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록은 기억보다 강하다.' 뇌리에 강하게 박힌 오래전 광고 카피가 이렇게 절실히 와닿는 날이 올 줄이야. 시간은 매일 흘러가고 뭔가 기록을 남기는 인생이 되고자 다짐해본다. 생각의 조각들이 산만하게 돌아다니는 것보단 좀 더 명확하게 삶을 돌아보고자.
- 개인 블로그 첫 발행 글 중 일부 -
다시 읽어보니 적잖이 당찬 포부다. 이 포부를 서문으로, 이른 더위가 찾아왔던 그해 초여름,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작하는 글은 거창했으나 블로그에 꾸준히 기록하는 일은 정말이지 쉬운 게 아니었다. 나의 무언가를 꾸준히 기록으로 남기는 일. 사소하지만 소중하고, 쉬워 보이지만 결코 만만치 않았다. '기록은 쉽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는 건 더 쉽기에 언제든 이미 지나쳐버린 마음으로 살게 된다'라는 임진아 작가의 말처럼 나는 덜 쉬운 도전을 선언했었다.
블로그는 하루에도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라 내 글을 누군가가 본다는 사실이 처음엔 꺼려졌다. 종이 노트가 대안이 될 수 있었건만 갈수록 마음에 들지 않은 나의 손글씨가 걸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사람들은 내 글에 그렇게 관심 있지 않다는 것과 글을 공개하며 쓰는 것이 굉장히 매력 있다란 사실을 말이다.
아무튼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의 나는 '어제가 오늘 같고 다가올 내일도 오늘 같을 것이란 확신'을 하며 낯선 시골에서의 육아에 치여 있었다. 도시 육아와 시골 육아가 별반 다르겠냐만은 주변의 도움 없이 남편과 오롯이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녹록하지 않았다. 다행히 첫째는 낮시간 동안 어린이집에 맡겨졌지만, 아직 돌이 되지 않은 둘째와 하루 종일 보내는 시간마저 그냥저냥 흘려보내는 중이었다. 물론 장을 봐서 이유식을 만들고, 집안일을 하며 엄마와 아내의 역할에 나름대로 충실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를 잃어버린 허전한 느낌이 들더라. 그 감정의 이유를 더 정확히 말하면나를 위한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막연하게나마 훗날 이 시간을 돌아볼 때 '그때 낯선 곳에서 아이 키우느라 참 힘들었어.'한마디로 끝날 것 같은 몇 년의 시간이었다. 그러기엔 나의 시간과 그때의 나날들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렇게 넘어가기 싫었고 떠나보내기 싫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뭐라도 남기자는 생각을 했다. 사진도 좋고 짧은 글도 좋고. (이런 판단에 이른 그때의 나를 이제 와서 격하게 칭찬한다)
블로그는 뭔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건가?
아날로그적 감성이 지배적인 사람이라 스스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어쩌면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발맞추지 못한 나의 한계와 게으름을 잘 포장한 말이었으리라. 손안에 컴퓨터를 하루 종일 달고 살며 맛집과 여행지 정보도, 물건 구매 후기도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통해 확인하곤 했다. 블로그를 통한 리뷰는 뭔가 더 친근했고 믿음이 가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블로그와 아주 가까이 지낸 나는 그냥 '블로그 소비자'였다. 그때만 해도 블로그는 뭔가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건 줄 알았다. 아무도 그렇게 말한 적 없는데도!
블로그를 통해 소비자에서 생산자 마인드로 바뀌는 것도 큰 이득이었다. 갑자기 웬 생산자 타령이냐고? 타인의 글을 소비만 하던 내가 글을 생산하는 주체가 된 것이다. 정말 새로운 관점이지 않은가. 적어도 나는 이 간단한 이치를 발견하고는 '올레!'를 외쳤다. 이 관점의 차이 하나로 블로그 하는 재미가 생겼다. 누군가 내가 생산한 글을 읽어주니 고맙다는 생각, 더 괜찮은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 함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결고리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시골에 살 때는 일상을 기록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블로그를 해왔다면 지금 나의 블로그는 개인 sns의 베이스캠프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더 자세히 말하면, 나는 블로그뿐 아니라 인스타그램, 유튜브, 그리고 지금 쓰는 이 브런치까지 확장해왔다. 블로그를 기반으로 해서 말이다. 채 2년이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일어난 놀라운 변화라고나 할까. 물론 sns를 한다고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에 따른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기록하는 삶, 나누는 삶, 연결되는 삶을 체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변화에 동참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블로그를 통해 생산자가 되어보다
시골에 살면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 블로그
시골에 살면서 뿌듯했던 기억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 하나가 '블로그를 시작한 것'이다. 상위 노출이 뭔지, 검색이 되는 글쓰기가 뭔지 블로그 운영과 알고리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꾸준히 기록한다는 것에 가치를 두고 두서없이 시작했다는 점이 의미 있던 순간이다. 모두에게나 시작은 미약하다. 준비가 더 되면, 때가 좀 차면이란 생각보다, 나의 sns 스승님인 윤소영 작가의 말처럼 '거지 같이 라도 시작하라'는 말이 더 와닿는다. 대충 하라는 뜻은 아니다. 일단 실행력 있게 시작하면서 방향을 잡아가는 것도 좋다는 뜻 이리라.
블로그의 미약한 시작을 시골에서 할 수 있어서 더욱 감사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때의 기록 덕분에 시골에서의 추억을 더 선명하게 붙잡아두고 볼 수 있고, 브런치에도 옮겨 담을 수 있는 글감이 풍성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기록이 가져다주는 힘 때문에 사람들은 모이면 사진을 찍고 인증을 하나보다. 이제 굳이 굳이 번잡한 중에도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들을 더 너그러이 적극적으로 인정해줘야겠다.
일상이 단조롭거나 무료하다고 느낀다면, 혹은 자신의 시간을 찾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기록을 시작하라고 강하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