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32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5. 꿈에 그리던, 구글에서의 6개월

5.1. 슬슬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두근거리는 입사 첫날

by Youhan Kim Jan 27. 2025

나는 구글에 들어가고 싶어서 채용 정보를 꾸준히 모니터링해왔다. 늘 “언젠가 꼭 구글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슴 한켠에 품고 있었는데, 마침 장애인·보훈자를 위주로 뽑는 gReach 프로그램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건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원서를 넣고 서류 전형을 통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웠는데, 문제는 면접 절차였다. 다른 회사들보다 상당히 길었다. 애초에 장애인 학생 전형이긴 했지만, 1번의 전화 인터뷰(폰 스크리닝) 후에 2번의 1시간 면접을 더 봤으니 총 세 번에 걸쳐 심층 검증을 받은 셈이다. ‘컬처 핏’을 확인하는가 하면, 이력서와 실무 능력을 꼼꼼히 검증하기도 했는데, 그 과정 내내 “정말 구글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합격 통보를 받은 뒤, 입사 첫날이 다가오자 나는 마치 새로운 모험의 문턱에 선 기분이었다. 이미 LG나 보쉬 같은 대기업·글로벌 기업 인턴십을 해봤으니,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구글은 또 다르지 않을까?”라는 설렘이 가슴을 뛰게 했다. 더군다나 강남 파이낸스 타워에서 근무한다는 사실도 은근히 부담이 됐다. 건물 자체가 워낙 상징적인 위치에 있고, “과연 내가 이 높은 곳에서, 이 이름값 큰 회사에서 잘 버틸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커다란 건물의 여러 층에 자리 잡은 구글 오피스에 올라가 전경을 둘러보니, 긴장했던 근육이 스르르 풀렸다. 깔끔하면서도 아늑한(Cozy) 분위기에, 복잡함보다는 효율성과 자유도가 함께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입사 온보딩은 상당히 체계적이면서도 부드럽게 진행됐다. 노트북을 미리 집으로 배송해줘서 세팅할 시간을 준 것도 인상적이었고, “Noogler(뉴글러)”를 위한 다양한 안내가 있었다. 특히 ‘뉴글러 모자’가 택배로 오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걸 부끄러워 쓰지 않지만 나는 달랐다. 구글 입사에 대한 기쁨을 한껏 만끽하고 싶어서, 모자를 열심히 쓰고 다녔다. 덕분에 회사 곳곳에서 “아, 이번에 새로 들어온 뉴글러시군요!” 하고 먼저 말을 걸어주는 이들이 많았고, 나는 일도 쉽게 배우고 사람들도 빨리 익힐 수 있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실제로 구글이 “드림 컴퍼니”라 불리는 이유를 입사 첫날부터 목격했다. 자유로운 복장과 근무 방식, 언제든 쓸 수 있는 모든 먹거리와 마실거리가 구비된 휴게 공간과 훌륭한 식당, 그리고 동호회나 컬처클럽 같은 사내 이벤트가 아주 활발했다. 예컨대 나는 성소수자 동호회와 뉴글러 모임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작은 운동회’를 열어 우리 팀이 우승도 하고, 보물찾기 게임에서 이겨 커피 머신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물론 그 뒤에는 “1년에 두 번씩 진행되는 성과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기에, 마냥 놀기만 할 수는 없었다. 구글은 그 유명한 “밥 잘 주고, 쉼을 허락하는 대신 퍼포먼스를 내야 하는” 곳이었으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 이상으로 나를 안심하게 만든 건, 구글이 지향하는 ‘다양성’이었다. 애초에 gReach로 입사했기에 내 장애(조울증 등)를 숨길 이유가 없었고, 인터뷰 과정에서도 미리 밝혔지만 아무도 그걸 문제가 되게 보지 않았다. “장애? 그건 그냥 또 하나의 특징일 뿐이야”라는 식의 태도가 문화 전반에 깔려 있었다. 예전 회사에서도 배려를 받긴 했지만, 구글은 장애나 배경 자체를 특정 직원의 ‘약점’이 아니라 “고유한 시각을 제공하는 강점”으로 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인사 담당자나 동료들도 “힘든 날이 있다면 이야기해주면 충분히 스케줄 조정이나 재택근무를 고려할 수 있다”고 안내해주어서 심리적 부담이 훨씬 덜했다.


