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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히 Nov 20. 2021

하루 만에 떠난 1년 여행

순간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엉켜버렸다.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왜 하필 오늘 밤, 그것도 11시가 넘은 이 시간에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건지, 그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내일 아침, 나름 몇 달 동안 준비했던 자격증 면접시험이 있었다. 컨디션 유지한다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막 단잠에 들어서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혹시 문자 받았어?"


자다가 봉창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문자를 받은 게 없어서 뭔 문자를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일 면접시험 끝나고 같이 결혼식장에 가기로 한 지인이었다.


"무슨 문자?"


난, 무슨 결혼식이 취소라도 됐는 줄 알았다. 지인은 무슨 내용인지 말하지는 않고 계속 문자 못 받았느냐, 문자 타령만 했다.


문자 전달해 준다며 전화를 끊었다. 사무실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코로나19 검사하라는 문자였다. 금시초문이었다.


우리 쪽은 확진자와 거리가 좀 있어서 문자를 안 보낸 건가? 아니면 실수로 나를 빼놓은 건가? 별의별 생각들이 다 들었다. 내일 면접을 앞두고 있던 나로서는 문자를 못 받은 게 최선이었다.


전화를 받은 순간, 컨디션 조절은 끝났다. 그냥 문자 안 받았으니 나는 괜찮은 거겠지 그렇게 위안을 하려 했지만, 머릿속에선 이미 전쟁이 났다.


온갖 총성과 포성이 난무하고, 이곳저곳이 풍비박산 났다. 잠을 청하려 해도, 한 번 달아난 잠은 잡을 수가 없었다. 지인은 확진자가 우리 쪽 근처에서 나온 것 같다고 했다.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그렇게 잠과의 사투를 벌이던 즈음, 띵동 하며 문자가 날아들었다. 내일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는, 미리 지인으로부터 전달받은 문자였다.


아, 망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선 두 가지 옵션을 놓고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면접에 갈까, 말까? 결국엔 말까로 결론을 내렸다. 혹시나 애꿎은 남에게까지 피해를 줄 순 없었다.


이번이 아니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뭐 그렇게 절박한 자격증은 아니었지만, 뭔가 목표를 정해서 지금껏 달려온 시간들이 좀 아까웠다. 물론 자신이 넘쳐나진 않았지만, 그 기회조차 날려버렸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그나마 내 장점 중 하나가 신포도를 좋아한다는 거다. 그래, 저 포도는 아마 시었을 거야. 하늘이 아마도 내게 좀 더 준비해야 한다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싸대기를 날린 것 같았다. 아쉬운 마음에 맥주 한 잔 먹고, 그냥 마음 편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포기에 대한 차선의 계획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유혹이 문득문득 일었다.


아쉬움은 이미 면접 시간이 다 지난 후에도 계속됐다. 그냥 갈 걸 그랬나? 그리고 이제 난 차선의 계획들을 위해 이렇게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를 여행한다고 생각하면, 어제 하루는 참 드라마틱한 여행이었다. 하루 만에 1년의 시간이 뒤로 밀린 거였으니까. 그래서 난 그 1년 치 여행을 새롭게 시작하려고 결심했다. 하루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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