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삶

진짜 예술가의 작품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by 이다이구

최근 생일선물로 인디고 서점 기프트 카드를 받았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종이책을 사러— 평소에는 보통 e-book으로 책을 읽습니다—서점에 방문했습니다. 서점에 방문하는 것은 늘 설레는 일입니다. 본래 쇼핑을 즐기는 성격이 아닌데도 서점만큼은 그저 둘러보기만 해도 들떠집니다.


서점을 둘러보니 두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권은 릭 루빈의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이라는 책이었고, 다른 한 권은 윌터 아이작스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책이었습니다. 두 권 모두 예술가와 창의력에 대한 내용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필 이러한 책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요즘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예술가의 창의력이 궁금했나 봅니다.


두 책 중에 무엇을 고를까 서점 매대 앞에서 한동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목차도 읽어보고 서평도 찾아보았습니다.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은 딱딱한 하드 커버에 빠르고 짧은 리듬을 가진, 이를테면 좀 더 트렌디한 책입니다. 반면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물렁물렁한 소프트 커버에 700 페이지라는 어마무시한 분량을 자랑하는 벽돌책입니다.


마치 같은 한식이더라도 순두부찌개와 비빔밥이 전혀 다른 것처럼 비슷한 주제의 책이라도 서로 너무나 다른 맛을 가지고 있어 더욱 선택에 곤란함이 생깁니다.


만약 어제 발행한 <거인의 문장> 시리즈를 보셨다면 제 선택이 무엇이 되었는지 알고 있을 겁니다. 오랜 고민 끝에 저는 릭 루빈의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를 선택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니라 제 독서 속도였습니다. 저는 남들보다 책을 읽는 속도가 느립니다—제 독서 속도를 많은 사람과 비교한 적은 없어서 객관적으로 제가 느린 건지 아니면 제 주변 사람이 유독 빠르게 읽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특히, 제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된 책이라면 더욱 느려집니다. 영어책은 1시간에 평균적으로 50 페이지 정도 읽습니다. 그런 제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700페이지는 어쩔 수 없이 부담스럽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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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종이책을 산 뒤로 제 하루에 새로운 루틴이 생겼습니다. 바로 일어나서 먼저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를 1시간 동안 읽는 것입니다. 하루에 반드시 딱 1시간만 읽습니다. 너무 빨리 읽어버리면 아쉽다는 그런 유치한 마음 때문입니다.


최근에 새롭게 하는 또 다른 일도 있습니다. 바로 단편소설을 쓰는 것입니다. 어느 공모전에 출품할 생각도, 출판에 도전할 생각도, 브런치에 발행할 생각도 없습니다. 사실은 지금까지 언젠가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도통 재능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실천의 단계까지 가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16장짜리 단편 <꽃>을 탈고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보여드릴 정도는 아닌 것 같아 그냥 창고에 처박아두었습니다.


라는 다자이 오사무가 쓴 편지에 왠지 모를 위로를 받아 며칠 전부터 잠에 들기 전에 약간의 시간을 투자해서 단편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이 행위의 목표는 하나의 완성된 단편소설을 제 창고에 처박아두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새로운 루틴 때문에 예술가의 창의력이 어떤 것인지, 예술가의 삶에 궁금증이 생겼나 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창조적 행위: 존재의 이유> 페이지를 넘기던 중 한 문장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예술가의 작품이 결과물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예술가의 작품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We tend to think of the artist's work as the output. The real work of the artist is a way of being in the world.


작품활동을 해야지 예술가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도, 직장인도, 주부도 모두 예술가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술가의 삶만 산다면 말입니다. 예술가의 삶이라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는 삶입니다. 그것은 그림이 될 수도, 조각상이 될 수도, 음악이 될 수도, 요리가 될 수도, 일기가 될 수도, 누군가와의 대화가 될 수도, 아니면 어떤 행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세계를 느끼고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또 그 세계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밖으로 표현하는 삶을 산다면 누구나 예술가라 불릴 수 있습니다. 같은 논리라면, 출판을 하지 않더라도 작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나의 세계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글로써 표현한다면 말입니다. 비록 그것이 제 창고에 처박히더라도, 계속해서 창작행위를 지속한다는 그 자체로, 그런 삶을 산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생깁니다.


채식을 잘 못하는 채식주의자는 없고, 채식을 잘하는 채식주의자도 없습니다. 어불성설입니다. 오직 채식주의사의 삶을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작품을 남겨야지, 출판을 해야지, 개인 전시회를 열어야지만 예술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술가의 삶을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문장수집가는 오늘도 문장을 수집합니다.


우리는 예술가의 작품이 결과물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예술가의 작품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We tend to think of the artist's work as the output. The real work of the artist is a way of being in the world.


이 문장은 이제 제 노트에 적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 저도 예술가의 삶을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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