그러다 보니 입사 첫날부터 내 감정이 오르내리는 일에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만약 오늘 기분이 별로라면, 오후는 좀 쉬다가 야간에 집중해서 일하면 되겠지”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예전 인턴십(특히 보쉬, LG)에서 ‘빨리빨리’ 문화에 순응했던 덕에, 구글 특유의 ‘스스로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업무 스타일과 접목이 잘됐던 것 같다. 안그래도 호주계 대학교에서 졸업했기에, 수평적 문화에 익숙한 편이었기도 했고.


브런치 글 이미지 2


그렇다고 모든 게 순탄한 건 아니었다. 구글은 자유로운 만큼, 스스로가 목표와 일정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와 “회사 측이 원하는 기대치”를 마주하며, 그 사이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미 장애인·보훈자 프로그램이라는 명확한 틀이 있었고, 그 안에서 어떤 프로젝트에 도전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했다. 그래도 첫날에는 긴장 반, 설렘 반으로 구글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꿈꾸던 곳이 맞구나”를 확인하는 데 집중했다. 식당에서 랍스터나 스테이크를 접하는 게 어색해서 약간 웃기기도 했고, 1층 로비에서부터 “Google” 로고만 봐도 심장이 뛰었다. “내가 진짜 여기서 일하게 되다니” 하는 묘한 감동이랄까.




특히 한 가지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사실 구글에 들어오기 7년 전쯤, “50세 구글러”로 미디어에 소개된 로이스 킴(Lois Kim)님을 우연히 만나본 적이 있다. 2016년 즈음 내가 성소수자 활동을 하며 구글 캠퍼스를 방문했을 때, 로이스 킴님과 면담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언젠가 저도 꼭 구글에 입사해서, 이렇게 자유롭고 존중받는 문화 속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로이스 님도 “응원하겠다. 장애가 있든 없든, 자기만의 장점을 보여주면 꼭 기회가 있을 거야”라고 격려해주었는데, 그로부터 몇 년 동안 계속 ‘언젠가 구글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꿈꿔왔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그리고 드디어, gReach를 통해 합류하게 된 그 첫날, 나는 회사의 한 행사에서 로이스 킴님을 다시 마주치게 됐다. 마치 운명처럼 시나브로 마주 앉아 “저 혹시 기억하시나요? 예전에 구글 캠퍼스에서 잠깐 뵈었던…” 하고 수줍게 인사했다. 로이스 님은 약간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아! 맞다, 기억나. 그때 장애 얘기도 하고, 구글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었잖아. 결국 해냈네!”라고 웃어주셨다. 나는 갑자기 울컥해지는 감정을 숨기기 바빴다. 7년 만에 그 약속이 실현된 거니까.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아, 진짜 내가 꿈을 현실로 만드는 중이구나” 하는 실감을 했다. 입사 첫날은 원래도 분주했지만, 그 만남으로 인해 더욱 감동적이었다. 세상에 많은 회사가 있지만, 내가 간절히 동경하던 곳에서, 예전에 약속했던 사람을 다시 만나고, 또 그 분이 내가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조차도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장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쁨이었다. 그야말로 “슬슬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두근거리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구글에서의 첫날은 단순한 일자리 ‘시작’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나는 이미 여러 회사에서 인턴을 해봤고, 해외 생활도 겪었으며, 장애인으로서 어려움도 겪어왔다. 그 모든 경험이 모여서 구글이라는 무대 위에서 또 다른 도전을 펼칠 준비를 하게 됐다. 보훈자·장애인 프로그램인 gReach를 통해 들어왔기에, 내 장애나 성소수자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구글은 “그래, 그거 그냥 너의 한 특징이야. 그건 아무 문제 될 게 없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물론 앞으로 수많은 프로젝트와 성과 압박, 그리고 팀 협업 속에서 내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은 부담일 것이다. LG나 보쉬와 달리, 구글은 더욱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곳이니까. 하지만 첫날의 설렘과 환대를 기억한다면, 그 허들을 한 번씩 넘는 즐거움도 크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구나. 그런데 괜찮아, 꿈꾸던 곳이니까, 또 해낼 수 있겠지.” 그런 마음가짐으로 사무실을 둘러보며, 아무도 없는 회의실 거울 앞에서 뉴글러 모자를 다시 고쳐 쓰곤 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언젠가 로이스 님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네 꿈, 구글에서 이뤄봐’라며 응원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내 드림 컴퍼니의 첫날은 두근거리는 감동 속에서 지나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4. 두 번째 도전, BOSCH 인턴십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