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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의봄 Jul 19. 2022

결혼 생활의 기쁨과 슬픔(3화-공준호)

당신의 결혼생활은 안녕하신가요?





  “탕탕탕, 탕탕탕!”

  무두질을 하는 준호의 손이 점점 거칠어진다. 아침 일곱 시부터 급한 주문의 마무리 작업을 했다. 무릇 예술가들은 밤 작업을 선호하는 것 같은데, 준호는 아침형 장인이다. 세심한 마감이 필요할 때에는 해가 떠오르는 이른 아침을 활용한다. 무두질은 한낮에 하는 편이나 오늘은 일부러 아침부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아홉 시가 다 됐는데도 안 일어난다고? 돈 버는 일도, 집안일도 내가 하는데 이제 식사 준비는 좀 자기가 해야 하는 거 아냐?’




 


  준호는 가죽 공방의 공방장이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 업이 되었다. 아직 주 2회 회사에 나가고 있다. 아는 형이 대표인 스타트업 회사에 원년 멤버로 시작해 회사 운영의 핵심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사이에 줄다리기를 하던 준호는 이 년 전 좋아하는 일로 공방을 열었고, 퇴사하겠다는 그에게 대표는 주 2회 근무를 제안했다. 준호를 대체할 인력을 만들 때까지 회사에 남아 달라는 것이었다. 준호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경제적 공백의 두려움이 있었더랬다. 그럼에도 퇴사를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 아정 덕분이었다.

  “괜찮아! 주문 잘 안 들어오면 내가 다시 취업하면 돼.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야지. 안 그래?”

  준호는, 아정이 다시 취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제 편에서 말해주는 게 고맙고 힘이 되었다.

  살던 아파트를 팔아 골목 상권이 살아나고 있는 오래된 동네의 이층 구옥을 샀다. 아파트를 판 돈으로 집을 사고, 주거 공간과 공방 리모델링까지 해결되었다. 이사 온 날부터 아들 주원이는 1층과 2층을 넘나들며 (아파트에 살 때 뛰지 못한) 한풀이를 하듯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자기 덕분이야. 자기가 용기를 줘서,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작업장이 집 안에 있으니 언제든 일할 수 있고, 일하다가 피곤하면 쉴 수 있고, 주원이도 마음껏 뛸 수 있고, 잘한 것 같아.”

  준호는 아정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2층 거실 통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보며 준호는 소박한 일상의 행복을 느꼈다.

 







  “아빠 배고파.”

  주원이 1층으로 내려왔다.

  “엄마는?”

  “자고 있어.”

  준호는 입에서 ‘어휴 이 여편네’라는 말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주원을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 시리얼에 우유를 타 주었다. 준호는 아정의 핸드폰을 열어 핸드폰을 마지막으로 사용한 시간을 추측해 보았다. 새벽 두 시에 게임 아이템을 결제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어휴. 언제 철들어?’

  준호는 아정을 흔들어 깨웠다. 세상모르고 깊은 잠을 자던 아정은 무거운 눈꺼풀을 몇 차례 들었다 내렸다 반복하다가 자신의 핸드폰에 손을 뻗어 시계를 확인했다.

  “응? 아홉 시가 넘었어?”  

  아정은 벌떡 일어났다. 급하게 양치와 세수만 하고 나왔는데도 아정의 얼굴에 빛이 났다. 준호는 화가 머리끝까지 오르다가도 아정의 얼굴을 보면 차마 모진 말을 할 수 없었다. 아정은 티 없이 밝고 긍정적이고 순수하고 착했다. 마음과 얼굴 모두 그랬다. 아정은 서둘러 주원의 옷을 갈아입혔다. 분무기를 뿌려 까치집이 된 주원의 머리를 가지런히 다듬었다.

  “오빠, 주원이 데려다주고 올게.”

  “응.”

  ‘하나, 둘, 셋, 넷.’

  준호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다섯을 세기 전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정이 2층으로 뛰어 올라왔다.

  “뭐 빠뜨렸어?”

  “주원이 마스크!”

  준호는 얼른 수납장에서 마스크를 꺼내 스트랩을 끼워 아정에게 전해 주었다.








  팔 년 전이었다. 준호는 적금 통장을 만들기 위해 직장 근처 N은행에 갔다. 자신의 번호표에 일치하는 숫자가 뜬 창구로 걸어가고 있었다. 고개 숙인 그녀가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함박웃음을 보냈다. 준호는 순간 몸이 굳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고객님? 고객님?”

  “아, 아 네....”

  “어디 불편하신가요? 보안 요원 불러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연예인 사이에 섞여 있어도 밀리지 않을 마스크였다. 잡티 하나 없이 하얀 살결, 날씬한 몸매, 165센티미터쯤으로 보이는 키까지. 완벽했다.

