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운의봄 Sep 29. 2022

결혼 생활의 기쁨과 슬픔(24화-진선미)

당신의 결혼 생활은 안녕하신가요?





"토요일에 왔다가 일요일에 가야 된다고? 그럼 피곤해서 캠핑은 안 되겠다. 가윤이 들떠 있는데. 있는 동안 재밌게 놀아줘."

  남편과 통화 후 선미는 시간을 확인했다. 금요일 오후 5시 50분. 양 옆 사람도, 뒷사람도, 여섯 시가 되면 엉덩이를 떼고 달아나려고 준비 중이다. 책상을 정리하고 가방을 챙기며 컴퓨터를 오프 하는 과정만 남겨두고, 시선은 모니터를 보고 있지만 이미 마음은 회사 밖을 달려 나갔다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안다.

  "차장 님, 집으로 바로 가실 복장이 아닌데요? 약속 있으세요?"

  옆자리 이 과장이 물어온다.

  "오늘 엄마가 아이 봐주신대서 친구 만나기로 했어. 눈여겨봐 둔 맛집 갔다가 마사지받고 집에 갈 거야. 이 과장은?"

  "저는 뭐 매일 똑같죠. 어린이 집으로 달려가서 애 픽업. 저녁 시켜 먹고 애 재우고 나면 넷플릭스 보면서 맥주나 한 잔 해야죠. 차장 님 부러워요."

  "뭐가? 애들이 커서? 엄마 찾으며 살 맞댈 때가 좋은 거야."

  "아뇨 그것보다 자유로워 보여서요. 남편 분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나 봐요. 평일 내내 혼자 계신 거잖아요? 육아도, 집안 일도 안 하고. 차장 님도 부럽고, 남편 분은 더 부럽고."

  선미는 이 과장 말에 가타부타하지 않고 웃어 보였다.      






     

  주말부부 10년 차. 가윤이를 가지기 전까지만 해도 선미는 주위 미혼자들에게 장거리 연애와 주말 부부를 강추했다. 남편이 없는 평일은 아가씨 때와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혼자 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집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서른 쯤이 되니 부모님 집에서 독립하고 싶었다. 결혼했으니 독립하겠다는 말은 얼마나 합리적이고 당연한 것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져 자신만의 공간이 생긴 기쁨을 만끽했다. 그 공간으로 금요일 저녁이면 선미의 남친, 아니 남편이 왔다. 몇 시까지 들어오냐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제 집에서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신세계를 만난 것이다. 금요일 밤에 재희가 도착하면 불금을 보내고 다음 날 눈이 떠질 때까지 늘어지게 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면 오전 열 시쯤. 미적미적 일어나서 티브이를 보거나 영화를 보다가 배가 고파 오면 브런치로 삼겹살을 굽굽해 먹었다. 토요일 아점에 먹는 삼겹살은 꿀맛이었다. 결혼 전에는 몰랐던 남편의 습관 때문에 다툰다든가, 남편이 집안일에 손을 까딱도 안 해서 힘들다는 등 결혼 n 년 차 친구들의 하소연은 남의 이야기였다. 선미는 알콩달콩 소꿉놀이하듯 사는 신혼 생활이 영원할 줄 알았다.          







  월요일 새벽이 오는 게 싫었다. 출근하는 것도 싫지만 기차를 타고 나가는 재희를 배웅하는 데 조금씩 지쳐갔다.

  "선미야 월요일 새벽에 이 문을 열고 나갈 때마다 나는 어떤 기분인 줄 알아?"

  "어떤 기분이야?"

  "군대에서 휴가 나왔다가 복귀할 때 같아. 발이 안 떨어져."

  힘들지만 애틋했다. 선미에게 재희는 늘 보고 싶은 사람, 보고 싶다는 말이 질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결혼한 지 일 년이 지났을 때 선미는 가윤을 임신했다. 혼자 아픈 배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운전대를 잡고 응급실로 간 날이 있었다. 예정일보다 2주 일찍 양수가 터진 날에도 재희는 세종에 있었다. 가윤이가 요로 감염으로 자지러지게 울었던 밤, 급성 편도염에 걸려 열이 40도까지 올랐던 날에도, 독감으로 선미와 가윤이 함께 입원한 날에도 재희는 서울에 없었다.      






