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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의봄 Jul 12. 2022

결혼생활의 기쁨과 슬픔(1화 - 감은수)

당신의 결혼생활은 안녕하신가요?

 



  은수는 오랜만에 만난 삼십 년 지기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시작했다.

  “오빠가 회사를 그만둔 이후부터인 것 같아. 처음에는 일이 안 풀려서 예민하고 짜증이더니, 일이 잘 되면서부터는 세상에서 자기 말이 제일 옳고 정답이야. 답정남에 고집불통에. 대화가 안 돼. 내가 큰맘 먹고 어떤 일이 있어도 일주일은 화내지 말고 참아 보기로 했거든. 오늘 4일째인데, 패턴 파악했어.”

  은수의 얘기를 듣던 미지는 한참 남편과 하루걸러 다투던 시절을 떠올렸다. 불과 일 년 전 일이다. 그때 미지는, 자고 있는 남편의 머리통을 발로 걷어차고 싶을 만큼 분노가 치밀었노라 고백했다. 은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영화에서 남편을 증오하지만 겉으로 티 내지 않는 여자가 나왔어. 남편이 깊이 잠들어 있을 때 남편 뺨을 세게 두 세대 때렸어.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 베개에 눕더라. 곧바로 남편이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깼어. 여자는 그제야 잠에서 깼다는 듯 눈을 비비며 남편을 향해 말했지. ‘My sweet honey, what's the matter?’ 남편은 얼얼한 자신의 볼을 한쪽 손으로 만지며 ‘Maybe it was a dream.’이라고 말한 다음 다시 잠이 들었어.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한 줄 알아?”

  은수가 이어서 말했다.

  “너도 그렇게 하려고?”

  재은이 물었다.

  “여차하면.”

  은수가 대답했다. 셋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상상만으로도 쾌감이 전해졌다.



  “그래서, 파악했다는 패턴이 뭐야?”

  미지가 물었다.

  “그냥 넘어가는 말이 없어. 내가 어떤 생각을 얘기하면 꼭 반박하더라? 반박을 수긍하지 않고 내가 재반박하면 싸움으로 번지는 거야. 화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거 몇 번 참았어.”

  은수 말에 미지와 재은은 제각기 자기 상황에 비춰 말을 얹었다.

  “네가 먼저 노력해 보고, 그다음에 오빠한테 얘기해 봐. 자기가 그러는 줄 모를 거야. 얘기해도 고치지 않으면 상담받아 봐. 예전에 한참 남편이랑 사이 안 좋을 때 상담을 몇 번 받았는 데 도움 됐어.”

  은수는 미지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남편은 내 말에 반박한 적이 없어. 내가 ‘이렇게 하자. 이게 좋겠다.’라고 말하면 별다른 의견 없이 그렇게 해.”

  재은이 말했다.

  “그래 그거였어. 나랑 미지가 남편과 자주 다투는 이유가. 양쪽 다 지지 않으려는 거. 우리 조카가 그러는데, 자기 아빠랑 엄마는 안 싸운대. 아빠가 엄마 말을 잘 듣는다나. 그 말을 듣고 오빠랑 새언니를 관찰해 보니 오빠가 새언니 말을 무조건 수용하더라.”

  은수는 자기가 한 말을 곱씹는 듯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은수는 결혼이 자신에게 주고 있는 기쁨과 슬픔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스물일곱에 5급 행정고시에 합격한 은수는 서른아홉인 현재 4급 서기관이다. 서울 살이를 정리하고 고향인 대전 근처로 내려온 지 십 년이 다 되어 간다. 공부머리, 일머리를 타고나 이른 나이에 5급 사무관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일 년 육아 휴직을 했지만 복직 후 금세 제자리를 찾았고, 전보다 더욱 탁월해진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작년에 4급으로 승진했다. 가까이 계신 친정 엄마가 육아를 도와주고 계셔서 육아 시간을 쓰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다. 친정아버지는 한 곳에서 이십 년 넘게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운영하고 계신다. 젊은 중개사처럼 센스 있고 빠른 일처리는 어렵지만 오랫동안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두 분이 먹고 살 만큼의 벌이는 하고 계신다. 시부모님은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퇴직해 연금을 받고 계셔서 경제적인 도움을 드리지 않아도 되었다. 이런 은수를 주위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양쪽 부모님 걱정만 덜어도 그게 어디야. 너희 아버지 중개사 일 그만두시게 되면 친정 부모님 용돈만 챙겨 드리면 되잖아. 무엇보다 애 봐줄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 있는 거. 그게 정말 복이야.”