  준호는 며칠 동안 그녀 생각에 잠을 설쳤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매일 N은행에 방문했다. 그녀의 고객이 되기 위해 대기 순번표를 한 번에 네 장씩 뽑았다. 띄엄띄엄. 그녀가 아닌 다른 창구에 뜨는 번호표를 버렸다. 하루는 예금 통장을 만들고, 또 하루는 복리 어쩌고 하는 장기 저축형 보험에 가입했다. 촌스럽게 이러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연락처를 물어보자고 마음먹고 가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날도 실패였다. 드럼이나 실컷 두드리며 답답한 속을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원 문을 열자 어디선가 빛이 새어 나왔다. N은행 창구에서 뿜어 나오던 빛이었다. 그녀였다.

  “준호 씨! 우리 동호회 새로 들어온 반주자야. 인사해.”

  “어? 공준호 고객님, 여기 동호회 회원이세요?”

  “뭐야? 두 사람 아는 사이야?”

  “아, 저 N은행 00 지점에서 일하는 데요. 저희 은행 단골 고객이에요. 오늘도 오셨죠?”

  눈치 빠른 동호회 회장은 준호를 향해 ‘알겠다’는 눈빛을 보내더니 두 사람이 친해지도록 적극 나섰다. 아정과 준호는 그렇게 연인이 되었다. 아정보다 일곱 살이 많은 준호는 어린(당시 아정은 스물일곱이었다) 아정과 연애를 오래 이어가면 결혼 타이밍을 놓칠 것 같았다. 준호는 계획적으로 실수를 했다. 아정은 임신을 했다. 울먹이는 아정에게 준호는 약속했다.

  “일 하기 싫다고 했잖아. 일 안 해도 돼. 내가 평생 여왕처럼 모시고 살게. 집안일도 내가 하고. 자기는 내 옆에 있기만 하면 돼. 결혼 준비? 할 거 없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몸만 들어오면 돼. 우리 곧바로 결혼식 날 잡자. 비행기 탈 수 있을 때 태교여행 겸 신혼여행 가고. 응?”

  “오빠 정말이지? 약속 지켜야 돼. 결혼식 하고 나면 곧바로 퇴사할 거야. 오빠 나 책임져.”

  “당연하지! 최아정을 평생 여왕으로 모실 것을 약속합니다!”








  일사천리로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결혼식에 온 준호의 친구들은 입을 모아 신부의 미모를 칭찬했다. 어떤 친구는 신랑의 어깨를 후려치며 ‘자식 능력 좋네.’라고 말했고, 또 어떤 이는 준호의 배를 주먹으로 가격하며 ‘와! 너만 좋냐?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있을 거 아냐. 나도 소개 좀 시켜 줘.’라고 말했다. 미인의 남편이 된다는 건 이런 것이구나. 부러움과 시기심이 담긴 주먹세례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거구나. 아무렴 어때. 저 여자는 내 거다. 내가 저 여자의 남자다. 올라간 준호의 입 꼬리가 내려올 줄 몰랐다.








  임신을 해서 몸이 무거워 그런 줄 알았다. 주원이가 태어나서, 아기를 키우는 게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그러려니 했다. 준호가 퇴근 후 돌아오면 집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바닥에는 아정의 머리카락과 먼지가 쌓여갔고, 주원이가 흘린 과자 부스러기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준호는 일단 한 번 한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아정은 준호 마음도 모르고 해맑게 웃으며 준호를 반겼다. 주원과 함께 강아지처럼 현관으로 달려 나와 준호의 오른쪽, 왼쪽에 매달려 뽀뽀를 했다. 주원의 옷과 얼굴에는 뭘 먹다가 묻힌 것인지 알 수 없는 얼룩이 매일 묻어 있었다.

  “오빠 오늘도 힘들었지? 우리 빨리 밥 해 먹자.”

  ‘그래. 혼자 애 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내가 빨리 치우면 돼. 청소 10분, 주원이 옷 갈아입히고 씻기는 건 밥 먹고 10분만 하면 돼. 오케이! ’

  10분 만에 대강 청소를 마치고 쌀을 안쳤다. 내일 아정과 자신이 먹을 아침 식사, 아정이 혼자 먹을 점심까지 고려해 넉넉하게 쌀을 퍼 담았다.  

  집안 곳곳, 준호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이 점점 지저분하다 못해 더럽고 비위생적으로 변해갔다. 아정은 냉장고의 음식물이 썩어 뭉그러져도 몰랐다. 화장실의 물때도 남의 일이었다. 준호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고 평일에는 아정이 차를 몰았는데, 주말에 나들이라도 가려면 차 청소부터 시작해야 했다. 일주일 동안 아정이 사 먹은 테이크아웃 커피 잔과 주원의 저지레 때문에 차가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오빠! 내 카드 못 봤어? 자주 쓰는 체크카드 있잖아.”

  가방을 뒤지며 카드를 찾던 아정은 가족이 모두 잠을 자는 침구 위에 가방 속 짐을 꺼내 늘어놓았고, 급기야 가방을 뒤집어 그 위에서 털었다.

  ‘헛. 이 여자, 정말 지저분하구나.’