  처음부터 혼자였다면 마음이 편했을까. 힘듦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음에도 없는 현실이 선미를 더 유약하게 만들었다. 가윤이 몸에서 열이 펄펄 끓을 때 밤새 수건에 물을 적셔 아이 몸을 닦고, 체온을 재고, 해열제를 먹이다가 까무룩 쪽잠이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고 눈이 떠지면 곧장 아이 몸에 손을 대 열이 떨어졌는지 가늠해보고, 여전히 뜨거운 아이 귓속에 체온계를 넣었다. 해열제를 먹어도 가윤이의 체온은 39도선. 아침이 오기 전에 가윤이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다. 운전대에 앉아 룸미러로 본 자신의 행색은 마치 어릴 때 동네에서 본 흔한 아주머니와 같았다. 부스스한 머리를 아무렇게나 대충 질끈 동여 메고 수분크림 하나 바르지 않아 바싹 메마른 얼굴에 윤기라곤 남아있지 않고 누렇게 뜬 피부, 조금만 건들면 갈라져 터질 것 같은 입술에 눈곱까지. 옷은 또 어떤가. 음식이 묻은 줄도 모르고 집에서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왔다. 손목에 아대를 끼고 있는 줄도 몰랐다. 아이는 열이 40도까지 오르는데, 부끄러운 자신의 행색이 눈에 들어와 당황스러웠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아대를 빼던지는 것뿐.

  병원에 들어가니 혼자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자신뿐인 것 같았다. 재희만 있었어도 고생을 반으로 덜 수 있었을 텐데. 세수를 하고 옷이라도 갈아입었을 텐데. 순번을 기다릴 때 재희가 가윤이를 안고, 자신의 어깨를 조금 쉴 수 있을 텐데. 뭐든 지금보다 절반만큼 덜 힘들 텐데. 연차를 쓰고 당장 올라오라고 할까? 분명 함께 한 결혼이고 아이도 함께 낳았는데, 육아의 순간순간 선미는 혼자였다. 너무 힘들 때 가까이 사는 여동생 선아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한 걸 알면서 육아의 고충을 나누기 어려웠다.






  함 들이는 날에 받은 원앙은 두 마리, 욕실에 놓인 칫솔은 세 개, 현관 입구의 거실화 세 짝, 잠옷 세 벌. 모든 게 세 사람 몫이지만 한 주의 절반 이상 한 사람 몫은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아직 어린 가윤이는 함께 먹을 수 없는 곱창전골이나 아귀찜 같은 게 먹고 싶을 때면 배달 앱을 손에 들었다 놨다 반복했다. 혼자 먹고 남겼다 다음날 먹기에도 양이 너무 많았다. 두 번 세 번 데워 먹으면 질겨지고 맛이 없었다. 주말에 먹어야지, 주말에 해야지. 좋은 건 다 주말로 미루는 게 버릇이 되었다. 혼자 곱창은 무슨. 곰국이나 데워 먹어야지. 냉동실에서 돌덩이가 되어버린 엄마표 곰국을 꺼내 데웠다. 가윤이의 반찬은 달걀프라이와 김이고, 선미 것은 장조림과 깍두기였다. 아이 한 입 먹이고 자신도 한 입.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지글지글 굽거나 익힌 매콤한 것을 먹고 싶었지만 곰국으로 허기만 때웠다. 맛없는 밥을 억지로 먹고 설거지거리를 개수대에 던져두고 거실 소파에 널브러졌다. 습관처럼 들어간 재희의 SNS에서는 좀 전에 올린 릴스가 재생되었다. 재희는 룸메이트들과 곱창전골에 소맥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재희는 정부청사 소속 공무원이다. 재희가 평일에 머무는 세종에는 주말부부가 많다. 재희는 세종에서 자동차로 두세 시간 떨어진 거리에 본가를 둔 남자 직원들과 집을 얻어 지내고 있다. 평일 저녁에는 운동을 하거나 강의를 듣거나 하우스 메이트들과 술을 한 잔 한다. 동료 중 한 사람은 서울에서 세종으로 출퇴근을 한다고 했다.

  “그게 가능해?”

