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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May 27. 2021

향수의 고장, 옥천을 아시나요?

서울 가족, 연고 없는 시골살이를 시작하다

"뭐라고요? 60번? 숫자 다시 확인해 봐요."


남편과 통화하며 점점 다급 해지는 내 목소리. 수화기 너머 들리는 남편의 대답.

"다시 확인해봐도 63번 중 60번이에요. 숫자가 뒤집어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고..."


남편은 군 복무 대체로 지방 보건소 등지에서 얄짤없이 만 3년 동안 일해야 했고, 그날은 제비뽑기를 통해 해당 지역을 정하는 결정적인 날이었다. 앞으로 3년간 우리 세 가족, 정확히는 뱃속의 둘째까지 네 명의 운명이 달려 있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서울에서 멀지 않은 충청북도 지역을 뽑아서 한시름 놨었지만, 충북 내에 모인 63명의 예비 공중보건의들은 다시 한번 세부지역을 결정해야 했다. 다시 말해, 1번을 뽑은 사람부터 지역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이다. 예상대로 '군' 단위보다는 '시'에 사람들이 먼저 몰렸고 서울에서 먼 지역일수록 모두 꺼려했다.


세부지역 결정 전날 밤, 우리 부부는 비장한(?) 각오로 컴퓨터 모니터 앞에 함께 앉았다. 그리고는 학창 시절 지리 시간을 방불케 하는 지역 분석에 들어갔다. 충청북도에 그렇게 많은 행정구역이 있었던가. 그리고 발견한 놀라운 사실 한 가지. 충청남도보다 충청북도가 더 남쪽에 위치하기도 했다. 일례로 천안은 충남이지만 서울에서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인데 충북 영동은 2시간 30분은 족히 가야 한다.


평생을 서울 수도권에서만 살아온 서울 촌가족(?)은 연고도 없고 정보도 없는 곳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노트를 채워갔다. 1 지망은 청주시, 2 지망은 충주시... 그러나 63번 중 60번을 뽑은 사람에겐 그다지 선택권이 많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60번이면 충북 지역 중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이겠구나 싶었다. 지도를 살펴보니(내 평생 충청도 지도를 그렇게 뚫어지게 분석해본 적이 있었을까?) 영동과 옥천이 눈에 띄었다. 아, 간사한 사람의 마음이여. 서울에서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옥천이 되었으면 하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는 재빨리 인터넷 검색을 하며 영동과 옥천에 대한 나름의 연구에 들어갔다.



잠시 후, 다시 남편에게 온 연락.

나 옥천에 가게 되었어요. 관사도 제공될 듯해요.

가슴을 쓸어내렸다. 바꿀 수 없는 결정이니 이제 받아들이면 될 일이었다. 게다가 작지만 관사 아파트가 제공되어 가족이 같이 쓸 수 있다 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곧 둘째 출산을 곧 앞두고 있었고 서울에 살면 친정의 전폭적인 도움도 받을 수도 있었지만 무슨 배짱에서인지 나는 온 가족이 함께 시골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일부러 시골살이도 하는데 뭐. 아이들에게 너무나 좋은 기회임에 틀림없기도 하고" 하는 마음으로.


옥천이라... 국토의 정 중앙 대전 근처, 내륙 중의 내륙. 옥천 허브의 악명으로 옥뮤다(옥천+버뮤다)로 불리는 곳. 내가 옥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그해 봄, 설렘과 두려움 속에서 남편은 옥천에서 근무 혹은 복무를 시작했다. 내가 둘째를 가진 상태이기도 했고, 집 문제도 겹쳐서 출산 후 옥천에 내려가는 것으로 합의를 본 후, 약 5개월간은 뜻하지 않게 주말부부로 지내기도 했다. 남자 혼자 시골에서 얼마나 심심하고 고단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혼자만의 자유시간을 즐긴 남편이 무척이나 부럽기도.


익숙했던 그 집앞, 관사 풍경

여름에  둘째가 태어나고 온 가족은 9월이 되어서야 옥천에서 본격적으로 같이 살기 시작했다. 싱글 남자들이 험하게(?) 사용한 15년 된 아파트 관사를 청소하고 손질하는 것도 꽤나 골치 아픈 일이었다. 빗물이 세는 베란다 새시, 물이 세는 세면대, 금이 가서 밟으면 조각조각 날 것 같은 베란다 타일. 앞으로 2년 반만 살 건데 대충 살까도 했지만 나는 어린아이들과 거의 24시간 집에서 지내야 하는 사람이었고 집에 대한 애착(?)도 생겨서 하나하나 수리를 했다. 관할 사무소에 요청할 건 하면서. 관사가 오래된 것을 행정팀에서도 잘 알아서 보일러 교체와 도배는 이사 전에 지원해주었다. 지금 생각하니 운이 좋고 감사하기도 하다.


아무튼 그해 9월, 유난히도 햇살이 찬란했던 어느 날 우리 가족은 완전체로 옥천에 입. 성. 하. 게 되었다. 20개월 차이 두 아이와 함께. 둘째는 그때 80일이 채 되지 않은 꼬꼬마였다.


어린 아가들을 데리고 시작한 연고 없는 시골살이


그때는 몰랐다. 새로운 곳에서 어떤 일이 펼쳐질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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