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평가하려는 마음

by 글밤



매일 잠들기 전 일기를 쓴다.

이제는 습관적으로 펼치는 일기지만, 그래도 이것마저 하지 않는다면 내가 보낸 하루에 대해 더욱 낮게 평가하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일지도 모른다.

사실, 일기의 내용이라 해봤자 특별할 것도 없다.

한 개인의 삶이 하루 만에 극적으로 변화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라 생각하니까.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이 오늘의 일기를 쓰기 전 어제의 일기를 슬쩍 보다 보면, 어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오늘이었기에, 오늘에 할당된 칸에 어떤 내용을 적어야 할지 고민을 시작한다.

하루를 돌아본다.

아침부터 지금 일기장을 앞에 둔 이 순간까지를 생각으로 훑다 보면 어느새 나는 하루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판단 조건은 없다.

기준은 유동적이며, 상황과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외부 영향에 취약하며 곧잘 흔들린다.


그렇게 애초에 명확하지 않고,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어떤 기준에 따라 나를 평가하면서, 오늘을 정의한다.

하지 못한 일들, 결심으로만 여전히 머물러 있는 계획들. 그리고 마주한 사람들의 의견, 그들과의 대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시작의 신호들.

마음은 갈팡질팡하고, 불안감과 조바심, 초조함이 밀려온다. 이런 마음들을 모두 쏟아내고 나면, 결국 고민이 무색하게 어제의 일기와 별반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오늘 나에게 어떤 다양한 순간들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일기장에 활자로 기록된 나의 오늘은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에 이미 휘둘려 버렸으니까 말이다.

삶은 평가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성장이나 멈춤 등을 숫자로 표시할 수 없을뿐더러,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처럼 확실하게 구분 지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저 생각이나, 감정으로 각인되는 모호한 것보다는 눈에 보이는 형태가 되는 것을 선호한다. 그것이 설사 수많은 순간들로 쌓인 ‘오늘’이라 할지라도.

나는 또 내일 일기장을 앞에 두고, 하루를 기록하기 위한 고민을 할 것이다. 다만 오늘의 이 다짐이 내일은 지켜지기를 바래본다.


삶의 모든 순간들이 소중하다 해서 매번 현미경을 들이대지는 않는 것처럼, '하루'역시 그렇다는 것을. 정 그렇게 하루를 평가하고 싶다면, 하루 중 가장 멋진 순간, 기억에 남기고 싶은 순간을, 최대한 확대하고 관찰하고 기록하자고 말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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