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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의봄 Jul 14. 2022

결혼생활의 기쁨과 슬픔(2화 - 유인혜)

당신의 결혼생활은 안녕하신가요?




  “엄마 나 해냈어. 엄마 덕분이야 고마워.”

  인혜는 책상 앞 커튼을 열어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큰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눈물이 흘러내리는 대로, 그대로 두었다. 몇 분간 그렇게 있었다. 엄마가 하늘로 가신 후 지금까지 살아온 일들이 32배속으로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엄마가 서두르지 않았더라면 인혜는 혼주석에 쓸쓸히 앉아계신 아빠를 보았을 것이다. 그 몸 상태에 어떻게 그런 에너지가 나왔을까? 그게 모성애인 것일까? 십 년 넘게 제자리에 얌전히 있던 뇌종양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자 인혜의 엄마는 극심한 두통을 호소했다. 검사를 위해 머리를 열어야 했다. 예상대로 손쓰기 어려운 위치에 그것이 있었고, 새롭게 악성 종양이 생긴 것까지 확인했다. 의사는 어렵다고 말했다. 환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남은 생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는 말이었다.



  인혜의 엄마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예상한 사람처럼 담담했다. 일 년 뒤쯤으로 생각했던 인혜 결혼식을 서둘러 진행했다.

  결혼 후 인혜는 군포시에 자리를 잡았다. 남편 서진의 회사와 가까운 곳이었다. 인혜가 근무하는 병원과도 비교적 가까웠다. 멀다 해도 인혜는 상관없었다. 인혜는 임신과 동시에 육아 휴직을 쓰고, 휴직이 끝나면 퇴사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교대 근무를 하는 인혜와 주 5일 근무를 하는 서진은 휴일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인혜가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직감한 서진은 무리해서라도 인혜와 휴일을 맞춰 장모님이 계시는 양산에 내려갔다. 그렇게 5개월을 보낸 뒤 인혜 엄마는 하늘로 갔다.

  임신, 출산을 거치는 동안 인혜 눈에는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 부모를 떠나보내고 몇 년은 시도 때도 없이 부모님께 못 해 드린 게 생각나 가슴을 치며 통탄할 것인데 하물며 임신을 했으니 호르몬 변화 때문에 더욱 감정 변화의 폭이 컸던 것이다. 별이를 낳고 젖몸살을 앓을 때 엄마 생각이 얼마나 나던지. 자신을 낳았을 때 엄마도 그랬을까? 그때 엄마도 엄마가 없었지. 우리 엄마 외로웠겠다. 우리 엄마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겠다. 라고 인혜는 생각했다.






  별이 첫 돌이 지났을 무렵, 인혜의 생활이 안정을 찾았다. 불현듯 쏟아지는 눈물도 횟수가 줄었다. 도움 청할 곳이 한 군데도 없는 타향살이 독박 육아의 외로움, 우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혜는 살림에 재미를 붙였다. 아이를 데리고 참여할 수 있는,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하는 요리 수업을 들었다. 요리를 배우고, 참여자들이 다 같이 만든 음식을 먹으며 육아나 살림 노하우를 나누는 자리였다. 서진은 나날이 늘어가는 인혜의 음식 솜씨를 섬세하게 알아챘다.



  “요즘 퇴근 시간 다 되면 기대된다니까. 오늘 저녁은 뭘까? 별이 보면서 어떻게 음식을 뚝딱뚝딱 만드는 거야? 난 혼자 별이 볼 때 밥도 못 먹겠던데 말이야.”



