 쳐봐', '먼저 때려', '내가 신고 안 할 테니까 때려봐'라고 말해도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분명 대다수의 어른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로 경찰서까지 오는 일이 거의 드물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아이들은 아직 '순진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등학생이 되어도 상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는 한다. 서로 안면이 있거나, 친한 사이일수록 더 그렇다. 아니, 어쩌면 가깝고 친밀하기 때문에 더 쉽게 그러한 말도 안 되는 제안에 금방 넘어가버리는 것도 같다.
그래서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사전에 교육해 줘야 하는 내용 중에는 이런 일들도 있다.
부모가 아이들과 같이 집에서 식사를 하거나 TV를 볼 때, 혹은 어디 같이 카페를 가거나 산책을 나갈 때, 혹은 취미 생활을 함께 할 때. 아니면 학급 조회나 종례 시간에.
'엄마가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
'아빠가 유튜브에서 봤는데…."
'너네 요즘 뉴스에 이런 일도 있는 거 봤니?'
이렇게 일상에서 넌지시 건네주는 듯한 조언 한 마디가, 분명 아이의 삶을 바꾸어 줄 수 있으리라.
오늘도 나는 그렇게 믿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