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갑작스러운 결연한 말을 들은 남편은 흠칫 당황한 눈치다. 때는 시골살이를 시작한 지 6개월 차. 몸도 마음도 어느덧 이곳에 적응 되었다. 손을 놓고 있던 운전을 하며 돌도 되지 않은 둘째를 데리고 군민도서관에서 하는 영유아 문화센터 수업도 갈 만큼은 되었으니까.
그러나 뭔가 허했다. 한적하다 못해 심심한 시골살이.
어제가 오늘 같고 그날이 그날 같았다. 하긴, 겨우 두 돌이 된 첫째와 20개월 밑의 둘째를 외딴 동네에서 주변의 도움 없이 키워내는 것만도 장하디 장한 일이었다. 공기 좋고 여유로운 곳에서 자연을 누리며 아이들과 평온하게 생활하고 돌아오겠다던 나의 당찬 '시골살이 포부'는 점점 희미해졌다. 시골에서 계속 살 것도 아니고 남편의 직장 때문에 이사 온, 말 그대로 '한시적인' 거주였는데도 간사한 인간의 마음은 참 갈대 같더라.
태생부터 서울 여자?
난 평생을 도시에서 나서 자라온 소위 '시티걸'이다. 맑은 공기보다는, 거리를 꽉 채운 많은 사람들과 복잡한 도로에 익숙하며 푸른 강과 산을 보며 힐링을 하기보다는, 쇼핑몰의 시원한 에어컨을 맞으며 커피 한잔 하는 것을 선호한다. 서울의 살벌한 교통체증 탓에 장롱 면허증을 소유했지만, 거미줄처럼 사방팔방 잘 뻗어나간 서울의 지하철 덕분에 서울 시내를 하루에도 몇 번씩 갈고(?) 다녔다. 물론 휴가철에는 한적한 산과 들을 찾아 지방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알고 있지 않나? 여행하는 것과 그곳에서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쉽게 말해 시골살이 혹은 지방살이에 대해 뭣도 모르는 시티걸이 '시골살이'의 환상에 빠져 당차게 지방으로 내려왔다가 잠시 우울했던 것이다.
시골에 산다고 말이 통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마트나 학교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찾아보면 매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시골살이의 매력에 대해서는, '시골 사람들은 정작 잘 모르는 시골살이의 좋은 점'을 참고하시길)
옥천의 자랑, 대전?
아, 서울에서 오셨구나.
시골에서 사람들을 만나거나 사귈 때, 뉴페이스는 늘 주목을 받게 된다. (어딜 가나 그렇긴 하지만) 자연스레 따라 나오는, 어디서 오셨냐는 질문. '서울'이란 단어에 어떤 마법 같은 힘이 있는 것일까? 그 단어에 유독 민감한 느낌이다. 그리고 위아래로 나를 슬쩍 스캔하는 눈빛. 물론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지만 '서울 사람'에게 갖는 일종의 선입견이 있는 모양이다. 서울에서 온 사람들은 뭔가 다를 거라, 좀 깍쟁이 같을 거라 여기는 것일까? 나중에 친해진 이곳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지방 사는 사람들은 '서울에 대한 동경'을 대부분 갖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서울로 학교를 가거나 직장을 구해 이사를 가면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온라인으로 전 세계가 통하는 21세기 4차 산업시대에 살고 있지만, 서울이라는 지역이 주는 힘과 매력은 아직도 유효한가 보다.
서울타워 뷰가 그리워서..
내가 거주했던 충북 옥천은 교통이 편리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경부 고속도로와 경부선이 지나며 대전까지 차로 20분이면 다녔다.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에게 옥천의 자랑거리를 물으면 열에 아홉은 '대전이 가까워요'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관이나 대형마트, 병원, 아이들 학원을 대전으로 보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나도 옥천에 살아보니 그 점이 실제로 굉장한 장점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대전 대형마트에 갔고 아이들과 공연도 보는 문화생활도 했다. 서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각종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카페도 충분히 많아서 '서울 가고 싶은 내 마음'을 달래주기도 했다.
서울병이 한 번씩 도질 때면, 나는...
한 번도 내가 도시를 좋아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시골에서 살기 전까지는. 그런데 어떤 날은 정말 사무치게(?) 서울에 가고 싶더라. 그럴 땐 어떻게 했냐고? 진짜로 서울 친정으로 갔다. 그것도 좀 길다 싶게 일정을 잡아서. 기저귀도 떼지 않은 어린아이들 둘과 친정에 머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친정부모님께도 죄송하고, 나도 내 집이 아니다 보니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는데, 그땐 꼭 가야겠어서 갔다. 일을 해야 하는 남편만 집에 덩그러니 놔둔 채로. 남편은 어쩌면 갑자기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서울 친정이라고, 나의 일상이 많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장소만 바뀌고 도움의 손길이 있을 뿐 아이들 엄마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보내는 일상은 서울이라고 크게 다르겠는가. 그래도 서울 거리를 지나갈 때 넘실대는 간판과 인파가 왠지 반갑더라.
돌이켜보니 난 서울이 아니라 가족이, 친구가, 익숙한 커뮤니티가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어린아이들이 기억하는 옥천 집과 동네
엄마, 나 옥천 집 가고 싶다.
이제 만 4세가 된 둘째가 며칠 전 느닷없이 하는 말.
서울로 이사온지 1년이 훌쩍 넘었는데 기억을 하는건가. 옥천 집에 왜 가고 싶은지 물으니 넓고 좋았단다. 20평 남짓한 낡은 아파트 관사가 어린아이의 기억에는 넓디넓은 좋은 곳이었나 보다. 순간 마음이 짠해지며 생각나는 나의 2년 반 동안의 시골살이. 우리 가족 오롯이 힘이 되어 똘똘 뭉쳐 오손도손 살아낸 시간. 주위의 도움과 친구들에게 감사하며 지낸 시간.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소중한 인연을 만나고 삶을 돌아보며 감사했던 시간. 어쩌면 그 시간의 나와 시간들이 많은 부분 성장하게 하는 것 같다.
아 간사한 인간의 마음이여. 문득 생각이 많아진 가슴을 진정시키며 둘째의 눈을 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