  인혜는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퇴사 후 오랜만에 받아 본 인정이었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일은 잘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낳았으니 당연히 잘 키워야 하는 것이었다. 인혜가 별이를 아기띠로 메거나 유모차에 태워 카페에 친구를 만나러 나가면 ‘맘충’인데, 서진이 그렇게 하면 ‘라테 파파’가 되었다. 아이를 돌봐주는 곳에 맡기고 다시 일을 해볼까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이내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진은 야근이 잦았고, 인혜는 삼 교대 근무를 해야 하니 일반적인 보육 기관에서 별이를 온전히 돌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를 돌봐주는 이모님을 따로 구해야 했다. 인혜 월급의 절반은 이모님 월급으로 드려야 할 것이었다. 교통비 등 사회생활로 발생하는 지출과 지금보다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줄어드는 별이를 생각했다. 무엇보다 인혜는 교대근무를 하는 삶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별이가 좀 크면, 교대 근무하지 않는 일을 알아보자. 지금은 별이에게 누구보다 내가 필요한 시기니까 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자.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잖아?’






  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인혜에게 자유 시간이 생겼다. 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인혜는 요리와 집 정리에 매진했다. 아기 반찬이나 자신이 점심때 먹을 음식을 정성스럽게 마련했다. 요리 과정을 사진으로 남기고, 그것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일기처럼 매일 남긴 요리 글이 꽤 쌓였을 때 블로그에 자주 방문하는 이웃이 인플루언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플루언서?’

  경력이 단절된 주부인 자신에게 인플루언서라는 소셜 포지션이 생긴다면? 인혜는 새로운 희망을 본 듯했다. 요리 인플루언서에 지원해 몇 번 떨어진 후 인혜는 리빙 인플루언서로 방향을 돌렸다. 백일 동안 여기저기서 배운 살림 노하우에 자신이 터득한 것을 더해 성실히 글을 썼다.

  “자기야 나 리빙 인플루언서 합격했어!!”

  인혜는 회사에 있는 서진에게 전화를 걸어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거 되면 뭐가 좋아?”

  “일반 블로거보다 광고 수입이 좀 더 많고, 협찬을 받을 수도 있어. 내가 잘하면 원고료를 받고 글을 쓸 수도 있고.”

  “광고 수입? 유튜버들처럼 그런 거야? 얼마나?”

  “글쎄. 지금까지 한 달에 5만 원쯤 수입이 발생했거든. 이제 10만 원 넘기는 게 목표야. 제품 협찬받아서 생필품 구입 비용 아끼는 것까지 계산하면 실수입이 월 20~30만 원 정도 되지 않을까?”

  달뜬 인혜와 달리 서진의 반응은 바람 빠진 고무풍선 같았다.

  “난 또.. 뭐 백만 원은 되나 했지. 알겠어. 오늘 저녁은 뭐야?”

  인혜의 두뇌회로가 잠시 멈춘 듯했다. 자신의 노력과 성취를 숫자로 재단당한 기분. 결혼할 때만 해도 주위 사람들은 입을 모아 서진 보다 인혜가 아깝다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서진은 신생 게임 개발 업체의 신입 사원이었다. 게임 시장이 발전하면서 서진의 연봉도 대세에 따라 성큼 올랐다. 연봉만큼 서진의 자부심도 커졌다. 혼자서 맞벌이 가정만큼 해내고 있다는 자부심은 조금씩 오만함으로 변해갔다. 돈으로 값어치를 계산할 수 없는 인혜의 육아 노동에 자본주의적 사고를 들이대며 묘한 우월감을 드러냈다.






  어릴 때부터 친자매처럼 자란 사촌동생 미지가 옆 동네로 이사 왔을 때였다. 인혜는 친정엄마처럼 큰 냄비에 국을 끓여 맞벌이를 하는 미지네에 갖다 주었다.

  “언니랑 가까이 사니까 좋아. 배달 반찬에 물렸는데, 언니 요리 왜 이렇게 잘해? 애 둘 키우는 집이 어쩜 이렇게 깔끔하고. 언니 정말 능력자야. 형부는 언니 업고 다녀야 돼.”

  서진도 그렇게 생각할까? 인혜가 매일 좋은 재료로 가족을 위해 건강한 음식을 마련하고, 쾌적하고 편리한 집을 유지하는 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할까? 단 한 번이라도 그렇게 여긴 적이 있을까?



