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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Oct 05. 2020

#14. 육아엔 뭐니 뭐니 해도 홈드레스지!

아기 낳고 입으려고 산 홈드레스는 여전히 옷장에

최근 남편이 휴대폰을 바꿨다. 지난 휴대폰의 사진을 정리하다 우연히 보게 된 사진에 충격을 받았다. 탱글탱글 세팅한 긴 머리에 짧은 치마, 그리고 뾰족한 구두를 신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출퇴근을 하던 몇 년 전의 나의 모습을 오랜만에 사진으로 보니 '이게 누구야?'싶을 정도로 너무나 낯설었다. 당시의 나는 패션에 딱히 일가견은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예쁜 옷과 액세서리를 하고 나를 꾸미는 게 즐거웠다. 나를 꾸미는 것은 누군가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함이라기보다 스스로 자기 관리하는 것이라 여겼기에, 그 당시의 나는 후줄근하게 다니는 아기 엄마들이 사실 좀처럼 이해가지 않았다.


'아줌마 되면 다 저렇게 후줄근해지는 건가?'

'아무리 바빠도 씻을 시간도 없어? 아기 잘 때 씻고 기초화장이라도 하면 되잖아.'

'나는 나중에 아기 키우면서도 예쁘게 꾸미고 있어야지. 자기 관리하는 예쁜 엄마가 될 거야.'


불과 몇 년 전의 내가 했던 생각들이다. 과장이라고? 전혀.


지금도 내 옷장 안에는 한 번도 입지 못한 홈드레스들이 두어 벌 걸려있다. 재작년 임신한 걸 알게 되고 집에서 쇼핑을 하다 '육아엔 뭐니 뭐니 해도 홈드레스지!'하고 구입한 예쁜 옷들. 하늘하늘한 레이스와 은은한 컬러가 너무 예쁜 그 옷들을 옷장에 걸며 상상했다. 아침에 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일어나 씻고 화장하고 머리도 매만지고 이 옷을 입고 아이가 일어나길 기다린다. 그리고 아이가 일어나면 예쁜 옷으로 갈아입혀 집에서 같이 책도 읽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우아하게 시간을 보내야지. 그리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남편에게 사진을 보내주는 거다.


나의 이런 야무진 꿈은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서까지 계속되었다. 정말이지 철없고 답도 없던 그 당시의 나.

'그냥 거기가 천국이야.',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 집에 오면 못 자.'

날 걱정하는 주변의 육아 선배들이 해주던 조언 따윈 가볍게 무시하고 집에 돌아갈 날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집으로 온 첫날, 이유 없이(물론 이유야 있었겠지만) 울어대는 아기 때문에 홈드레스는 고사하고 의식주마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난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특히나 우리 아들은 소리에 예민한 아기라 조그마한 소리만 들려도 화들짝 놀라 깨버렸다. 안아서 겨우 재워놓으면 작은 소리에 몇 분 지나지 않아 깨버리기를 무한 반복.


"! 진짜 미치겠다."


밥 못 먹고, 잠 못 자는 건 그렇다 쳐도 화장실 갈 시간은 줘야 할 거 아냐!

누가 인내심 테스트라도 하는 듯, 아니면 그동안 나의 자만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누군가 나의 상황을 점점 극한으로 몰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늦게 남편이 퇴근해 잠깐 씻는 그 시간에 처음으로 거울을 봤다. 푸석푸석해진 나의 얼굴엔 웃음기와 생기가 사라졌다. 내가 지금 뭘 입고 있는지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물론 힘들다는 엄마들도 있지만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나나 아이가 유별난가?

나는 왜 모성애가 없지. 아이가 예쁜 지도 잘 모르겠고 힘들기만 하네.

100일 되면 괜찮아진다는데 100일은 대체 언제 오지.

아이 키울 깜냥도 안되면서 왜 아이를 낳아서.