  “지하철 타고 서울역 가서, 서울역에서 KTX 타고 오송역까지 45분에, 오송역에서 정부청사까지 버스로 30분, 도보 포함 2시간 좀 넘게 걸린대.”

  “그럼 하루 4시간 이상 출퇴근에 쓰는 거잖아? 몸 축 나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대. 집에 애가 셋이라는데... 나라도 그 선택을 할 것 같아.”

  평일에도 함께하는 삶을 위해 아이를 하나 더 낳을 것인가? 고민의 시간은 1초를 넘어가지 않았다. 아이를 한 명 더 낳아 키운다는 것은 평일 저녁 남편이 상주하는 가정과 맞바꿔 고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몇 년 만 더 고생하면 가윤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초등학생만 되어도 손이 덜 갈 것이니 가끔 친정 엄마의 손을 빌리면 지금보다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릴스 속 재희가 자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마치 책임져야 할 가정이 없는 사람처럼. 아가씨 때의 선미와 같아 보였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 외의 모든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의 여유가 느껴졌다. 게다가 곱창전골이라니. 선미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당장이라도 집으로 와서 가윤이를 돌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자신도 혈혈단신으로 집 밖에 나가 친구들과 술을 한 잔 기울이며 직장에서의 피로와 인생살이의 회한을 풀고 싶었다.







  언제까지 반쪽자리 일주일을 보낼 것인가? 평일은 무의미하고 힘든 시간, 주말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라도 나눠 생각하면 앞으로 인생의 절반이 시시할 것이다. 가윤이가 좀 크고 나면?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면 지금 자신은 무엇을 위해 왜 살고 있는가? 여러 질문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식상한 표현을 믿어 보기로 했다.      

  우선 평일에 자신이 먹는 한 끼부터 제대로 차려 보기로 했다. 혼자 아이를 돌보며 요리를 할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제대로 만들어 배달해 주는 곳을 찾았다. 찾아보니 매일 한 끼의 집밥을 정성스레 만들어 배달해 주는 업체가 집 근처에 몇 군데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식단표를 올려두니 선택하기에 좋았다.

  집에 각종 기계 이모님을 들였다. 식기 세척기 이모님과 건조기 이모님은 물론이고 걸레를 직접 빨아주는 바닥 청소 이모님을 들여 가사 노동 시간을 줄였다. 저녁 식사 후에는 아로마 오일을 떨어뜨린 물에서 가윤이와 목욕을 했다. 어떤 날은 함께 저녁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따뜻한 차를 우려 마시기도 했다. 선미가 하고 싶은 일을 가윤이 눈높이에서 함께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시도했다. 평일에 가윤이와 함께할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찾는 과정도 즐거웠다.

  주말 중 하루는 재희와 가윤이 오붓한 시간을 갖도록 했다. 가끔 재희가 금요일 오후에 조퇴를 하고 일찍 서울로 넘어오는 날에는 가윤의 어린이집 픽업부터 저녁에 해야 하는 모든 육아를 재희에게 맡기고 선미는 불금을 보냈다. 오롯이 자신을 위한 시간이었다. 소진된 몸의 에너지를 채우고 기분을 활기차게,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활동을 찾았다. 온전히 자신이 되어 가윤과 재희를 만나면 만사에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선미는 재희가 없는 평일과 재희가 있는 주말 사이에서 삶의 균형점을 찾아갔다. 이렇든 저렇든 사는 건 좋은 시간이 되어야 하니까.

  가윤이가 초등학교 2학년인 지금 선미는 주말부부 생활에 이백 프로 만족한다. 매일 보지 않으니 다툴 일이 적고, 다투더라도 평일에 떨어져 있는 동안 마음을 다스리고 주말을 맞는다. 평일에 육아를 하지 못하는 미안함 때문인지 주말의 재희는 가정에 온 몸과 마음을 바친다. 부부 사이에 적당한 거리와 긴장감은 결혼 생활의 윤활제가 되는 가보다. 선미는 여전히 재희를 보면 두근두근 설렌다. 이번 주는 다른 주말보다 더 짧은 만남이 될 테지만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저녁 6시가 되었다. 첫 번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기 위해 선미는 가방을 챙겨 들고 바삐 사무실을 나섰다.















이전 06화 결혼 생활의 기쁨과 슬픔(23화-신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