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골로 이사 계획이 잡혔을 때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코로나 발생 전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영화관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했다. 특히 영화 시작 전, 커다란 음료수와 달콤한 맛 팝콘을 양손 가득 들고 어두컴컴한 영화관 좌석을 찾아 앉을 때면 색다른 설렘이 느껴지기도 했다. 정작 탄산은 속이 부대껴서 잘 마시지도 않는데 말이다.
당시 두 돌 남짓한 첫째와 백일도 안된 둘째를 낯선 곳에서 홀로 양육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는 나와 남편이었지만,영화관에 대한 로망은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꼬꼬마 아이 둘 엄마가 시골에서 문화생활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으니 언감생심 너무 욕심을 부렸나 싶다.
시골에서 문화생활, 잘할 수 있어요?
문화생활을 거의 못할 거란 예상과는 다르게, 옥천에서 지내던 2년 반 동안 나름 쏠쏠한 문화생활 경험을 했다. 두 아이가 어린이집에 모두 다니게 된 이후부터는 말이다. 육아 집중기에 문화생활은 사치.
문화생활에 포함되는 영역이 다양할 수 있으나 이 글에서는 영화와, 공연 전시 위주로 '시골에서 문화생활 잘하는 법'을 풀어보겠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며 시골생활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참고했으면 바랬으면 하는 마음으로.
1. '작은 영화관'을 아시나요?
처음 옥천에 이사 갔을 때는 영화관이 없었다. 그러다가 2018년 말에 <향수시네마>라 불리는 작은 영화관이 생겼다. 말 그대로 2관 95석의 아담하고 작은 영화관이었다. 참고로 '작은영화관'이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도서지역에 건립하는 소규모 영화관으로 보통 군에서 직접 운영하거나 위탁한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분포해 있으며 충청북도에는 옥천군, 보은군, 영동군에 각각 위치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이후에 폐업하거나 어려워진 곳도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작은 영화관의 가장 큰 장점은 가깝도 저렴하다는 것. 운동삼아 걷기도 좋은 거리이기도 했다. 물론 서울이었으면 걸어 다녔을 법한 거리를 굳이 운전을 해서 다녔다는 게 문제지만. 그러고 보니 시골 사람들 잘 안 걸어 다니는 것 같다. 운전이 워낙 익숙해서인지 아니면 대중교통이 불편해서인지 몰라도 가까운 거리도 대부분 차로 이동한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익숙한 사람들은 스크린이 작아 좀 답답할 수 있지만, 시골에서 이게 어딘가. 평일 낮에 시간을 잘 맞춰가면 전세를 내는 수준으로 영화관을 누릴 수도 있었다. 아담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향수 시네마> 덕분에 최신 개봉작도 극장에서 보고 팝콘과 음료수도 마음껏 즐겼던 기억이다.
옥천 <향수시네마> (출처: 옥천군 블로그)
2. 시골에서 공연을 본다고? 그것도 공짜로?
뮤지컬이나 연극 같은 공연을 시골에서 볼 기회는 흔치 않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나 군에서 군민 복지 차원으로 여러 가지 혜택을 주기도 하니 잘 찾아보면 저렴하게 혹은 공짜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군청에서 운영하는 블로그 등에서 공연정보를 미리 파악해서 아이들과 뮤지컬을 보러 가곤 했다. 한 번은 공룡이 나오는 공연을 관람했었는데 아이들이 너무 어렸나 보다. 무대에 그럴듯한 공룡 분장을 한 배우가 등장하자마자 울기 시작한 둘째 때문에 중간에 결국 나왔다. 아무튼 이런 공연은 군의 후원에 힘입어 공연장도 굉장히 쾌적하며 잘 관리되는 편이다. 공연뿐 아니라 각종 이벤트나 행사도 생각보다 자주 개최한다. 단, 서울에서 경험했던 이벤트를 기대하고 간다면 소규모 스케일과 적은 인파에 놀랄 수도 있으니 주의를 바란다. 서울과 시골의 행사는 다르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문화행사는 '어린이날 행사'다. 군에서 야심 차게 준비하며 홍보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관심이 가서 당시 만 4세 만 2세였던, 아직은 어린이라 불리긴 좀 이른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워 구경을 갔던 기억도 난다. 이렇게 지방자치단체에서 후원하는 문화생활 이벤트를 잘 찾아보면 혜택을 누리며 시골에서도 꽤 괜찮은 문화생활 누릴 수 있다.
시골에서 나의 문화생활을 가능케 해준 옥천문화예술회관과 어린이날 행사 (출처: 옥천군 블로그)
3. 그럼에도 문화생활을 더 갈망한다면?
시골에 살면서 영화관도 공연도 모두 즐길 수 있지만 개인의 취향에 맞는 더 특별한 문화생활을 원하는 당신이라면? 답은 간단하다. 가까운 대도시 혹은 서울에 다녀오면 된다. 내가 거주한 옥천군은 대전이 무척 가까웠다. 옥천 지인들에게 옥천의 장점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대전이 가깝다'라고 할 정도로. 그도 그럴 것이 대전의 마트나 영화관을 이용하는 것은 물론, 아이들 학원을 대전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더라.
대전은 광역시답게 각종 문화예술공연과 전시가 풍성했다. 개인적으로 전시회나 공연을 통한 감동과 위로는 영화가 주는 것과는 다른 매력이 있어서 가끔 즐기는 편이다. 뭔가 고상한 안목이 더해지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보고 싶고 인기 많은 공연은 주로 평일 저녁 늦게나 주말에 진행된다. 어린아이들이 있는 나는 그런 공연을 관람할 꿈도 꾸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이들과 전시회를 느긋하게 감상하기도 어려운 일. 그래서 평일 낮시간에 남편과 전시회도, 클래식 공연도 보러 갔다. 1만 원으로 매달 수준 높은 클래식 공연을 볼 수 있는 대전예술의전당의 '아침을 여는 클래식', 500원이라는 파격적인 입장료에 놀랐던 '이응노미술관'이 기억에 남는다. 이 글을 빌어 아내의 취향을 위해 평일 연차를 아낌없이 써준 남편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해 본다.
대전예술의전당 평일 11시 공연에 가서.
옥천의 한 지인은 틈만 나면 주말에 서울행 기차를 탔다. 미술 전공이자 아이들을 가르치던 그녀는 다양한 전시를 보면서 영감도 얻고 휴식도 한다고 했다. 가끔은 학원 아이들에게 전시를 보여주러 서울에 가기도 했다. 물론 싱글이어서 더 자유롭기도 했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서울 공연과 전시를 보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나 보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문화생활을 위한 최고의 장소는 서울이다. 그렇지만 내 경험상, 시골에 살면서도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문화생활이다. 게다가 요즘은 온라인 공연도 트렌드가 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