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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Bit; 빛. 01화

Bit. and its beginning.

Bit(빛) 프롤로그: 첫 번째 빗방울

by Youhan Kim

병원 복도는 늘 그렇듯 하얗고 차가웠다. 열일곱 살의 나는 진료실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문손잡이를 잡은 손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때만 해도 나는 몰랐다. 이 순간이 내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거라는 것을.











"들어오세요."

의사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형광등 불빛이 차가운 금속 기구들 위에서 반짝였다. 책상 위 모니터에는 내 대장 내시경 검사 결과가 떠 있었다. 수십 개의 작은 점들이 마치 어두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별이 아닌, 나의 운명을 바꿀 폴립들이었다.

"가족성 선종성 용종증입니다."

의사의 목소리가 마치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희미했다.

"치료하지 않으면... 대장암으로 발전할 확률이 100%입니다."

어머니의 날카로운 숨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평온했다. 어쩌면 충격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미 나는 '다름'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일까.

그때까지 나는 이미 세상과는 다른 색으로 칠해진 삶을 살고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성정체성, 그리고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한 감정의 폭풍—나중에야 조울증이라는 것을 알게 된—이 내 안에서 끊임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이 진단은 그저 또 하나의 다른 색일 뿐이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방울, 그리고 또 한 방울... 빗방울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땅을 적시고 있었다. 마치 내 인생에 드리워진 시련처럼.

사람들은 무지개가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것은 달랐다. 무지개는 우리가 맞이하는 모든 순간, 모든 시련, 모든 극복의 과정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때로는 찬란하게, 때로는 어둡게 물들어가는 우리 삶 자체가 하나의 무지개다.


그날 이후, 나는 계속해서 새로운 색을 마주했다. 조울증이 가져다주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내 하늘을 때로는 눈부신 황금빛으로, 때로는 깊은 우울의 검은색으로 물들였다. 성소수자로서 마주한 편견은 차가운 회색빛이었고, 희귀병과의 싸움은 무거운 보라색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모든 색이 섞여들수록 내 삶은 더욱 선명해져 갔다. 마치 물감이 섞여 예상치 못한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듯, 나의 시련들은 서로 어우러져 누구도 가지지 못한 특별한 빛깔을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하필 나여야 했는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무지개를 그리며 살아간다는 것을. 누군가의 무지개는 밝고 선명할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의 것은 조금 더 어둡고 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틀리지 않았다.


나의 이야기는 단순한 생존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색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떻게 우리만의 아름다움으로 바꾸어내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때로는 폭풍우 치는 하늘에서도, 때로는 맑게 갠 하늘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무지개를 그려나간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 무지개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어쩌면 당신도 이 이야기 속에서, 당신만의 무지개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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