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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변한다. 우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언어의 각도 2: 언어의 변화. 신조어.

by 이다이구

"이거 완전 느좋이다~"

"응? 뭐라고?"

"느좋이라고"

"느좋이 뭐야?"

"느낌 좋다고"

"'느좋이다'도 네 글자고 '느낌 좋다'도 네 글자인데 그걸 왜 굳이 줄여?"


언어는 이따금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새롭게 만들어집니다. 기성세대에게 신세대의 변화는 늘 아니꼽게 보이기도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렸을 때 국어 교과서에서는 신조어, 줄임말, 유행어가 의사소통에 혼란을 일으킨다는 이야기, 세종대왕님이 지하에서 울고 계실 거라는 이야기, 파괴되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가득 실려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인지 저도 그렇고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신조어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대학교에서 "Social and Professional Languages"라는 이름의 언어학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 수업은 신조어를 바라보는 저의 시선을 완전히 바꿔주었습니다.


첫 번째, 언어는 늘 변화합니다. 100년 전에도, 1000년 전에도 신세대에 의한 신조어는 계속해서 등장했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한국어도 마찬가지입니다. 100년 사람이 현재 기성세대의 한국어를 들으면 모든 문장, 단어가 신조어로 교체된 것으로 느끼게 될 겁니다. 즉, 지금 기성세대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도 결국엔 (구)신조어의 집합입니다.


두 번째, 언어는 한 방향으로 변화합니다. 언어의 변화에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다만, 현재 기성세대의 불만은 지금의 신조어는 "과하다" 혹은 "부적절한 방향으로 발생한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우리의 직관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전 세계 언어 변화에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몇 가지의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로, 문장과 단어가 짧아진다. 둘째로, 문법이 간편화된다. 셋째로 현시대를 적절하게 표현할 새로운 단어가 발생한다. 이 외에도 많은 특징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 변화의 특징은 비단 (현)신세대에게만 나타는 것이 아닌, 역사적으로 모든 세대에게 발생했던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즉, 기성세대가 느끼는 "과한" 또는 "부적절한 방향으로 발생한" 언어변화는 자신들의 세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너희 기성세대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냥 넘어가라" 느낌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어의 변화는 그 자체로 수많은 이점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먼저, 언어변화는 한 세대를 묶어주는 문화적 결속의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세대 간 갈등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 또한 아주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이지만, 세대 내의 갈등보다는 그럭저럭 넘어갈만합니다. 세대갈등이 지나치게 심화되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대갈등이 없었던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었고 이는 자연스러운 인류사의 흐름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신세대는 늘 기성세대의 기대에 못 미치고, 기성세대는 늘 신세대에게 벗어나고픈 틀이 되어왔습니다. 결국 신세대가 기성세대를 교체하고, 기성세대가 된 (구)신세대는 또다시 생긴 신세대에게 교체되는 방식으로 인간 사회는 자연스럽게 발전해 왔습니다. 이는 자연스럽다 못해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할 사회현상입니다.


하지만, 역사적, 국가적, 사회적 혼란 중 상당수는 같은 세대 내의 갈등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 세대가, 특히 신세대가 결속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분열하게 되면 그 사회는 결국 파국으로 치닺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에이, 뭐 신조어가 세대를 규합하는 도구가 된다고? 비약이 심하네"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언어의 힘은 우리의 직관을 아득히 뛰어넘습니다. 해외여행 중 한국어가 들리면 왠지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든 경험이 한 번쯤은 다들 있을 겁니다. 서울에서 나와 같은 지역 사투리를 사용하는 사람을 봐도 반갑고요. 겉모습은 외국인이어도 한국어를 능수능란하게 잘하면 경계심이 사라지고 대견한 마음까지 들기 마련입니다. 한때 언어는 우리 부족과 다른 부족을 구분 짓는 도구이었습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조어는 사회구성원 사이에서 일종의 암호로 사용됩니다. 신조어가 공중파 방송에도 소개가 되고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 그 신조어의 유행이 갑자기 끝나고 신세대가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현상을 자주 보셨을 겁니다. 이는 신조어가 일종의 커뮤니티 안에서 "암호"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지금도 특정 커뮤니티에서 자신들의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단어 혹은 언어표현들을 만들어 사용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을 겁니다.


암호를 알고 있는 사람, 이 암호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같은 편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신조어는 하나의 세대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아주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한 세대 안에서도 분열이 심각해지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신조어 사용을 권장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신조어는 시대를 이해하는 창입니다. 흔히들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우면,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게 된다."라고 합니다. 언어는 한 사회의 문화를 담고 있는 귀중한 자원입니다. 또한 저번 에피소드에서 언급했듯 언어는 생각의 도구입니다. 과연 우리가 백 년 전의 어휘만 사용해서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나아가, 앞으로 계속 발전할 수 있을까요? 아마 힘들 겁니다. 새로운 표현은 신세대의 감정, 정서, 시대정신 등을 내포하고 있고, 새로운 단어는 한 시대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아주 귀중한 도구입니다.


"이게 뭐 한국어야? 외계어야?"하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신세대가 사용하는 표현과 단어를 연구하고 관찰하면 자연스레 시대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 언급되었던 "느좋"이라는 단어는 "느낌 좋다"라는 한마디를 형용사화 시킨 단어입니다. 저는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어차피 '느좋이다'라고 이야기할 거면, 그냥 '느낌 좋다'라고 말하면 되는 거 아니야? 어차피 둘 다 네 글자인데"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신세대들은 "느낌 좋다"라는 이 한마디를 반드시 형용사화 시켜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느좋은 단순히 느낌 좋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인터넷에 느좋, 느좋남, 느좋녀, 느좋코디 등을 검색하면 느좋이 어떠한 뜻을 담고 있는 단어인지 점차 이해가 되기 시작할 겁니다. 왜 우리가 이런 걸 알아야 하냐고요? 우리가 굳이 느좋코디를 따라 옷을 입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신세대들의 미적 기준, 트렌드, 추구성 등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의 이해도는 우리는 더 깊고 최신화된 사유로 이끌어줍니다.


쉽게 말해 "알아서 손해 볼 게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이번 에피소드의 내용입니다. 기성세대는 이 글을 읽고 약간 불편한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어의 변화가 자연스러운 일이고 권장되어야 하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차피 막으래야 막을 수도 없습니다. 언어의 변화는 필연적이니깐요. 하지만 다음 에피소드는 기성세대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로 가져오겠습니다. 왜 우리는 사라져 가는 단어를 기억해야 하는지,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독해력과 어휘력 문제가 왜 심각한 문제인지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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