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특이한 나의 직장 이력 덕분에 풀어보는 대기업, 외국계, 공공기관 시리즈. 이 글은 마지막 편으로, 공공기관에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대기업의 해외마케팅 부서와 외국계 회사에서 CS(Customer Service)와 마케팅 업무를 거친 내가 다음으로 이직하게 된 곳은, 모 부처 산하의 공공기관이었다. 참고로 이전 직장에서 나는 각각 2년 정도 근무했고 중간에 호주 대학원으로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에 관해서는 '미국이 아니라 호주 대학원을 가겠다고?'를 참고하길)
사기업에 비해 눈에 띄는 공공기관의 강점은 뭐니 뭐니 해도 안정성이다. 굳이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된다는 것은, 다른 조직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되겠다. 누군가 말하기를, '공무원 같은 안정성과 복지를 누리면서 훨씬 나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신의 직장은 공공기관'이라고 정리하더라. 절대적인 말은 아니지만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론 공공기관에 따라 연봉 차이가 심하다고들 한다. 편차가 크다는 말이다. 그러나 일의 강도와 연결시켜 본다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사기업은 조직의 제1목적인 '영리 추구'를 위해 영업과 실적이 절대적이나 공기업은 실적 압박이나 영업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내가 근무했던 곳도 정부예산을 재원 삼아 사업을 진행했다. 때문에 예산확보를 위한 기획이나 보고서 작업 등을 철저히 해야 하긴 했지만 실적 압박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사기업에서 느끼는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칼퇴근과 워라밸
칼퇴근. 누군가에겐 꿈이다. 일과 여가를 모두 중시하는 워라밸 문화가 우리 사회에 점차 퍼져가고 있지만 아직도 잦은 야근과 강도 높은 업무로 고달픈 직장인들이 많다. 아무리 연봉이 높아도 칼퇴근이 힘들며 개인 시간이 없다면 요즘 MZ세대들에겐 인기가 없을 것이다. 내 경우에도 특별한 경우(행사 준비, 평가보고서 준비 등)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칼퇴근을 했다. 개인의 성향 일지 모르지만, 높은 연봉에 따른 강도 높은 업무보다는 급여를 조금 덜 받아도 칼퇴근하며 '저녁이 있는 삶'을 훨씬 선호한다.
더욱이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에 관해서도 당연한 권리라고 인식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휴가를 쓸 때 소속팀에 눈치는 보이겠지만, 사기업 수준의 압박감과 박탈감은 아닐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남자 직원이 육아휴직을 쓰는 경우도 종종 보고 듣는다. 그런 면에서 공공기관은 매력적이다. 그래서 '특히 여자가 다니기 좋은 직장'이라고들 하나보다. 실제로 내가 속했던 기관에도 여성 직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단, 임원급의 경우 남성 비율이 가히 압도적이었다.
보수적인 조직 문화
'안정적'이라는 장점의 이면에는 '보수적이고 답답할 수 있음'이라는 숨은 뜻도 있다. 성과가 나지 않거나 조직에 해를 입히는 직원이나 팀도 섣불리 정리하기 어렵다. 또한 성과를 많이 내고, 일을 잘한다고 보수를 더 받거나 파격적인 승진을 할 수는 없는 구조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에 대해 열정 많은 아이디어 가득한 직원은 이곳에서 '쓸데없이 나서는 애'라는 오명을 쓸 수도 있다. 성과를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인사제도가 점차 확대되고는 있지만 이도 조직에 따라 방식도 변화의 속도도 다른 것 같다. 이러한 보수적인 문화는 수평적이라기보다 수직적인 커뮤니케이션 스타일과 강한 위계질서로 인해 더욱 강화되는 듯하다. 경험자들은 잘 알겠지만, 공공기관에는 나이가 많은 꼰대 스타일의 상사들이 많은 편이어서 보수적인 조직문화에 적응이 잘 안 된다면 힘들 수도 있다. 유연한 노동시장이 전혀 아니라서... 따라서 조직의 문화도 안정적이자 보수적이며 처음에는 패기 넘치게 열정적이었던 직원들도 조직의 문화에 점점 동화되어 가더라.
로테이션 근무와 지방근무의 가능성
공기업 지방분산정책 등으로 많은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국가의 균형발전이란 공공 측면에서는 환영할만하나, 개인의 삶의 질 측면에서는 반기지만은 못할 일일지도. 특히 싱글인 공공기관 직원들은 지방에 홀로 근무하며 결혼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는 하소연까지 듣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지방이전계획이 없는 서울에 위치한 공공기관을 지원했었다. 그러나 이 계획도 정부 정책에 따라 바뀔 수 있으니 절대적이진 않다. 아무튼, 공공기관 취업을 생각한다면, 지방근무 가능성도 염두에 두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나는 신입이 아닌 경력직으로 공공기관에 입사했다. 더 자세히 말하며 '국제협력'업무 담당 직원이었다. 바로 이전 직장이 외국계 기업이라서 그런지, 공공기관 특유의 조직 분위기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조직에서 나 혼자만 너무 글로벌한 분위기랄까. 내가 속한 팀이 '대외협력'을 주관하는 팀이었지만 대부분 공공기관에서 이직을 하거나 한 곳에서 근무한 직원들이 많아서 나랑은 좀 결이 달랐다. 그래도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업무적으로 인정받고 싶었지만 인사평가 때는 매년 밀어주는 팀과 직원이 따로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바꿔 말하면, 일하고 성과를 낸 만큼의 평가나 보상이 제대로 안 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업무 로테이션 시스템이 있어서 특정 업무에 익숙해질 만하면 다른 팀에 배치가 되는 일이 잦았다. 내 경우는 '국제협력'이라는 전문성을 갖고 경력직으로 왔으나, 후에 '기획'팀으로 배치되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언뜻 이해가 안 갔지만 조직의 특성에서 본다면 이상할 것 없는 일이다. 다만, 다른 팀으로 옮겨서도 내가 관여된 국제협력 업무가 꽤 있어서 지속적으로 도와주긴 했다. 일만 많아졌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이 조직에서도 결국 퇴사를 했다. (퇴사에 관한 이유는 '세 번째 퇴사는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를 참고하시길)
진취적이며 자기 성장에 관심 많은 스타일이라면
공공기관의 특성상 사업을 주도하며 크게 일을 벌이는 경우가 흔치는 않다. 물론 국가 주도의 특성화 사업이나 정부가 소위 밀어주는 사업에 관여하는 곳이라면 스케일이 굉장히 커지기는 한다만. 주로 올해 예산과 사업계획에 맞게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것도 주무부처의 입맛과 요구에 따라 업무가 틀어지기도 생기기도 없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는 공공기관의 특징이자 태생적인 한계라고 말할 수밖에. 그래서인지 나서거나 튀는 직원, 달리 말하면 진취적이며 자기 성장에 관심 많은 스타일의 직원이랑은 잘 맞지 않을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은 매력적인 조직이다.
취업 혹은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면 더 넓은 시야를 갖고 본인의 스타일을 잘 분석하여 최고의 선택을 하길 바라며 글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