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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Oct 06. 2020

#15. 엄마는 아파선 안 돼

강철 체력이 갖고 싶다

남편은 퇴근이 늘 늦은 편이다. 회의도 많고, 야근은 더 많은 회사를 다니는 남편 덕분에 나의 저녁은 언제나 바쁘다.

아이에게 저녁밥을 먹이고, 씻기고, 책을 읽어주고, 조금 놀아주고, 자기 전 잠투정을 받아주고 난 이후에야 나의 시간이 조금 생긴다. 그 시간에 나는 어질러진 집을 마저 치우고 씻고 주전부리로 간단한 요기를 한다. 어제는 그 시간이 밤 11시가 되었다.


운이 좋은 날(?)은 저녁 8시에도 알아서 자주는 효자이건만 하필이면 내가 유난히 컨디션이 좋지 않은 어제, 아이는 11시까지 버티다 잠이 들었다. 덕분에 저녁도 건너뛰고 공복인 상태로 타이레놀 두 알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아이를 낳고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건만, 어제 오전부터 두통이 심하게 왔다. 약을 먹으면 괜찮아지겠거니 싶어 타이레놀 한 알을 먹었는데 강도가 점점 세지고 일반 편두통과는 차원이 다르단 느낌이 들었다.


'어? 조금 이상하다.'


고개가 갸웃거려질 정도로 두통이 심해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요즘 아이가 새벽에 계속 깨는 바람에 도통 깊은 잠을 못 자긴 했는데, 그래도 이 정도로 아픈 적은 없었다.

좀 쉬면 괜찮아질 것 같아 오늘 저녁 일찍 퇴근해달라고 부탁하고 퇴근 시간만 기다렸다.

그런데 오늘따라 더 늦는 남편. 미안하다 한다.


회사 일인데 어쩔 수 없지. 나도 회사 생활해봤는걸. 나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냐.


저녁을 아까 먹었어야 했는데, 아이가 눈을 비비며 잠투정을 해대는 통에 밥때를 건너뛰어 버렸다. 시간은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데 이제 와서 뭘 먹기도 좀 그렇고 빈속에 타이레놀을 털어 넣고 나니, 서러움과 속상함이 밀려왔다. 오늘 하루 종일 심한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아이에게 티 내지 않으려 밝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놀아주고, 아이를 업은 채로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던 나의 오늘 하루가 스쳐 지나가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예전엔 조금만 아파도 약 먹고 쉬면 될 일이었는데, 엄마가 되고 난 지금은 맘대로 아플 수도 없다. 하루 종일 웃으며 최선을 다해 놀아줬는데 아이가 잠들기 직전, 체력도 바닥나고 밥도 못 먹어 한껏 예민해진 상태로 '엄마 오늘 힘들다고, 얼른 자라고 했지!'하고 언성을 높여버렸다. 결국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에게 또 화를 내고야 말았다. 하루 종일 잘해주면 뭘 하나. 이렇게 마지막에 화를 내버리면 내 마음도 무겁고, 아이도 행복하지 않은 기억을 안고 잠이 들 텐데. 정말이지 매일 후회하고, 매일 반복되는 패턴이다.


아이의 재롱에 눈물 날 정도로 행복할 때도 있고,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예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엄마가 되는 것을 강요하고 싶진 않다.


1년 전 결혼한 나보다 한 살 어린 사촌동생에게 이모들은 나처럼 빨리 아이 낳아 키울 것을 강요(?)하지만, 나는 언제나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남편과 시간이 날 때면 테니스라는 취미를 함께 즐기고, 퇴근 후 집 앞 포장마차부터 근사한 레스토랑까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사촌동생 부부가 지금 이대로 행복해 보였다. 물론 아이가 생긴 후 행복해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자체로 행복하고 아이를 크게 원하지 않는데 '낳아야 하니까', '남들 다 낳아서 키우니까' 등의 이유로 아이를 갖는 건 언젠가 후회할 것만 같다.


엄마가 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아무리 말해도 부족하다. 체력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정말 많은 노고가 필요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수월해지기보단 늘 새롭고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넘어 산이라는 말이 아이를 키우며 많이 와 닿는다.


힘들어도 쉽게 힘든 티를 낼 수 없고, 아파도 아파선 안 되는 일. 나의 밑바닥을 볼 수 있고, 나의 한계를 시험해볼 수 있는 일. 하지만 그것이 당연하고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으며, 잘해야 본전인 일. 힘들거나 포기하고 싶다고 하면 비난받을 수도 있는 일. 밝고 행복한 꽃밭 같은 이야기만 적고 싶지만 이것이 현실인데 어찌하랴. 


하지만 어떤 일이든 쉽게 가는 건 재미없다. 아이가 날 보며 활짝 웃어줄 때, 아장아장 걸어와 내 볼에 침을 가득 묻혀 뽀뽀해줄 때, 내 행동을 따라 할 때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이보다 소중하고 값질 수는 없단 생각이 든다. 그 잠깐의 행복이지만 나는 그것을 얻었으니, 그만큼의 대가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라고, 쉬운 건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지난 주말, 친정엄마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식보다 손주가 더 예쁘다는 말 왜 하는지 알 것 같아. 정말 예뻐 죽겠어. 귀엽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 돼. 너희 키울 땐 힘들어서 몰랐는데, 나이가 들고나니 알게 되나 봐.'


훗날 아이가 나만큼 자라, 내가 엄마 나이가 되면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할까? 지금은 아이가 예쁘긴 해도, 힘들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데 나중 되면 이 생각을 후회하게 될는지.


아직까지 머리가 아프지만, 다시 웃으며 일어나야지. 내일은 더 많이 웃을 수 있는 하루를 만들어줘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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