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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속마음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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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이구 Jul 30. 2024

페르소나에 대한 생각

높은 기둥

나의 웃음 뒤에는 일그러진 어색이 있다.


눈물 뒤에는 광기 어린 웃음이 있다. 상기된 얼굴 뒤에는 차가운 음모가 있다. 친절 뒤에는 숨겨둔 의도가 있다.


나의 속성은 거짓이다. 다행인 것은 그것은 나만의 속성이 아니라 내가 속한 종, 인류 전체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우리 모두 요조다. 하지만 절대 요조에게 동질감을 느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신과 가면을 철저히 분리시켜야 한다. 파이와 리처드 파커는 다른 존재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떠돈다.


우리는 요조이다. 하지만 동시에 철저히 요조가 아니다. 우리는 리처드 파커이다. 하지만 동시에 철저히 리처드 파커가 아니다.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아니, 환상을 보았다. 사실 잘 모르겠다.


이른 새벽이었고 나는 몹시 피곤한 상태였으니 아마 꿈이었으리라.


거기서 나는 높은 탑을 쌓고 올라갔다. 폭이 좁아 무릎을 접고 겨우 앉아 있을 수 있었다. 탑은 아주 높이 솟아있었다. 구름은 내 아래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거기에는 나 홀로 존재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탑을 쌓아 올렸고 마찬가지로 겨우 그 위에 있을 만큼 폭이 좁았다. 그 좁고 높은기둥 위에서 우리는 자유롭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높이에서 떨어지면 죽을 것이 확실해 보였기에 그 누구도 탈출할 수 없었다.


그 거대한 기둥은 자신의 페르소나였다. 우리가 스스로 쌓아 올린 페르소나, 이제는 너무 높게 쌓아 올린 탓에 벗어날 수 없었다.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수단이었던 페르소나가 이제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매달려야 하는 생존수단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언젠가는 떨어져야 하지 않을까? 가면을 벗은 나를 만나지 않는다면 결코 나를 이해할 수 없지 않을까? 가면을 벗은 나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사랑할 수 없다. 지금은 겁이 난다. 지금은 리처드 파커에게 잡아 먹힌다. 높은기둥에서 추락해 죽음에 이를 것이다. 지금은 “나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우월한 사람이야”라는 믿음으로 나를 지킨다. 나는 죄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의 믿음을 견지한다. 지금은.


그래도 언젠가는 만날 수 있길. 철저히 무너지고, 높은기둥에서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길.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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