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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Nov 11. 2021

낯선 시골에서 우리 가족끼리만 보낸 명절

서울 가족, 시골에서 명절 보내기

서울 가족, 시골에서 명절 보내기


옥천에 이사 오고부터는 서울에 계신 일가친척과 당일로 왕래하는 스케줄은 무리였다. 그래서일까? 시댁과 친정 식구들 모두, 한 번씩 옥천 우리 집에 오실 때면 1박 이상은 하고 가셨고, 나는 서툰 솜씨로 음식을 준비하며 손님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힘들다기보다는 외로운 우리 가족에게는 반가운 행사 같은 일이 되었다. 양가 부모님들도 연고 없는 충청북도 우리 집에 방문하실 때면 여행하는 기분이 난다며 좋아하셨다. 남편과 나는 옥천 일일 가이드가 되어 정지용 생가, 육영수 생가, 대청호 카페와 드라이브 등의 코스를 알차게 짜서 어른들을 모시고 다니곤 했다. 그리고 밤에는 아이들을 부탁하고는 남편과 데이트를 즐겼다. 데이트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오는 게 다였지만. 옥천은 작은 동네라 명절 당일에는 문을 연 카페도 그리 많지 않아서 북적이는 카페에서는 아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시골 사는 재미랄까.


명절에 자주 갔던 육영수생가, 정지용생가


시골의 명절 풍경은 뭐가 다를까?


시골에 와서 받은 문화적 충격 중 하나는 일가친척들이 근거리에 생각 이상으로 가까이 많이 모여 살아서 왕래가 무척이나 잦다는 것이다. 평생 몇 번 볼까 말까 하는 시당숙, 시고모 등과 긴밀하게 왕래하며 시시때때로 집안 행사가 많았다. 서울에 살 때는 거의 보지 못한 생경한 모습이라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시골답게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집안에 꽤 있어서 일손이 달릴 때는 직접 가서 밭일을 도와드리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 끈끈한 가족의 정이 아직 살아있구나 라고 느껴짐과 동시에 집안 며느리들은 얼마나 일이 많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이 새침한(?) 시티걸은 한 번쯤 꾀도 부리고 어른들께 적당히 타협안을 요구했을 텐데 시골에는 참 착한 며느리들이 많은가 보다.



그해 추석은 좀 이른 편이었다


옥천에서 맞는 세 번째 추석 명절은 좀 이른 편이었다. 아직 여름을 벗어나지 못한 날씨 탓에 반팔을 입고 다녀도 괜찮았을 정도니까. 그 해에는 어찌어찌하여 양가 식구들이 명절 기간에는 옥천에 오시지 않았고 우리도 서울로 가지 않았다. 남편이 당직 근무를 해야 했기도 했고 여러 가지로 상황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가족 네 명 오롯이 처음으로 긴긴 연휴를 시골에서 지내게 되었다. 멀리 해외에 나와있는 것도 아니고, 친척이 없는 것도 아닌데 가족끼리만 지내는 명절은 뭔가 새롭게만 느껴졌고 그래서 지금까지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당시엔 긴 연휴기간 동안 아직 많이 어린아이들과 무얼 하며 놀아줘야 하나 고민부터 앞섰다. 여행이라도 가볼까 생각했지만 아이들이 워낙 어린 탓에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다. 연고 없는 곳이라 우리를 불러줄 곳도 없었고 옥천에서 만난 지인들은 명절 며칠 전부터 명절 준비에 여념이 없어서 오히려 얼굴 보기 힘들었다.


마치 이산가족이 돼버린 듯한 느낌. 해외에 살면 명절에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이렇게 가족끼리 오롯이 지내는 명절은 흔치 않은 경험이라 최선을 다해서 스케줄을 짜보았다. 뭐든 계획하길 좋아하는 성격 탓이겠지만 역시나 미리 세운 계획도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변수가 많았다. 그래도 여행하는 기분으로 옥천과 대전 이곳저곳을 가보았으 그걸로 됐다. 추석이라 계절이 참 좋아서 카메라 셔터만 가져다 대면 예술작품과 같은 경치를 담을 수 있었다. 커피 맛이 좋은 카페 몇 군데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옥천 카페는, '서울댁의 나만 알고 싶은 시골 카페 4곳'을 참조하시길)


명절 끝자락 맞이한 주일날 교회에 가서 아는 얼굴들을 뵈니 그리 반가울 수 없더라. 이래서 사람은 혼자서는 못 사나 보다.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외로운(?) 명절이었다.


옥천 뷰 마음껏 즐기던 명절


제2의 고향 옥천


 마음 고향 하나 더 생겼다. 왠지 다시 가면 그곳의 산과 들과 하늘이 나를 반갑게 맞아줄 것만 같은 그곳, 옥천. 아직도 아이들은 옥천 집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다행인 것은, 그곳에서 만난 친한 친구들이 아직 옥천에 남아 있어서 언제든 내려갈 수 있다는 사실. 서울에서 2시간 3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인데, 이사 오고 아직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우리 부부와 아이들의 진한 추억이 곳곳에 담겨있는 곳. 조만간 그곳에 달려갈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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