  서진이 장출혈로 입원했을 때 인혜는 소화기 내과 병동에서 근무했다. 살살 문질러서 따끔하는 느낌도 들지 않을 만큼 부드럽게 링거를 꼽는 인혜에게 서진은 반했다. 사실 인혜의 얼굴을 보느라 링거를 꼽는 줄도 몰랐다. 서진은 결혼을 미루다가 때를 놓쳐 인혜를 잃을까 전전긍긍했다. 결혼을 미룬 것은 인혜였다. 뭐든 잘한다고 소문난 인혜는 일 뿐만 아니라 여행, 취미생활 등 자신의 모든 삶에 진심이었다. 평생 혼자 살아도 즐거울 것 같은 사람이었다. 인혜 엄마의 건강 문제로 결혼이 앞당겨져 서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예비 장모님의 건강 문제야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덕분에’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불경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솔직히 그러했다.







  “찬이 아빠 무슨 일 해요?”

  별이가 유치원에 가고, 찬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만나는 동네 엄마들이 더 많아졌다. 모 게임 회사의 게임 개발자라고 말하면 여러 사람 입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오영경이 말했다.

  “외벌이라도 여유 있겠어요. 저는 회사 때려치우고 싶은데 집 대출금 상환이며, 애들 교육비며, 아빠만 벌어서는 답이 안 나와요. 회사에서 복직 압박이 심해서 지난달에 복직했어요. 지금 거의 최저 임금만 받고 재택근무하고 있어요. 날짜 맞춰 완성된 작업만 넘겨주면 되는데, 가끔 촉박하게 일이 들어오면 밤새야 돼요. 그래도 수입이 좀 더 생기니 숨통이 트여요.”

  점점 인혜의 가정 경제에 여유가 생기긴 했다. 인혜는 달갑지 않았다. 진의 야근과 육아에 대한 무관심, 집안일에 대한 무신경과 바꾼 여유였다.     







  별이가 세 살 이었을 때, 인혜는 보건직 공무원 시험공부를 잠깐 했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입덧을 시작했다. 시험에 합격하고 생겼으면 좋았을 텐데, 찬이가 생겼다.

  두꺼운 책을 다시 들춰보았다. 몇 년 사이에 바뀐 내용이 있겠지만 책을 새로 사야 할 만큼 바뀌진 않았을 것이었다. 바뀐 부분은 예상 문제나 기출문제를 풀 때 파악해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문제 유형이나 시험공부 전략 같은 것은 대충 파악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보육 기관에 가 있는 동안 집중해서 공부한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삼 교대를 하지 않고, 자신의 경력을 살려 할 수 있는 일에 가장 적합한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 둘을 낳고 마흔이 다 되어 공부를 시작한다는 게 만만치 않았다. 찬이를 아파트 관리동 어린이 집에 맡기고 아파트 내 독서실로 출근했다. 딱딱한 독서실 의자에 앉아 공부하는 동안 수시로 허리가 아팠다. 허리가 아프면 일어나서 아파트를 한 바퀴 걸었다. 예전처럼 건강한 음식으로 점심을 만들어 먹을 여유가 없었다. 레토르트 식품을 잔뜩 사서 냉동실에 쟁여 두었다. 조리 시간은 5분 미만이어야 했다. 식사 20분, 양치 5분, 30분 만에 집에서 나와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걷고 또 공부했다.



  시간이 빠듯했다. 돌아서면 아이들을 픽업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딴짓할 겨를이 없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바삐 씻기고 저녁을 준비했다. 좋은 재료로 가족들에게 건강한 한 끼를 차려주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다음날 아이들이 입을 옷가지를 챙겨 놓으면 저녁 여덟 시였다. 그때부터는 서진이 아이들을 맡았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잠이 들면 불을 끄는 것이었다. 처음에 서진은  그조차도 힘들어했다. 별이와 찬이가 읽고 싶은 책이 달랐고, 찬이가 엄마를 찾으며 칭얼댔다. 인혜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했다. 아무리 울며 서재 문을 두드려도 엄마가 나오지 않자 찬이는 아빠와 누나가 있는 침실로 돌아갔다.







