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본보기
모두가 권태를 느끼고 불쾌를 느끼고 불안을 느끼는 사이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 존재는 강아지 밖에 없는 듯 보인다.
발랄하게 꼬리를 흔들고 자신의 하얀 털을 쓰다듬어달라고 치근덕거릴 뿐, 그 어떤 불안한 기색이나 불쾌한 기색도 볼 수 없다.
심지어 무언가 실수를 해서 호되게 혼이 나도 몇 분만 지나면 다시 해맑은 얼굴을 하곤 꼬리를 흔들며 돌아다닌다.
햇빛을 피해 숨어 다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 강아지는 뙤약볕에 배를 까고 태평하게 누워 낮잠을 잔다. 그러다 밥 먹을 때가 되면 당당히 밥그릇 앞에 앉아 기다린다. 강아지에게 있어 정해진 시간에 밥그릇에 사료가 채워지는 것은 아침에 태양이 뜨고 밤에 지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침에 해가 뜨지 않아도 강아지는 푹신하고 안락한 자리를 찾아 몸을 둥글게 말고 잠에 들것이다. 천하태평이다.
탄생부터 부여된 고독과 불안에 평생을 옮매이며 살아가는 인간의 눈으로 강아지를 바라보면 이해가 안 되는 속성이 너무나 많다.
대표적인 속성으로는 바로 인간을 지나칠 정도로 좋아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어미에게도 이 정도로 충성을 다하지 않는데 의아하게도 오직 인간에게만 맹목적인 사랑을 바친다.
외모가 형편없어도, 경제적으로 실패해도, 추악한 내면이 있어도, 재능이 없어도, 그저 자신의 주인이라는 이유로 무한한 사랑을 하는 모습에 큰 경외감을 느낀다. 어떤 성인이 과연 저 하얀 털로 뒤덮은 생명체보다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
만약 사람에게 사랑을 명령한 신이 존재한다면. 그가 강아지를 창조한 이유는 너무나 뻔하고 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