  



  복은 복이었다. 피임을 하지 않았는데도 결혼한 지 일 년이 지나도록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 아기를 바란 은수와 남편 장현은 난임치료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양쪽 다 조금씩의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 자연 임신이 어려운 경우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인공 수정을 시도했다. 제 배에 스스로 주사를 놓아 과배란을 시키고 확률이 가장 높은 날짜에 병원에 방문해 미리 채취해 둔 정자를 넣어주었다. 주사를 맞고 배가 아파 휴가를 내고, 임신 테스트기에 한 줄이 뜨는 것을 확인하고, 낙담하는 과정을 다섯 번 반복했다.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허리 쪽이 뭉근하고 제 마음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날들의 연속으로 은수는 조금씩 우울해지고 있었다. 그만할까? 좀 쉬었다가 다시 해볼까? 하고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미미가 찾아왔다.



  임신 5주 차부터 은수의 입덧이 시작되었다. 먹은 것은 거의 다 게워냈다. 수박 말고는 먹을 수도 없었다. 그나마 삼킬 수 있었던 수박도 몸에 수분감을 조금 전해준 다음 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식도로 역류해 입 밖으로 도로 나왔다. 임신 10주가 되었을 때 은수는 임신 전보다 몸무게가 5킬로그램이나 줄었다. 병원에서는 입원을 권했다. 책임감이 강한 은수는 갑자기 직장 일을 던져 놓고 병원에 누워있는 게 내키지 않았다. 그랬던 탓인지 임신 14주 무렵에는 유산 위기를 만났다. 직장에서 하혈한 그녀는 곧바로 산부인과 갔다. 유산 방지 주사를 맞고 입원한지 삼일쯤 지나자 안정되었다.



  입덧은 임신 20주까지 이어졌다. 입덧이 멈추고 미미의 태동도 느껴졌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싶었다. 임신 21주에서 26주쯤까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금까지 은수 생에서 가장 마음이 편한 시기였다. 뭘 먹어도 맛있고, 편안했다. 은수의 하루하루는 사랑받고 사랑 주는 충만함에 행복이 흘러넘쳤다.



  26주였던가 27주였던가. 아무튼 임신 7개월쯤부터 은수는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이 부어 주먹을 쥘 수 없었다. 소화가 잘 안되어 자다가 여러 번 일어나 장현에게 등을 두드려 달라고 했다. 8개월부터는 미미가 많이 내려와서 계속 병원에 누워 있었다. 하고 싶은 게 많고 활동적인 은수는-2021년 MBTI가 유행해 대세를 따라 검사해 보니 ENFJ였다. 한 줄 해석을 보면 '정의로운 사회운동가'라고 한다.-잦은 입원으로 누워 있는 게 괴로웠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자신도 몰랐던 자기 안의 창작욕이, 삼십 년 넘게 온몸에 흩어져 있던 문학 세포가 모아지고 덩어리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준비를 시작한 것이. 은수는 5주 동안 소설책 백 권을 읽어 내렸다.



