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이구 Jul 07. 2024

여름에 드는 생각

바다

여름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다.


여름의 뜨거움이 차라리 바늘처럼 피부를 찌르는 따가움이었다면 좀 덜했을까? 애석하게도 이 나라의 더위는 용광로에서 녹아 흘러나오는 액체 같이 점도가 높으며 후덥다.


내 눈에 비치는 여름에 갇힌 사람들은 하나같이 약에 취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너무나 쉽게 얼굴을 벌겋게 달아 올리며 웃거나 화를 낸다. 너무나 손쉽게 사랑을 나누고; 너무나 만만하게 싸운다. 횡단보도의 하얀 줄무늬를 맞고 튕겨 나온 뾰족한 빛줄기에 다들 표정을 찡그린다. 일그러진 표정 바라보고 있노라면 여름이라는 계절이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들춰내는 대의적인 임무를 맡고 있는 듯하다.


여름에는 다들 녹아 흐른다. 이성이 녹아내리고 판단이 녹아내리고 절제가 녹아내린다. 녹아 떨어진 이 인간 정신의 재료들은 땅에 흐르다 모든 액체가 그러하듯 기화되어 구름 속에 머물다가 때가 되면 비가 되어 내린다. 비가 내리기 전에는 짐승과 같은 행태를 보이다가도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인간이라 불려 마땅한 행위를 한다.


그나마 여름의 가장 좋은 부분을 뽑으라 한다면 당연코 바다다. 바다의 속성은 자유와 영원이다. 바다는 자비로운 성인, 어떠한 죄인이든 개의치 않고 사랑으로 품어주는 초월적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여름으로부터 탄생한 불쾌함, 증오, 분노, 복수심, 그리고 집착 같은 엉켜버린 감정을 모두 바다에 던져버린다. 그런 탓인지 바다의 물도 나의 엉켜버린 감정처럼  끈적거리는 물결을 형성하며 파도친다.


폭염의 때가 오면 우리는 바다로 향해야 한다. 우리 모두 바닷속으로 들어가 인간 정신의 분비물을 쏟아내야 한다. 그제야 우리는 불의에 또 다른 불의를 보태지 않도록 정의에 봉사하며, 명료한 언어를 사용하고, 행복을 위하여 투쟁할 수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