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
그가 성소수자임을 깨달은 것 같이, 모든 여정은 작은 물방울처럼 시작된다. 마치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이 처음엔 단지 작은 점일 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물방울과 만나 서로 엉켜 흐르며 예상치 못한 모양을 만들어내듯이 말이다. 그의 삶도 그랬다. 인생의 첫 도전은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라는 물방울이었다. 이 정체성은 이미 그에게 큰 혼란을 안겨주었지만, 그와 함께 또 다른 도전, 조울증이라는 감정의 파도가 그의 삶에 흘러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기분 변화라고만 여겼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변화는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며 그의 마음을 더 깊은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모든 여정은 방향을 잡지 못한 채 떠나는 항해와 같다. 나침반 없이 넓은 바다에 몸을 던져,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채로 헤매는 것이다. 또 다른 깊고 어두운 물살이 그의 삶에 스며들었으니, 그것은 바로 조울증이라는 불안정한 감정의 흐름이었다. 처음엔 단순한 기분 변화라고만 여겼던 그 파도는 점차 강해졌고,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두 번 째 물방울의 여정은 고등학교 시절, 그는 시골의 외딴 대안학교에서 소수의 친구들과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주변의 고요함은 그에게 오히려 무거운 정적처럼 다가왔다. 창문을 바라보며 흘러내리는 빗물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불안정한 감정들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조울증이란 파도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우울감이 깊어질 때면, 마치 땅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무기력감에 사로잡혔다.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 그는 무심히 지나가는 버스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이 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한없이 무거운 그 감정의 늪 속에서 그는 자신을 잃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폭풍우처럼 그를 짓누르던 어둠이 지나가고 나면, 갑작스러운 빛이 창문을 뚫고 들어오듯 조증 삽화의 물결이 그를 휩쓸었다. 마치 무한한 에너지가 그의 내면을 채우기라도 한 듯, 그는 세상을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버드 입학 계획을 세우고, 하루에도 연락이 끊기다싶이 한 자들에게 수십 통의 전화를 걸어 세상과 연결된 기분을 만끽했다. 그는 마치 광활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배를 몰아치는 바람을 받아 거침없이 나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 자유로움은 결코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감정은 마치 나침반을 잃은 배처럼 갑작스럽게 방향을 틀었다. 폭풍 후의 고요처럼, 우울감이 찾아오면 그의 모든 계획과 성취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침대 위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그는 자신이 세운 꿈들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조울증은 그의 삶을 지워버리듯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안에 묻힌 자신을 찾는 일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의사에게서 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그는 비로소 그 불규칙한 항해의 이유를 깨달았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미 성소수자로서의 삶도 충분히 복잡한데, 이제는 그의 감정이 마치 변덕스러운 바람처럼 그를 끌고 다녔다. 감정의 파도는 예측할 수 없었다. 조증이 오면 그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지만, 그 뒤따라오는 우울감은 그를 다시 끝없는 바다 속으로 끌어당겼다. 마치 배가 휘청이며 길을 잃고, 폭풍우에 휘말리는 순간처럼.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조증의 상태에서 과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뒤이어 찾아오는 우울감 속에서는 그 모든 것을 감추고 싶어할 때였다. 그가 조증일 때는 마치 배가 거센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날아가듯 생각과 말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 항해는 늘 갑작스럽게 멈췄고, 그는 자신이 이룬 것들이 모두 사라지는 듯한 좌절감을 느꼈다. 그렇게 반복되는 변덕스러운 감정의 항해는 그에게 크나큰 혼란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는 그 거친 바다에서 좌초하지 않았다. 조울증의 감정적 파도가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그는 자신의 나침반을 찾기 시작했다. 조증의 에너지가 그를 휩쓸 때면, 그는 그 힘을 창의적인 일에 쏟아부었다. 그 덕분에 그는 ‘Pridey’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게 되었고, COVID-19 시기에는 ‘COVID Professionals’ 프로젝트를 이끌어 수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 열정과 추진력은 그를 더 넓은 바다로 이끌었고, 그 항해에서 그는 잊을 수 없는 성취감을 얻었다.
그러나 항해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성공의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금 감정의 어두운 물결이 그를 덮쳤다. 조울증의 파도는 언제나 그의 삶 속에 있었다. 그는 감정의 물살 속에서 방향을 잃을 때도 있었지만, 그 항해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 대신 그는 그 물살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방향을 잃는 것조차 그의 항해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평온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조울증이라는 장애 속에서도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의 감정은 나침반 없는 항해처럼 불안정했지만, 그 안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다. 파도가 아무리 거칠어도 그는 그 속에서 균형을 잡으며 항해할 수 있었다. 그 항해는 혼란스러웠지만, 그 안에서 그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갔다. 나침반 없는 바다를 헤매며 그는 자신의 감정과 마주했고, 그 감정 속에서 새로운 길을 그려나갔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는 자신의 감정이 끊임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했다. 조울증이라는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의 흐름 속에서 그가 깨달은 첫 번째 진리는 바로 저항하지 않음이었다. 처음에는 그 감정의 변화를 억제하려 애썼고, 이를 통제하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의 파도와 맞서는 대신 그 흐름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그에게 조울증이란 장애는 단순한 고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살아가는 세상을 더 깊고 복잡하게 만들어주는 항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