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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Nov 02. 2021

잠시 산책하러 속리산 다녀올게요

시골 사니 이런 점 참 좋더라

"속리산에 꼭 다시 한번 가봐야지!"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한다. 당시 아람단 단원이었던 나는 여름방학 속리산에 갔다. 방학 때마다 으레 있는 산행 행사였던 것 같다. 인솔교사와 함께 '문장대' 등반도 해내며 나름 뿌듯해하기도 했다. 종교와 관계없이 법주사에서 마시던 시원한 물과 그 유명한 정 2품 소나무도 어렴풋이 생각난다. 그러나 어린 시절이라 속리산이 어디에 위치해 있었는지, 산의 풍경이 어땠는지는 거의 기억없다. 그래도 이때의 강렬 추억 때문일까? 마음 한편에 언젠가는 꼭 속리산에 다시 한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잠시 산책(?)하러 다녀온 속리산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넘은 후, 나는 속리산에서 멀지 않은 충북 옥천(속리산은 충북 보은군에 위치해 있음)에 잠시 거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그리웠던(?) 속리산에 다시 가보았다. 그것도 단풍이 절정인 가을에, 남편과 함께. 이렇게 명산 주변에 살면 자주 가볼 것이란 나의 예상과는 달리 옥천 사람들도, 보은 사람들도 속리산에 그다지 자주 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치 서울 사람이 한강 유람선을 대하듯 말이다. 하긴 충청권에 속리산 말고도 대중에게 덜 알려진 더 좋은 자연이 차고 넘치니 할 말은 없다.


속리산은 얼핏 보기엔 험한 바위산처럼 보이지만 등산로가 매우 잘 다듬어져 있기 때문에 오르기가 크게 어렵지 않다. 더욱이 2016년에 세조길이 잘 정비되면서 명품 산책로로 인기를 끌고 있다. 참고로 세조길은 1450년경 조선의 7대 왕이었던 세조가 직접 속리산을 왕래하던 길이라고 한다.


이런 지리 역사적 배경을 알고 가니 더욱 재밌게 다가온 속리산 산책. 내가 굳이 '산책'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가 있다. 앞서 말한 세조길과 법주사 코스의 길이 워낙 잘 조성되어 있어서, 단풍을 넉넉히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과 휠체어를 타고 나온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옥천에서는 잘 닦여진 국도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리 금방 도착했다.




내가 속리산을 즐기는 법


본격적인 산책 전에는 속이 든든해야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 이날 예외 아니었다. 2~3시간의 산책 후에 내려와서 맛있는 산채정식을 먹을 것을 기대하고 있던 터라 별생각 없었다. 아니, 생각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거지. 속리산 입구에 있던 어묵바를 파는 노점상이 배를 채울 수 있는 우리의 마지막(?) 찬스였다. 코끝을 스치는 진한 어묵탕의 향이 매우 유혹적이었지만 무심한 듯 한번 쓱 보고는 가던 길을 재촉했다. 산책이라고 표현했지만 산은 산이었고, 시간이 가도 쌀쌀한 가을 날씨에 배고픔이 더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단풍 절경을 감상하며 위로했었다. 다시 간다면 꼭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길을 떠나리라.



달콤한 향기로 기억되는 곳

국립공원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던 청량감과 상쾌한 공기. 그 뒤에 따라오는 달콤한 향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에 갔을 때는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향이어서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계수나무' 향이란다. 마치 솜사탕을 연상시키듯 달한 향기에 혹시 주변에 뭐가 있나 하고 살피기도 했다. 게다가 주변에 온통 보은군의 특산물인 '대추'를 팔고 있었다. 대추라면 삼계탕에 들어가서 국물을 내는 영양식품으로만 알았었는데 생대추와 대추차의 향기가 은은하고 달콤하게 다가왔다. 10월의 쌀쌀한 아침 공기 속에서 따뜻하게 느껴졌던 대추 향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실한 대추를 잔뜩 사 오고 싶었으나 어떻게 해 먹는지 몰라서 관뒀다.



속도보다는 내 취향 것 머물다 가기

사진에서 보듯 우리는 코트에 발 편한 신발 차림으로 속리산에 왔다. 도시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복장이다. 산에서는 잠깐만 서있어도 온갖 종류의 등산복 브랜드와 장비를 볼 수 있다. 또 등산 마니아들은 발걸음의 속도와 보폭부터 다르다. 프로 등산객들이 볼 때는 코트 차림에 느긋한 커플이 특이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목적은 등산이 아니었. 가방 속에도 물이나 비상식량, 등산 도구가 아니라, 카메라와 휴대폰, 그리고 셀카봉이 있는 가을산에 진심인 커플이었다. 세조길을 걸을 때도 법주사를 갈 때도, 산책로 바로 옆에 흐르는 계곡물을 봤을 때도 감탄사를 외치며 카메라부터 들이댔다.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울긋불긋 변해가는 산과 풍경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더라. 관광객 놀이 제대로 한 것 같다. 그래도 잊지 말자. 같은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과 목적은 취향의 차이임을. 언젠가는 나도 멋들어진 등산복과 등산화를 갖추고 속리산 등산을 해보리라 다해 본다.



산채정식과 전통차


뭐니 뭐니 해도 맛있는 식사를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속리산에 오기 전부터 인터넷 검색을 하며 맛집 리스트를 찾아놓았다. 그런데 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너무나 배가 고파서 그냥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괜찮았냐고?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눈물 나게 맛있더라. 역시 시장이 반찬인가 보다. 신선한 산채나물에 한상 가득한 정식은 소박하지만 담백하게 잘 차려져 있었다. 속리산 산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풍과 산채정식이니 할 말 다했다.



그때 더 자주 갈 것을

옥천에 거주하니 좋았던 점 중 하나가 바로 '서울에서 먼 곳이 옥천에서는 그다지 멀지 않다'는 것이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서울 기준으로 거리와 시간을 계산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지방에서는 좀 다른 계산법을 쓴다. 옥천에서 대구, 옥천에서 전주는 그다지 멀지 않다. 국토의 정중앙이라서 그런지 다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일까? 시아버지 칠순 잔치를 아무런 연고가 없는 중간지역 대전에서 하게 되었다. 일가친척들은 모두 서울 수도권과 대구에 사는데 때마침 우리가 그때 옥천에 있어서 가까운 대전으로 모여서 잔치를 했다. 40명이 넘는 친척들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 모였었다. 정말 절묘하고도 특이한 케이스지만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아무튼 내가 옥천에 2년 반이나 거주하면서 속리산은 딱 한 번 봤다는 게 무척이나 아쉬울 따름이다. 물론 아이들이 아주 어리고 옥천살이에 적응하느라 그랬겠지만. 사람의 기억이란 좋은 것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나 보다. 그래서 행복한 과거를 추억하며 오늘을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을이 깊어지는 오늘, 그날의 속리산 사진을 보며 추억과 위로를 얻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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