날이 갈수록 자신감이 사라지고 우울한 기분에 점점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홈드레스는 개뿔. 씻을 시간도 없는 통에 남편 오는 시간만 기다리며 시계만 보게 되는 내 모습이 싫었지만, 당시엔 그런 걸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대체 언제 와. 벌써 11시야. 오늘 애기 새벽 5시에 일어났다고. 나 오늘 한 끼도 못 먹고 계속 아기 보고 있어. 왜 똑같은 부모인데 나 혼자만 애랑 씨름해야 하느냐고!"


원래 나는 딩크로 살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너무 좋아하는 남편의 끝없는 설득에 넘어가 결국 건강하고 예쁜 아이를 얻었지만, 아이가 예쁜 것과는 별개로 점점 나를 잃어가는 기분에 하루하루를 견딜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일찍 퇴근해 아이를 봐주고 나에게 저녁 시간의 자유를 선물해주겠다던 남편은 밤 11시가 되도록 감감무소식. 남편도 바깥에서 일하고 가정을 위해 돈을 벌어와야 하니 물론 힘들겠지만, 가능하다면 내가 회사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내일이 전혀 기대되지 않는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 뭐라도 재미난 것을 찾고 싶은데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아이가 백일이 지나고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유모차를 태워 동네 산책을 다니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예쁘고 개성 있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민 여성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을 지나가는 (머리도 감지 않아 모자를 눌러쓰고 후줄근한 옷을 입은)나.

왜 아기 엄마는 늘 후줄근해야 하느냐고 의문을 갖던 예전의 나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을 정도로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의 한두 마디 끼얹는 조언(?)이 나를 더 슬프게 하곤 했다.


"집에서 예쁘게 하고 있어야 남편이 집에 와서도 기분 좋을 것 같아. 화장까진 아니어도 머리는 감고 있어야지."

"너 예전에 예쁜 옷도 많이 입고 잘 꾸몄는데. 아기 낳으니 역시 시간이 없지?"

"살찐다면서 왜 빵이나 떡을 먹어? 한 끼를 먹어도 제대로 차려 먹어야 건강에도 좋지."

"그 브런치인가 거기에 글 쓸 시간에 쉬는 게 낫지 않아?"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이해를 못할 것 같아 '너도 겪어봐, 이년아.' 하는 게 다일뿐이라, 속으로 쌓이고 쌓여 응어리가 졌나 보다. 직장 다닐 때는 멘탈이 꽤 강한 편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작은 소리 하나에도 상처를 쉽게 받는다.


아는 사람이 하는 말에는 그나마 대꾸라도 할 수 있지, 모르는 사람이 보내는 시그널에는 사실 대꾸하기가 쉽지만은 않기 때문에 집에 와서도 계속 곱씹게 된다. 무거운 유모차에 짐을 바리바리 챙겨 카페라도 갈라치면 뒤에서 들려오는 '아, 유모차.' 하며 투덜대는 소리, 따가운 시선. 드라마나 영화에서 과장해 표현한 줄로만 알았던 그 소리와 시선을 느끼고 나니 아기와 밖에 나가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뭐만 하면 맘충, 맘충 해대는 통에 아이까지 욕먹을까 매사에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솔직히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이를 키우며 내가 얼마나 나만 아는 사람이고 부족한 사람이었는지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그런 나를 30년 가까이 키워주신 부모님께도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표하게 되고.


하루 종일 전쟁 같은 육아를 하고도 티 하나 안 나는, 누구 하나 칭찬해주지 않는 나날이지만 그 속에서 소소한 일상의 행복과 감사함을 얻으려 노력 중이다.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고,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날 더욱 사랑하고 인정해주지, 뭐!

겉모습이 좀 후줄근해지고 볼품 없어지면 어때. 난 지금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소중한 한 사람을 키우고 있고,  누구보다 어렵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는데. 돈 많은 억만장자가 나보다 내 아이를 잘 키울까? 비록 하늘하늘하고 예쁜 홈드레스는 못 입어도, 후줄근한 면티에 늘어난 바지를 입는다고 누군가 흉봐도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아름다운 우리 엄마들, 오늘도 힘내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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