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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속마음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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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이구 Aug 04. 2024

가위에 눌린 뒤 든 생각

세상의 추상

불이 꺼진 방, 침대 위에 누워있다. 새벽이고 별은 보이지 않는다. 왜인지 달조차 보이지 않는다. 밤하늘은 어두운 회색 구름이 장막처럼 행성을 덮고 있다.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갑자기 몸이 덜컥하더니 아래를 향해 추락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중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중력이 영향을 끼치지 않는 끝없는 낙하만큼 기분이 좋은 것이 있을까. 나는 끝없이 떨어진다. 바람이 내 피부를 얼릴 듯이 차갑게 감싸 안는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한다. 만약 이 아래 바닥이라는 것이 있고, 결국엔 이 추락 끝에 충돌이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생긴다. 기묘한 감각에 신경들이 혼선을 일으킨다. 감각의 혼란과 어두운 시야에서 나온 불특정함이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그 두려움은 거칠고 기다란 손으로 내 온몸을 움켜쥔다.


나는 아직 침대에 누운 상태로 눈을 감고 있다. 나는 아직 더 낙하할 수 있다. 끝없이 할 수 있다. 영원한 낙하. 불안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가슴을 울리는 쾌락만이 남는다. 이 모든 것이 그저 포근하기만 한다. 중력도 나를 붙잡지 못한다. 충돌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저 이 공허의 허공에서 끝없이 낙하한다. 자유는 포근하구나… 하고 생각한다.


눈을 뜬다. 나는 아직 침대에 누워있다. 나는 지금 중력에게 짓눌려 침대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이것은 영원한 낙하이자 영원한 충돌이다. 다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팔도 움직이지 않는다. 눈알만 간신히 움직일 뿐이다. 간신히 영원한 낙하와 포근한 자유를 누렸건만, 한순간에 사지의 자유를 박탈당한 신세가 되어버렸다. 어둠 속에서 기묘한 움직임과 환상이 보이고, 환청이 들린다. 이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닌 내 상상 속의 일이라는 것을 되새기며 안정을 찾는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이 나의 상상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즐거운 상상을 해보자고 결심한다.


“바닥과 부딪혀 산산이 조각나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아”


환청이 들린다. 누군가 속삭인다. 그제야 보인다. 내 주변은 너무나 빠르게 스쳐 지나가지만 모든 풍경이 놀랍도록 느린 속도로 내 눈 안에 전부 들어온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담긴다. 여러 갈래 나뉘어 흩어지는 은색 별빛, 초록과 보라 사이의 오묘한 색의 구름, 너무나 투명해서 바닥까지 보이지만 동시에 하늘의 모습을 품고 있는 잔잔한 호수의 수면이 보인다. 모든 생물의 움직임이 유연한 곡선의 추상으로 보인다. 누군가 움직인다. 위아래로 잔잔히 움직이는 곡선을 만들며 어디론가 걸어간다. 한 존재의 움직임이 그토록 아름다운지 왜 이제껏 알지 못했을까.


발가락이 조금씩 움직이더니 고개가 돌아간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몸을 움직인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운다. 영원한 낙하를 하며 자유로히 세상의 아름다움을 음미한 정신이 다시 한번 중력에 붙잡힌 채 육체에 결속되었다. 하지만 영혼은 아직 영원한 낙하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그 감각이, 잠시 보았던 그 아름다움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조근조근 두근대는 심장이 향수병에 신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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