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가다
그의 대학생활 첫 번 째 단추였던 전주대학교에서의 글로벌 라운지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는 언제나 숨겨진 모험의 시작을 느꼈다. 매일 네 시간씩 보내는 그 공간은, 그가 가진 조울증을 평탄케 하는 장소 이상으로 그에게 단순한 일상이 아니었다. 그곳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넘실대는 강물처럼, 매 순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며 그를 새로운 배움의 세계로 이끌었다. 각기 다른 국적과 문화를 지닌 학생들이 흘러들어와 서로의 언어로, 몸짓으로, 미소로 대화를 나누는 그곳은 다양한 물감이 섞여 색을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팔레트와 같았다.
그는 그 팔레트 위에서 하나의 연결 고리가 되었다. 라운지로 들어오는 학생들은 익숙한 땅을 떠나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길을 잃고 있었고, 그는 그들에게 다리 역할을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새로운 색깔을 만들어 나갔다. 라마단이 되면 공간은 신성한 분위기로 채워지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축제를 준비했다. 그곳에서 시간은 느리게, 그러나 의미 있게 흘렀다. 그는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전통을 설명하고, 그들을 위해 작은 행사를 기획하며 모든 학생들이 서로의 문화를 체험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 마치 정교한 모자이크 타일을 맞추는 듯한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건 단순한 문화적 교류가 아니었다. 울먹이던 한 학생이 그의 눈 앞에 앉아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 눈물 속에 담긴 막막함을 그는 깊이 느꼈다. 그 순간은 마치 흐릿한 유리창 너머로 비친 세상을 보는 것과 같았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함에 사로잡힌 그 학생에게 그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한 위로를 건넸다. “언어도 하나의 모자이크 타일처럼 하나씩 맞춰가는 과정이야. 작은 조각들이 모여 더 큰 그림이 될 때까지 서두르지 말고 한 걸음씩 가보자.” 그의 말은 한 방울씩 고여 있던 눈물 속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고, 학생은 그 말을 듣고 차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그는 누군가의 삶에 작은 빛이 되어줄 수 있음을 깨달았다.
라운지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다채로웠다. 각기 다른 문화와 언어 속에서 살아온 학생들은 자신의 색을 조금씩 그 공간에 남겼고, 그는 그 색들이 어떻게 서로 얽히고 섞이는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때로는 이국적인 향신료 냄새가 공기를 가득 채웠고, 때로는 다른 문화의 옷차림이나 생활 습관이 그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점차 익숙해지고, 그로 인해 그의 사고의 틀은 더 넓어졌다. 유럽에서 온 게스트들이 수건 하나만 두르고 공용 공간을 지나가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의 당혹스러움이 사라졌 듯, 그는 이곳에서 모자이크의 조각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그 그림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법임을 배웠다.
그는 또한 글로벌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에서 온 두 명의 외국인 학생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들은 한국의 복잡한 관공서에서 서류를 발급받는 일조차 낯설어했으며, 한국의 식사 예절과 대학 문화를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다소 보수적 문화성을 갖고 있는 국가들에서 온 그들은, 그가 성소수자임을 밝힐 때에도, 그들이 가진 어려움들과 그의 어려움이 동일 선상에 있다는 사실에 큰 혼돈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그들과 함께 걸어 나가며, 마치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는 듯한 성취감을 느꼈다. 단순히 절차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문화를 나누고 배우며 우리는 점차 하나의 모자이크 조각처럼 맞물려 들어갔다.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했던 시간들은 그에게 단순한 멘토 이상의 의미를 주었고, 그들 또한 그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평탄해보였던 그의 대학생활에 변화를 줄 또 하나의 물방울이 ‘똑’ 하고 떨어진 순간이었다. 기독교 신념을 자처하는 대학의 약 100여명이 듣는 공동수업에서, 오픈리 게이(성소수자임을 숨기지 않는 동성애자)인 나에게 손가락을 치켜들며 불편한 말로 나를 가리켰을 때였다. 이는 기독사학에서 움츠러든 어깨를 조금이나마 펼 수 있게된 글로벌 라운지에서의 경험을 산산히 부서지게 만들었고, 이는 ‘나는 이 곳에서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의 두 번의 편입 여정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