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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Jun 02. 2021

도시 이방인의 시골살이 필살기

자립정신 그리고 운전

마치, 말이 아주 잘 통하는 외국에 온 기분

내가 옥천에 온 지 얼마 안 된 후 느낀 감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이라곤 단 한 명도 없는 낯선 동네. 도시에서라면 바쁜 분위기에 그런 감정들을 마주하기 힘 수도 있었겠지만, 옥천은 작은 동네였다. 서로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서 현지인 지인들은 행동거지도 가끔은 조심스럽다고 할 정도였으니. 어쩌면 눈치 볼 것 없는 자유로운 이방인의 삶이긴 했지만 비빌 언덕이 없는 우리 가족은 낯선 땅에 덩그러니 남겨진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 어린이집이 방학이라도 할 때면 서울 친정으로 피신(?)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물론 호주 유학시절 집을 떠나 멀리 가서 살아본 경험은 있지만, 나를 바라보는 어린 두 아이의 눈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그 책임감이라 함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지금 필요한 건, 자립정신

자립정신: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서려는 정신 (표준국어대사전)

결혼 후 줄곧 친정의 도움을 받아 육아도 살림도 했다. 매주 새로운 밑반찬을 바리바리 싸주시던, 그리고 첫 손녀를 아끼는 친정엄마 덕분에 육아가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겁도 없이 첫째와 둘째를 20개월 차이로 출산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옥천에 뚝 떨어진 우리 네 가족. 당장 밥 먹는 것부터 난코스였다. 내가 할 줄 아는 음식도 몇 가지 없었거니와, 낮에는 아이들까지 케어해야 했으니 그 막막함이란. 이제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느낌부터 들었다. 진짜 어른 말이다.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힘, 가족

독박 육아? 몰입 육아!

독박 육아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어가 주는 불편한 어감은 아직 까지 적응이 안된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몰입 육아'란 표현을 봤다. 그렇다. 표현을 바꿔서,  옥천에서의 나는 남편과 '몰입 육아' 시기를 거쳤다. 둘째가 100일이 안된 상태였기 때문에 하루 종일 아이의 수면, 수유, 기저귀 등 신경 쓸 것이 많았다. 잠이 예민한 둘째 아이는 새벽에도 몇 번씩 울어대기 일쑤였다. 다행히 얌전한 첫째는 어린이집 적응도 잘하고 잘 먹고 잘 자서 성가실 것이 별로 없었다. 물론 아직 만 2세가 되지 않아 손이 많이 가는 어린아이였 긴 했지만. 6시 칼퇴근을 하는 남편은 일이 끝나면 곧바로 집에 와서 육아와 살림을 도왔다. 본인도 쉬고 싶고 답답했을 텐데 우리 둘은 그야말로 한 마음 한 뜻으로 시골생활에 적응하고 자립하려고 무던히도 애던 나날이었다.




옥천에 살면서 버스를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사통팔달 그물망같이 연결된 대중교통이 매력적인 서울 수도권에 살 땐 잘 몰랐다. 얼마나 누리며 편하게 살았었는지를. 북적이는 만원 버스도, 인파에 치여 겨우 타곤 했던 지하철도 사무치게 그립던 어느 날. 장롱면허 소지자였던 내가 운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니, 할 수밖에 없었다. 면 단위가 아닌 읍에 살고 있었음에도 뚜벅이 생활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주변을 보니 마트나 병원, 혹은 아이들 학교를 가야 할 때도 운전은 필수인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차가 2대 이상인 집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알던 옥천 지인들도 성인이 된 직후부터 차를 몰았다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열 일하던 우리 차

서울에서 줄곧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진열(?) 수준으로 머물었던 우리 차가 시골에 와서 드디어 물을 만났다. 남편의 출퇴근, 아이들 등원, 내 볼일 보러, 운동하러, 주말 나들이용으로. 하루도 쉬지 않은 우리 차. 더 좋을 차를 샀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유용하게 제 역할을 잘했다. 물론 실속파인 우리 부부는 서울에 다시 돌아온 지금도 이 차를 몰고 있다. 아마 당분간은 더 탈 것 같다.


차로 조금만 달려가면 그림같은 뷰를 즐길 수 있던 곳

옥천 곳곳을 운전하며 다니다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어린이집 라이딩, 혹시라도 아프면 가야 했던 병원. 익숙한 사람들에겐 별거 아닌 운전이, 겁 많은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시골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한 필살기가 되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옥천 곳곳을 운전하며 다니는 수준에 이르렀다. 물론 시골 운전은 도심의 운전보다 수월하다. 차가 많은 편도 아니고 길도 한적하고 주차할 곳도 많다. 게다가 차로 조금만 운전해서 나가면 펼쳐지는 초록의 아름다운 풍경은 그야말로 눈호강이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옥천의 풍경은 홍보를 하고 싶을 정도다. 서울이라면 족히 한 시간 반을 달려야 만날 수 있는 자연을 그때는 마음만 먹으면 매일 누릴 수 있었다.



이렇게 필살기를 갖고 시골살이를 해나간 우리 가족과 나. 서서히 그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며 몸도 마음도 차츰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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