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색과의 만남
모든 여정은 작은 시작점으로부터 퍼져나간다. 마치 하얀 도화지에 물감을 처음 댔을 때, 그 물감이 도화지 위에서 어디로 번져갈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그의 삶도 그랬다. 세상의 규칙 안에서 살아가는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어릴 적부터 세상과는 다른 리듬을 가지고 있었다. 대여섯 살에 불과했던 시절, 텔레비전 속 반짝이는 모델들의 얼굴을 보면서 남들과는 다른 끌림을 느꼈다. 그 시절 또래 남자아이들이 흔히 ‘멋진 남자’를 동경하고 여성을 좋아하는 감정을 이야기할 때, 그의 감정은 조용하지만 깊은 물결처럼 가슴 속에서 파도를 일으켰다. 그 파도는 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언가 다른 세계로 이끌고 있었다.
처음 그 차이를 분명히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조금은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을 뿐이라고 여겼다. 이끌림이라는 단어로도 정의하기 힘든 그 감정은, 마치 작은 물방울이 잔잔한 호수 위에 떨어지며 천천히 퍼져나가는 것과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물방울은 점점 크게 퍼졌고, 중학교에 이르러 그는 결국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또렷하게 깨달았다. 그것은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밝고 찬란한 깨달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짙은 안개 속에서 헤매는 듯한 색이었다.
그리고 그 색은 곧 그의 세상을 흔들어 놓았다. “나는 남자를 좋아해.” 그가 친구들에게 순진하게 내뱉은 이 한마디는 마치 폭풍을 불러일으킨 첫 번째 물방울이었다. 친구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놀람은 곧 조롱과 비웃음으로 변해갔다. 그가 속삭였던 고백은 그의 일상 속에서 비난의 화살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상처 속에서도 그는 자신을 부정하지 않았다. 비록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세상의 기대와 다를지라도,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 스스로를 지키는 작은 방패가 생겼다.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그는 그 방패를 더욱 굳게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방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그 사실을 더 명확하게 느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이후, 사람들의 시선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고, 마치 그의 존재 자체를 꿰뚫는 칼날처럼 느껴졌다. 그는 점점 더 마음을 닫기 시작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누군가가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바람은 두려움과 함께 억눌려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립되기로 선택했다. 그 선택은 외로움을 동반했지만, 그 외로움이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기독교 대학에서 겪었던 사건은 그의 마음에 깊은 흉터를 남겼다. 그가 수업 시간에 앉아 있을 때, 한 학생이 대뜸 “저 사람은 게이야”라고 폭로했을 때, 그 순간은 마치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칼날이 꽂히는 듯했다. 그가 쌓아올린 방패는 그 자리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그 사실은 곧 학교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는 마치 투명해진 존재처럼, 어디서든 사람들의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익명 게시판에는 그에 대한 비난과 멸시의 글들이 넘쳐났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혼란 속에서도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마음의 벽을 더 두텁게 쌓았다. 세상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는 그들로부터 멀어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자신을 찾으려 애썼다. 그 안에서, 그는 점차 다른 힘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성소수자로서의 삶은 그에게 고통만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고통은 그를 더 포용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자신이 받았던 상처 덕분에 그는 타인의 고통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특히 국내 거주중인 외국인 성소수자들과 더불어 비슷한 고통을 겪는 내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 또한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의 상처는 더 이상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상처는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다리가 되었다.
한국에서 만난 한 외국인 친구는 한국에 도착해서야 HIV에 감염된 사실을 알게 된 후 깊은 혼란 속에 빠져 있었다. 그는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는 그 친구가 병원을 찾고 필요한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모든 수를 써서 도왔다. 그와 함께 나눈 대화는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되었다. 그는 그 과정 속에서 상처란 단순히 흉터로 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그의 삶은 무수한 색들로 다시 번져 나갔다. 어려운 그림자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가진 색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색은 세상과 어울리지 않을지 몰랐지만, 그는 그것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세상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는 마침내 자신을 받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더 강해졌고,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의 삶은 단순히 하나의 색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수많은 색들이 그의 도화지 위에 번지며 혼란스럽게 얽혀 있었지만, 그 혼란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빛을 찾아냈다. 첫 번째 색은 어두웠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에게 더 깊은 빛을 보여주기 위한 여정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