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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Nov 09. 2021

시골에서 밥 해 먹고 살아 보기

요리 초보, 시골에서 드디어 요리를 시작하다

시골에도 마트는 있겠지?


시골로 이사를 앞두고 별안간 불안해졌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마트의 유무나 크기를 걱정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결혼하고 나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요리를 꾸준히 해본 적이 없는 사실에 겁부터 났던 것 같다. 낯선 시골 동네로 이사 그다지 걱정되지 않았다. 용감하게 남반구에 있는 호주까지 가서 홀로 유학생활을 했던 내가 아니던가. 그러나 나 혼자만 건사하며 끼니를 때울 수 있었던 그때와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 남편과 어린 두 아이. 그들의 식사를 내가 담당해야 했다. 손가락 하나로 주문하면 쓱 도착해있는 서울과는 달리 시골이라 배달 음식도 많지 않다던데 두려움이 앞섰다.



가족을 위한 요리를 시골에서 시작하다


어느 요리 초보의 고백

쉽게 말해 '요리 무식자'였다. 제대로 요리를 해본 적도 많지 않았고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인간이 하루에 세끼를 먹어야 하는 것은 굉장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왜 그리 관심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결혼하고 나서도 친정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정기적으로 반찬을 만들어 주시는 친정과 시댁, 그리고 반찬가게 덕분에 그럭저럭 찌개만 끓이고 간단한 요리만 하곤 했다. 회사에 다니던 터라 집에서 식사를 하는 일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그러나 낯선 시골 동네에서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식구들의 밥상을 책임져야 했으니까. 아직 어린 둘째는 분유를 먹는다 쳐도 이유식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앞이 막막했다.


시골에서 장 보기, 뭐가 다를까?

시골에 마트가 있을까 걱정했던 내가 우스워보인다. 이마트, 홈플러스 같은 대형마트는 없지만 괜찮은 규모의 지역 마트가 서너 곳 이상 있었다. 대형마트에서 볼 수 있는 식재료는 물론이고, 옥천 산지에서 직접 재배되는 과일과 채소가 싸고 싱싱해서 무척 만족스러웠다. 물론 가끔은 대전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기도 했다. 각각의 장점과 특징이 달라서 장보는 재미도 있었다. 아이랑 같이 마트에 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 남편이 아이들을 봐주면 내가 혼자 가서 장을 보는 일이 잦았다.


뭐니 뭐니 해도 시골에 사는 최대 장점 중 하나는 싱싱한 산지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다니던 교회는 점심식사 메뉴가 모두 싱싱한 제철 재료로 구성되어 있었고 다녀본 교회 식당 중 최고였던 기억이다. 추수감사절에는 마트에서 산 농산물이 아닌 직접 제배한 농산물을 교회당에 쌓아 놓은 모습을 본 일도 있어서 문화적인 충격을 받기도 했다.


이런 싱싱한 산지 농산물을 지역 맘 카페 등에서 직접 판매하기도 한다. 값도 저렴하고 당일 수확한 것을 배송까지 해주니 건강한 밥상을 위한 최고의 조건이었다. 사과, 딸기, 포도 등 과일과 옥수수, 버섯, 직접 짠 들기름까지. 옥천 딸네 집에 오신 친정엄마는 들기름 맛을 보고 반하기도 하셨다. 재료가 신선하고 좋으니 어설픈 솜씨로 요리를 해도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요리 초보인 아내가 전전긍긍 잘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는 남편도 늘 엄지 척하며 응원해줬다. 그땐 내가 요리를 좀 잘하는 줄 알았다.


산지 농산물을 만날 수 있던 곳. 매장 안 브런치카페를 더 자주 갔지만.. (출처: 옥천군 블로그)


내가 옥천에 온 지 1년 반 정도 되었을 때 '로컬푸드직매장'이란 곳이 생겼다. '지역의 친환경 및 로컬푸드 농산물의 안정적 판매처 확보와 신선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옥천군에서 지원하는 곳이다. 쉽게 말하면 옥천에서 생산한 싱싱한 농산물을 파는 곳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서울에서는 '한살림'을 주로 이용한 나로서는 이곳에 가면 '한살림' 매장에 온 느낌이었다. 대전까지 소문이 나서 주말이면 대전에서 옥천까지 장을 보러 오는 사람도 꽤 있었다. 옥천 사람들은 대전 대형마트나 대전 오정동 농수산물시장에서 장을 보러 가기도 하던데 아이러니 한 풍경이다. 들리는 말로는 옥천은 대전 사람들에게는 휴양이나 여행, 맛집 갈 때 생각나는 곳이라고 한다.


아무튼 옥천 로컬푸드직매장하면 나는 매장 안 브런치카페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 싱싱한 식재료야 당연히 많았지만 시골에 브런치 카페는 흔치 않은 법.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에그 베네딕트'와 '더치 베이비'를 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수준 높은 플레이팅과 함께 만나볼 수 있었다. 시골에서 에그 베네딕트와 더치 베이비라니! 한동안 나와 남편의 최애 맛집이 되기도 했다.


가족의 건강한 밥상을 위한 노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중


닥치면 다 하게 돼 있다고들 한다. 요리에 관한 내 경우도 그랬다. 없던 흥미가 생기고 관심이 가니 즐거움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래서 옥천에서 2년 반이란 시간을 장 봐서 밥 해 먹고살았나 보다. 물론 맛있는 반찬가게와 식당의 도움도 컸다.


중요한 점은 나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았다는 것이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지금, 배달음식 시장은 어마어마하게 커졌고 폰으로 전 세계 음식을 단 몇십 분 안에 집안에서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책상 위에는 배달 커피가 놓여 있다. (배달 커피 단상에 대한 이야기는 꼭 남이 타주는 커피를 마셔야겠니? 를 참고하시길)


이렇게 빠르고 편리한 배달음식 문화도 좋지만 가끔은 싱싱한 산지 농산물을 쉽게 만날 수 있었던, 어쩌면 자연과 한 걸음 더 친했었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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