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한 이야기들
이번 에피소드를 마무리하며 주제를 무엇으로 정할까 고민이 많았다. 사실 이번 시리즈는 용두사미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정신없이 바쁜 시기를 보냈고 브런치에는 손도 대지 못한 기간이 길었다. 초반에는 나름 플롯라인도 열심히 구상하고 각 주제에 대해 나름 깊게 조사를 했지만 중간에 쉬는 기간이 길어짐으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더라?" 하며 이전 에피소드를 다시 읽어보아야 할 정도로 흐름을 놓쳤다.
이미 흐름을 놓친 이 시리즈를 억지로 끌고 가기보다는 차라리 여기서 마무리를 하고 다음 시리즈를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이번 에피소드는 "아 이런 이야기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던가 미흡한 조사로 인해 놓쳤던 이야기들을 해보려고 한다.
오히려 이 에피소드가 시리즈에서 가장 풍성한 에피소드가 될 수도 있다.
첫 주제는 사랑이었다. 사랑은 내가 평소에도 자주 고민하는 주제이다. 인류가 직면한,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방법이 결국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는 결코 쉽고 뻔한 해결법이 아니다.
우리는 보통 사랑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을 하도록 강제된다. 우리의 사랑은 대게 수동태인 것이다.
자, 여기 귀여운 강아지가 보이는가? 내 핸드폰 배경화면이기도 한 이 강아지는 우리 집 강아지 비비이다. 나는 이 강아지를 내 의지로 사랑하지 않는다.
비비가 저 땡그란 머리와 검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 나는 비비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의지에 의한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강제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사랑에 빠진다. 난류에 휩쓸려 소용돌이에 의지와 상관없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돛단배와 같이 말이다. 내가 말하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해결법은 이런 종류의 사랑이 아니다.
정말 사랑할 것 단 하나도 없는 존재도 나의 의지로 사랑할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말하는 진정한 사랑, 능동적 사랑이다.
다음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 기다" 이 이야기는 어느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지 몰라서 미루고 미루다 결국 쓰지 못한 주제가 되었다. 그렇지만 한 번쯤은 꼭 소개를 하고 싶었다.
이 이야기는 하이데거의 "심려"개념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세계 내 인간 (Being in the world)"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은 '나'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은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심려에는 두 가지의 하위개념이 존재하는데 바로 도구와 관계를 맺는 고려와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배려이다. 우리가 집중해서 살펴볼 것은 배려인데, 배려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먼저 해방적 배려다. 이는 타인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배려이다. 이는 타인이 스스로 가능성을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관계이다. 해방적 배려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타인의 주체성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지배적 배려다. 이는 타인의 가능성을 빼앗는 방식의 관계다. 과보호적인 부모가 전형적인 지배적 배려의 예시이다. 과보호적 부모는 자녀의 삶을 대신 결정하고 스스로 가능성을 실현할 기회를 빼앗는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가장 큰 특성은 바로 "규정불가능의 존재"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지배적 배려는 타인을 규정해 버리는 철학적으로 아주 위험한 행위이다. 이는 곧 지배적 배려의 대상을 사물화 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 너무나 당연하고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과연 실생활에서 그렇게 살고 있을까? 친구가 고민 상담을 할 때에 우리는 조언이랍시고 그 사람의 행동을 대신 정해주지는 않는가? 정말 좋은 친구라면, 그 친구를 존중한다면 우리의 조언은 그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것에서 멈춰야 한다.
지배적 배려에 대해 우리가 조심해야 할 점은 우리가 아끼는 사람일수록, 가까운 사람일수록 우리는 그들에게 지배적 배려를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좋은 방향으로 그들을 강제하더라도 이끌고 싶은 욕망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나중에 나한테 고맙다고 할 거야." 라며 말이다. 하지만 스스로 주체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수도 없는 사물로 만들어놓고 감사까지 받으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수 있다. 그 동기가 아무리 선한 마음에서 시작되었다한들 말이다.
하이데거의 심려, 고려, 배려는 아주 흥미로운 주제이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더욱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이 시리즈의 세 번째 주제는 아름다움이었다. 가장 아쉬운 주제이기도 하다. 쓰고 싶었는데 쓰지 못한 주제가 여럿이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바로 생물학적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름다움이란 사실 생물학적으로 코딩되어 있는 개념이라는 이야기이다.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의 저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아래와 같이 이야기했다.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이라는 개념과 매력적이라는 느낌이 수천만 년 동안 자연선택을 거치며 조형된 프로그램과 단단히 연결되어 조종당하고 있음을 몰랐을 것이다"
남성들이 생리 중인 여성에게 더욱 매력을 느낀다는 실험결과는 이제 꽤 유명해졌다. 위에서 언급한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에서 비슷한 실험이 소개된다. 바로 여러 장의 여성 얼굴 사진을 나열하고 그중 몇 개는 눈동자 크기를 2밀리미터 확대한 것이다. 그러자 남성들은 일관적으로 눈동자가 커진 여성들에게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 중 "눈동자 크기가 2밀리미터가 더 커서 더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자신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특정 여자에게 더 매력적으로 끌렸던 것이다.
같은 메커니즘이라면 아름다움을 창조해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간에 대해 더 공부해야 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아름다움은 작가의 손이 아니라 독자의 생물학적 설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사실 가볍게 지나친 보이지 않는 것 시리즈에서 "상상"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신과 인간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어쩌면 그 답이 "꿈"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신도 불안할까?" 에피소드에서 잠깐 설명했지만 신이 있다면 그는 100% 본질적인 존재일 것이다. 즉 만약이 없다.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때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존적 존재인 인간은 꿈을 꾼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꿈꾼다. 어쩌면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망상을 한다.
그런 맥락에서 인간이 신의 능력에 가장 가깝게 모방할 수 있는 능력은 계획일 것이다. 미래의 일들을 미리 계획하고 그것을 실제로 이루어가는 과정은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신의 능력을 모방하는 인간의 행위로 볼 수 있다.
반면, 그럼 가장 인간다운 일은 무엇일까? 가장 인간스러운 능력은 상상이다. 일어나지 않은, 않을, 않았던 일에 대해 생각하고 그곳에서 살아 숨 쉬는 것, 그것이 상상이다. 사실 이렇게 글자로 보면 너무 미련해 보이는 행동이다. 하지만 이 행동에서 우리는 수많은 발명품과 예술이 등장했다. 가장 인간다운 행위에서 가장 인간다운 결과물이 나왔다.
너무 흥미로운 이야기이지 않은가? 하지만 아쉽게도 이 논의를 더욱 확장해 가는 과정에서 너무 복잡하고 내용이 난해져 결국 시리즈에 포함되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이야기에 대해서도 다뤄보도록 하겠다.
가볍게 지나친 보이지 않는 것은 이렇게 끝났다. 이 프롤로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시리즈의 목적은 어떤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 주제에 대해 최대한 다양한 각도를 제공함으로써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있었다.
우리가 가볍게 지나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한 번 생각해 보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흥미롭고 가치 있는 시간이 될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에 이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목적을 가진 또 다른 시리즈를 시작할 것이다. "거인의 문장"이 끝나고 "거인의 문장 2"가 시작된 것처럼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새로운 시리즈에서는 위의 글감들을 더욱 확장시키고 다듬어 소개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