  인혜는 그렇게 몸과 마음과 시간을 쪼개 공부했다. 이 년이었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였다. 보건직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에서 선배 공무원들이 남긴 글을 읽었다. 집 근처로 발령날 거라고 기대하면 안 된다는 말, 코로나 때문에 업무량이 많고 야근이 잦다는 글이었다. 별이와 찬이의 하교와 하원이 문제였다. 신입이 육아 시간을 쓰면 눈치가 보일 것이었다. 육아 시간을 쓸 수 있는 분위기라 하더라도 처음에는 일이 낯설고 서툴러 늦은 퇴근을 각오해야 할 것이었다.



  서진이 조금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을 집에 데리고 오더라도 그동안 인혜가 맡아 온 수많은 집안일이 문제였다. 서진은 지난 8년간 육아와 집안일 일체를 인혜에게 맡겨두고 자기 일에만 신경 썼다. 서진의 정식 출근 시간은 여덟 시고 퇴근은 다섯 시였지만 유연 근무가 허용되는 회사였다. 보통 아홉 시까지 출근하고 퇴근 시간은 들쑥날쑥했다. 여유가 있을 때는 다섯 시에 퇴근하기도 했고, 바쁠 땐 밤 열두 시가 다 되어 집에 들어올 때도 있었다.

  서진은 앞으로 두 사람이 어떻게 역할 분담을 해야 아이들을 돌보며 맞벌이할 수 있을지 감이 없었다. 육아와 집안일을 도통하지 않은 사람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림이 그려질 리 만무했다. 대대적인 역할 분담과, 자신의 역할만큼은 책임 있게 해내겠다는 각오와 다짐이 필요했다.

 


  “발령 늦출 수 없어? 성적이 낮으면 곧바로 발령 나지 않을 수도 있다던데, 방법이 있지 않을까?”  

  앞에 있는 사람은 모르는 것이다.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인혜가 왜 공부에 영혼을 갈아 넣었는지. 자신의 이름이 아닌, 누구누구 엄마, 누구의 아내로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 인혜는 숨이 턱 막혔다. 인혜는 이제 자기 이름으로 살고 싶었다. 자신의 노력을 제대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런 삶을 눈앞에 두고 대기 발령을-선택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언니, 지금까지 언니가 해오던 육아와 집안일의 절반을 형부가 맡아서 하지 않으면 맞벌이하기 힘들어. 여자가 남자보다 체력이 더 좋은 것도 아니고, 게다가 애 둘 낳는 동안 몸이 상해서 예전 같지 않잖아? 난 언니가 그런 체력으로 공부한 것도 대단해. 그게 어디 체력 때문이었겠어? 정신력으로 한 거지. 형부가 너무 편하게 살아와서 모르는 거야. 육아며 집안일이 얼마나 힘든지.”



  맞벌이하며 집안일, 육아를 잘 분담하고 있는 롤모델인 사촌동생 미지가 말했다. 미지의 남편 형욱은 세련된 ‘요즘 아빠’였다. 엄마가 없을 때 아이들 볶음밥 정도는 뚝딱 만들어서 해 먹일 수 있는 남자, 처사촌 집에 와서 자기네 아이 둘과 조카 둘까지 양쪽 팔에 끼고 책을 읽어주는 남자, 신혼 초부터 지금까지 메이크업 때문에 아침 출근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이 드는 아내 대신 아침 식사 준비를 도맡아 해 온 남자였다.

  “미지야, 네가 형부한테 얘기 좀 해주면 안 돼? 형부는 내가 집에 오래 있어서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는 줄 알아. 가사 노동이 얼마 만큼의 강도 인지도 몰라. 안 해봤으니. 부탁할게. 네가 좀 도와줘.”


 

  미지 이야기를 듣고 서진은 마지못해 노력해보겠다고 말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마뜩잖았다. 인혜의 발령이 났다. 집에서 멀고 대중 교통편이 좋지 않은 곳이었다. 인혜는 차를 샀다. 서진은 평택에 있는 엄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저희 동네로 이사 오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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