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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이구 Jul 14. 2024

책상 앞에서 바다에 대한 생각

2024-07-10

지금 내 앞에는 짙은 갈색의 인공 나무로 만들어진 책상이 있다. 그 위에는 잘그락 거리는 수십 개의 얼음 큐브들이 들어있는 커피가 놓여있다.


하지만 반나절 전에 나는 바다에 내 다리를 담그고 있었다. 아득히 멀리서부터 밀려온 물결은 하얀 거품을 만들어내며 내 무릎과 반바지 밑단을 조금씩 적셨다. 하지만 바다의 중심 쪽으로 조금씩 걸어가자 바지는 물속으로 완전히 들어갔고, 적어도 내 하반신에 한해서 ‘젖음’은 더 이상의 의미를 상실했다.


다만 내 상반신의 경우 아직 공기에 노출되어 있었다. 내 상반신에 묻은 물방울을 찰나에 낚아채는 바람은 내 피부를 베어낼 듯 차갑게 스쳐지나갔다. 별 수 없이 나는 바다를 안아주듯 두 팔을 벌려 잠수했고 그제야 내 상반신도 ‘젖음’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해버렸다.


젖지 않기 위해 젖음의 근원으로 완전히 들어가야 하는 아이러니이다.


나는 이제 그 근원 속에 있다. 바닷속의 모습은 흐릿했지만 그것은 바다의 탓이 아닌 온전히 내 눈의 잘못이었다. 바다는 분명 선명하고 깨끗하지만 소금기에 붉게 절여진 내 눈으로는 먼지 낀 창문처럼 뿌옇게 보인다. 간신히 바닥의 모래와 수면 위 햇빛의 결, 그리고 유영하는 해조류 한 뭉텅이를 분간한다.


나는 이제 수면 위에 떠있다. 몸을 뒤로 젖히고 폐에 공기를 가득 채어 소금기 가득한 물 위에서 부유한다. 머리만 간신히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파도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한다. 나는 내 몸이 어디를 향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내 시야에서는 오직 하늘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뭍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한 후 다시 폐에 공기를 채워 넣는다. 잠시 뒤 비가 내린다. 그다음 뒤엔 비가 멈춘다. 해가 구름에 가려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한다. 그 어느 것도 영속적이지 못하고 불안정한 변화만을 지속한다. 비가 쏟아지고 햇빛이 쏟아지고를 반복한 하늘은 어느새 무척 지저분해졌다. 뭉게구름 여러 뭉치와 햇빛 여러 가닥이 서로 뒤엉켜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뿜어져 나오질 못하고 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나와 뭍 사이의 거리를 가늠한다. 몸을 뒤집어 자유형으로 헤엄을 친다. 이번엔 방향을 정확히 알고 간다.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나의 영법은 미숙하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히, 그리고 어느 정도 기분 좋은 속도를 낸다.


해변에 다리를 뻗고 앉아 파도가 어디까지 밀려오나 관찰한다. 이제보니 살짝 굴곡이 있는 내 종아리에 비가 내렸다, 햇빛이 내렸다는 반복하지만 그 어느 것도 의미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파도가 내 발목까지 밀려오는지, 무릎까지 오는지, 허벅지까지 오는지, 그것만이 의미를 가져다준다. 나에게 의미를 가져다주지 않는 것에 방해받을 이유도, 인지할 필요도 없다. 이 순간, 오직 나와 파도 사이의 관계만이 모든 것이다.


나는 이제 다시 짙은 갈색 인공 나무로 된 책상 앞에 앉아있다. 나는 눈을 감고 파도의 소리를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다. 그 어느 것도 영속적이지 못하고 불안정한 변화만을 지속한다. 나의 정신은 아직도 해변에 다리를 뻗고 앉아있고 오직 나와 파도 사이의 관계만이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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