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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성화 Nov 20. 2023

20년 부부인연으로 처음 결혼식을 올리는 두 분을 보며

결혼과 결혼식의 의미

2023년 11월 12일(일)


오늘 남편을 따라 남편 지인의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아이 셋을 한참 키울 때는 가까운 사람의 결혼식이 거의 없어서 갈 일이 한동안 없다시피 했었는데요.

오늘 남편이 같이 가자고 했을 때 따라 나선게 정말 잘했다 싶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유명한 감독이라서도 아니고요.

사업가로서 발이 넓어서도 아닙니다.

3선 군수로 지낸 분께서 주례를 서주셔서도 아니고요. 절친한 가수와 성악가가 축가를 불러줘서도 아닙니다.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업가 분이 사회도 맡았고 인맥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는데요, 그래서도 아닙니다.

하객들과 축하 화환도 정말 많았어요.

그중에서도 평소 텔레비전을 안 보던 제가 <무빙>을 처음부터 끝까지 몰아서 다 봤는데요. 그  <무빙>의 박인제 감독과 영화배우 설경구 씨가 보낸 화환도 있었어요.


순간 정말 놀라긴 했어요.

그렇지만 이런 규모와 관계 때문에 결혼식에 잘 갔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건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 두 분과 주인공을 대하는 하객들의 분위기였습니다. 

보통 결혼식을 가면 앞에서는 엄숙한 분위기에 식을 올리고 있는데 뒤쪽에서는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시끄럽게 떠들거나 어수선한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 이곳은 달랐습니다.

지역 사람들 거의 다 온듯한데, 신랑신부를 진정 축하해 줄 하객들이 식장 안팎으로 꽉 찼는데도

식장 분위기가 정말 조용하고 괜찮았습니다. 기억에 남을 몇 안 되는 결혼식을 오늘 보고 왔네요.


저와는 일면식도 없는 그런 분들이지만 결혼식을 지켜본 1인으로서


축복받는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서로에게 두터운 믿음과 사랑은
달라도 진짜 다르구나!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인 두 분을 보면서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습니다.

결혼식 내내 마음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모릅니다.


입장부터 주목을 받은 엄마 신부님!

20년 아내로 살아온 분의 미모가 이래도 됩니까?

진짜 반칙입니다.

너무너무 아리따우셨어요.

요즘은 대부분이 결혼을 늦게 하니까 그냥 조금 늦었나 보다 했지 스무 살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둘씩이나 있고 함께 산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올리는 결혼식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러기엔 엄마 신부님이 너무 젊어 보였어요. 20년이란 시간 동안 산전수전 다 겪고 동고동락했을 텐데 그런 부부의 모습이 아니라 정말 새신랑, 새 신부의 모습처럼 다정해 보이고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그런 눈빛이었습니다.


성악가 분께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가사 마무리를 어떻게 할까도 궁금했는데 역시, 센스 있게 마무리를 잘해 주었네요.


서로의 사정으로 결혼식을 못 올린 채 20년을 함께 했다고 들었습니다. 결혼식을 가기 전에

“20년씩이나 살았는데 굳이 왜 결혼식을 크게 해?” 의문스러웠는데요.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릴 때 신부의 눈가가 마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가 되더라고요.

친정 부모님의 입장에서 딸이 꽃다운 나이에 시집가서 남들 다 하는 식도 못 올리고 여태껏 살았으니 그 속이 말이 아니었겠지요.. 오늘에서야 웃지만 그동안은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을 거예요...


10여 년 전 저도 결혼식을 올렸던 날,

부모님의 손을 잡고 신부입장을 할 때 표정 관리도 잘 안되고 갑자기 눈, 코, 입이 막 떨리면서 떨어질 듯 말듯한 눈물이 앞을 가려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남자 친구와 처음 결혼식을 올리는 철부지였던 새 신부도 그런데 20년을 살아온 새신부는 오죽할까요?


'20년을 살아서 떨리지도 않고 훨씬 더 덤덤하겠지'란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어요.


20년을 동고동락했기 때문에 살아온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쫙 펼쳐지면서 감정이 한꺼번에 솟구쳤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랬을까요?

비주얼이 정말 예쁘고 젊디 젊은 신랑, 신부의 결혼식보다 저는 오늘 결혼식이 더 감동적이었고 젊은 신랑, 신부 못지않게 오늘 주인공인 신랑, 신부도 충분히 멋지고 아름다웠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에 쫓겨 빠르게 진행된 결혼식이 아니라 하객들과 덕담도 나누며 함께 파티하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결혼식이었기에 의미가 참 깊었습니다. 이런 결혼식도 있구나! 싶었어요. 축하하는 마음도 없이 축의금만 내고 피로연장으로 곧장 달려가 밥만 먹고 나오는 그런 결혼식이었다면 안 갔을 텐데 오늘 남편 덕분에 결혼식다운 결혼식을 보았고요. 두 부부의 진한 인연을 눈빛과 분위기로 느끼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부부인가, 결혼은 무엇인가, 남편과 앞으로 10, 20년, 30년, 그 후를 더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까 등등 깊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네요.


일상에서 겪는 이러한 소소한 조각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주울 수 있게 되니 하루하루가 참 흥미로워요.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만나고 그 속에 나를 빗대어 보기도 하고..


그래서 삶은 삶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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