  36주가 되자 의사는 한 주만 더 잘 버텼다가 수술을 하자고 했다. 은수는 이슬이 비친다든지, 양수가 터지는 경험을 하지 않았다. 대신 수술 부위가 잘 아물지 않았다. 칼에 잘려나간 피부 깊숙한 곳의 근육이 결합되지 않아 틈이 생겼고, 틈에 물이 찼다. 출산 후 3주 동안 매일 수술대에 올랐다. 주사로 수술 부위를 찔러 물을 빼고 소독을 했다.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야 의사가 말했다. 결합되지 않았으면 재수술을 해야 했다고. 영양이 부족한 아프리카 지역 산모들에게서 자주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은수는 눈앞이 아찔했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때 은수는 다짐했다. 미미가 건강하게 태어났고, 자신도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자고. 힘들게 얻은 만큼 세상에 감사하며 살겠다고.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는 1년이 넘는 고통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출산 후 허리에서 허벅지를 타고 내려오는 통증 때문에 은수는 절뚝거리며 걸었다. 미미가 백 일이 될 때까지 참다가 병원에 갔다.

  “관절이 80대 수준이에요.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안 좋은 관절이에요.”

  “나머지 두 분은 어떤 상태에요?”

  “한 분은 실제로 80대 어르신이고요. 한 분은 60대 후반이니까, 감은수 님이 실제로는 제일 안 좋다고 볼 수 있죠. 이런 관절로 어떻게 사셨어요? 출산하신 게 놀라워요.”

  임신부터 출산까지 평범한 게 한 가지도 없더니 관절까지 남다른 상태가 된 것을 알게 된 은수는 이 몸뚱어리는 원래 이 모양이었는지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망가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지렁이가 꿈틀대듯 원망스러운 마음이 발끝에서부터 머리 위로 올라왔다. 원망할 대상이 없어 분출되지 않고 머리를 맴돌았다. 은수는 머리가 뺑글뺑글 도는 것 같았다.


  미미는 예민했다. 돌 지나면 괜찮겠지, 두 돌 지나면 괜찮겠지 하다가 세 돌이 지나도 여전하자 은수는 잠을 포기했다. 미미는 여섯 살까지 매일 두세 시간에 한 번씩 깨서 자지러지게 울었다. 은수는 한 번도 잠을 푹 잔 날이 없었다. 피곤을 옵션으로 달고 살았다. 6년, 아니다. 임신 기간까지 포함하면 7년 이상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 성격이 바뀐다. 미미가 어릴 때는 잘 참았던 은수와 장현은 이제 참지 못하고 금방 짜증을 낸다. 우는 아이를 향한 짜증이 두 사람의 다툼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미미가 네 살이 되어도 은수와 장현이 둘째를 갖지 않자 시부모님은 볼 때마다 둘째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를 돌봐주시는 친정 엄마는 이틀에 한 번씩 한의원에 다녔다. 허리, 손목, 어깨,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족저 근막염까지 생겼다.

  “네 몸에 하나 낳은 것만으로도 엄마는 다행이고 감사해. 엄마도 이제 몸이 안 좋아서 둘은 못 봐줘. 장현이랑 얘기 잘 해서 의견을 일치시켜야 하지 않겠니?”

  장현은 고집을 부렸다. 자기가 임신할 것도, 아이를 낳을 것도 아니면서. 걸핏하면 야근에 주말까지 출근하는 회사에 다니면서 애 둘을 누가 낳고 누가 키울 것이란 말인가. 은수는 출산에 제반되는 모든 과정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임신도 임신 나름이었다. 