  준호는 욕실 물 얼룩도 허용하지 않는 집에서 자랐다. 욕실 세면대를 사용하고 나면 세면대 젠다이 위에 올려진 하얀색 수건으로 수전이나 거울에 튄 물을 닦고 나오는 것이라고 배웠다. 샤워 후에는 자신이 사용한 수건으로 웬만한 물기를 다 닦아 샤워 전과 비슷한 보송보송한 욕실로 돌려놓고 나오는 게 다음 사람을 위한 매너. 물건은 마땅히 제 자리가 있고,  집이라면 청결함과 쾌적함을 유지해 온전히 휴식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준호는 퇴근 후 집안일에, 요리에, 주원이를 씻기고 놀아주는 것까지 하고 나면 넉다운했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 싶어서 엄마께 S.O.S 요청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만 들러서 반찬 만들기와 집 청소를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준호가 출근했을 때 집에 들른 엄마는 기겁을 했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준호에게 전화해 며느리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다. 엄마를 한 번만 더 불렀다간 엄마와 아내 사이에서 새우등만 터질 것 같았다.

  준호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일주일에 한 번 청소 도우미를 불렀다. 반찬을 배달시키고, 한 번에 다 때려 넣으면 완성되는 밀 키트를 사 먹기 시작했다. 아정은 자신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만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자신의 주변이 흙탕물이 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그렇게 되고 있는 게 보이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준호는 그녀를 미워할 수 없었다. 아정은 결혼 후 지금까지 준호에게 단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준호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아정이 화내는 걸 보지 못했다. 본투비 평화주의자랄까. 아정은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항상 ‘우리 남편이 최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뭐 이 정도로 최고라는 말까지, 라는 생각이 들면 조금 쑥스럽다가도 칭찬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은 없기에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걸 숨길 수 없었다. 주택에 이사 온 후에는 가끔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아정과 피아노, 드럼 합주를 했다. 그 순간 둘은 세상에 하나뿐인 소울메이트였다. 한 번 잠들면 업어 가도 모르는 효자 아들 주원은 엄마와 아빠에게 달콤한 시간을 선물했다. 합주 후 무르익어 가는 밤하늘을 보며 와인 잔을 부딪쳤다. 그럴 때면 어딜 가도 눈에 띄는 여신 같은 미모의 이 여자가 자신의 아내라는 게 새삼 감사하고 축 처진 어깨가 저절로 쫙 벌어졌다.

  공방을 오픈하고부터는 아정도 일을 돕기 시작했다. 주문을 받고 택배를 부치는 일을 아정이 맡았다. 아정은 준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집에 이어 공방도 어지르기 시작했다. 한 번은 아정이 재료 판매 사장님께 해야 하는 계좌이체를 엉뚱한 곳에 하는 바람에 준호가 직장에서 은행으로 달려간 일도 있었다. 준호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이었기 때문이다. 전직 은행원이었다는 게 무색하리만큼 돈에 대한 감각이나 개념이 없는 아정을 보며 준호는 아연실색했다. 아정에 대한 준호의 불만이 새벽녘에 소리 없이 내리는 눈처럼 쌓여갈 즈음 아정이 SNS에 자신의 얼굴과 함께 찍어 올린 제품 사진을 보고 주문하는 고객이 많아졌다. 아정은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활용해 준호의 제품을 홍보하는 데에 탁월했다. 남성용 가죽 지갑, 벨트, 출근 가방, 자동차 키홀더 등이 잘 팔렸다. 주문자의 팔 할은 남자였다.





  


  주원의 유치원 엄마들과 만나고 돌아온 아정이 준호에게 물었다.

  “오빠 있잖아. 주원이 반에 미미라고 있는데 그 엄마가 서기관이라네.”

  “서기관? 4급? 엘리트구나.”

  “응. 그 언니 완전 슈퍼우먼이야. 직업도 좋은데 소설가 되려고 새벽마다 글 쓴대. 근데 남편이 가부장적이고, 아내가 순종적이길 바란다나.. 그 얘기 듣는데 오빠한테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눈물 날 뻔했어. 나는 오빠한테 불만이 하나도 없거든. 요즘은 오빠 공방 일을 조금 돕고 있지만 사실 난 직장도 없고 집안일도 별로 안 하잖아. 오빠는 나한테 불만 없어?”

  잠깐 준호의 동공이 흔들렸다.

  ‘말할까? 말까? 말하면 실망할까? 자신은 불만이 없다는데 나는 이것저것 늘어놓으면 어떻게 될까?’  

  아무래도 팔 년간의 평화가 한 방에 깨질 것 같았다. 준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내가 자기한테 불만이 왜 있겠어? 밖에 나가면 다들 부럽다고 난리야. 아직도 미인이랑 사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사람도 있어.”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우리는 천생연분이야.”

  잠시 긴장한 아정은 준호의 대답을 듣고 얼굴에 활짝 꽃이 폈다. 준호의 목을 끌어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







  준호는 오랜만에 드럼 동호회에 나갔다.

  ‘인생은 균형이다. 신체의 좌우 밸런스가 맞아야 건강하다. 하나를 더하면 하나를 빼야 균형을 잃지 않는다. 우리 가정의 균형은 내가 지킨다.’

  준호는 머리를 흔들며 드럼을 가열차게 쳤다. 모든 분노를 스틱에 담아. 둥딱 두둥둥딱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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