  한편 은수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임신 때부터 야금야금 읽어오던 소설이 제 안에 잠들어 있던 어떤 존재를 깨웠다. 소설이 쓰고 싶었다. 은수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자신이 창조한 주인공에게 자신은 그러지 못했지만 살고 싶었던 삶을 선물하고 싶었다. 아이가 잠든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고 습작을 했다. 직장 일과 소설 쓰기를 병행하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 모두가 잠든 시간에 글을 썼다. 새벽에 소설을 쓰고, 아침에 친정 엄마가 오시면 미미를 맡기고 출근하고, 퇴근 후 미미와 도란도란 하루 일과를 나누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리추얼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장현이 밑도 끝도 없이 퇴사를 선언한 어느 날, 은수와 장현은 모종의 거래를 마쳤다. 장현의 퇴사를 허락하는 조건으로 둘째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이다. 장현의 퇴사를 두고 주위에서는 (당시) 사무관인 와이프 믿고 회사를 그만뒀다고 쑥덕댔다. 아닌 게 아니라 장현이 시작한 사업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은수의 수입만으로 먹고살았다. 장현은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아내 덕분에 먹고사니즘에 얽매이지 않고 나쁜 의사결정을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현은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차부터 퇴사 전 머리로 그렸던 사업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하루는 장현이 아리송한 얼굴로 은수에게 물었다.

  “정우가 촛불집회로 탄핵된 전 대통령을 보면 내 생각이 난대. 이게 무슨 뜻이야?”

  “불.............통?”

  자신이 사업체의 대표가 된 이후 장현의 기세가 더 강해졌다. 장현은 은수가 하는 말에 귀를 닫고 의사결정에 날을 세웠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돈' 생각만 하는 듯한 장현을 보며 은수는 남편과의 정서적 교류를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장현은 걸핏하면 글 쓰는 은수에게 '돈 안 되는 취미 생활로 여러 사람 힘들게 한다'라며 이죽거렸다. 






 



 

  "자기 남편은 참 복받았어."

  미미 유치원 엄마들과 모임을 한 날이었다.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곽아란이 말했다.

  "저희 남편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걸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직업 좋아, 얼굴 예뻐, 예쁜 딸도 낳았지, 게다가 부캐까지 전문적으로 만들고 있는데, 뭘 더 바라?"

  "착한 와이프, 순종적인 와이프, 자기 말에 무조건 수긍하는 와이프."

  함께 앉아있던 몇몇의 동공이 커졌다. 요즘도 그런 구석기적인 남자가 있는지 몰랐던 것 같다. 어쩌면 서기관인 아내와 살면서 어떻게 그런 걸 바라느냐는 반응일지도 모른다.

  "거기다 착하기까지 바란다고? 자기 남편 양심 없네."

  은수는 억울했던 마음이 제 잘못 때문이 아니라는 걸 인정받아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나머지 잔여 물질도 말끔히 내려가도록 맥주잔을 시원하게 비웠다. 불통에 가부장적이고 은수 자신과 영혼이 통하지 않는 면을 분모에 놓아 보았다. 분자에는 장현의 장점이 놓일 것이다. 장현은 1보다 큰 사람일까 작은 사람일까.



  장현은 골프를 치지 않는다. 축구도, 수영도, 자전거 타기도 즐기지 않는다. 게임도 하지 않는다. 유튜브 영상을 보는 데에도 별 관심이 없다. 장현의 유일한 취미라면 웹툰을 보는 것이다. 유료 결제 금액을 다 합해도 한 달에 만 원이 될까 말까다. 한 달에 한두 권 책을 읽는다.

  장현은 술을 좋아한다. 적어도 일주일 중 하루는 알코올 농도 20% 이상의 소주를 한 병 이상 먹어줘야 생기가 돈다. 술은 대부분 집에서 먹는다. 바깥에서 술 약속은 분기별로 한 번 정도다. 

  장현은 기억력이 좋지 않고 감수성이 무디다. 어제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비가 오는 날 분위기에 젖어 옛 연인을 추억하려야 추억할 수가 없다.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장현의 분모보다 가까스로 분자가 더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은수는 계산기를 자신에게 들이댔다. 자신은 장현에게 분모가 더 큰 사람일까? 분자가 더 큰 사람일까? 세상 어디에 백 점짜리 남편이, 아내가 있을까? 일 만 넘으면 그만인 것을. 그래. 되었다. 일은 넘으니까. 내가 좀 더 참아보자.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니까. 은수는 혼자 중얼거리며 맥주잔을 연거푸 들이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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