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내 약점

나의 약점은 나에게 소중하다

by 이다이구

어느 날 저녁, 침대에 홀로 누워 아나톨 프랑스의 "에피쿠로스의 정원"을 읽고 있었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은 필사할 가치가 있는 문장이 아주 많이 흩뿌려져 있는 좋은 책입니다. 밤중에 오랜만에 집중해서 독서를 하던 중 문뜩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와 하이라이트를 했습니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내면에는 신이 될 소질이 조금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약점은 나에게 소중하다. 나의 존재 이유만큼이나 나의 불완전함에 애착을 느낀다.


왜 이 문장에 하이라이트를 쳤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이 문장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조차 불분명합니다. 나중에 문장수집노트에서 이 문장을 발견했을 땐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하고 고민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약점이 정말 없다면, 약점이 없다는 사실이 곧 약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약점은 곧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약점 때문에 자책을 하고, 후회를 하고, 스스로 답답해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아나톨 프랑스의 문장은 기묘합니다. 약점이 소중하다니, 심지어 나의 존재 이유만큼이나 나의 불완전함에 애착을 느낀다니. 이게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문학적인 표현이겠거니 하고 넘어갑니다.


저는 캐나다에서 살고 있습니다. 요즘 매주 토요일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알려주는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급여를 받고 있으니 아르바이트라고 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외국인 아이들도 몇 있고 캐나다에서 태어난 교포 2세 아이들도 있습니다. 딱 말 안 듣기를 좋아하고 반항에서 즐거움을 찾는 나이인지라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놓고 선생님에게 반항을 하는 아이들도 아이는 아이인지라 퍽 사랑스럽습니다. 그 사랑스러움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고찰해 보았더니 그들의 어리숙함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어리숙한 한국어 발음, 어리숙한 몸짓, 어리숙한 장난, 그리고 어리숙한 반항, 무엇보다 어리숙한 생각. 그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내며 웃게 됩니다.


이제 슬슬 단풍이 지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단풍구경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보입니다. 우리가 단풍에 왜 애착을 느끼는지 생각해 보면 그것이 곧 떨어져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겨울에 내리는 눈에 애착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은 쉽게 녹아 사라지기 때문이죠. 꽃에 애착을 느끼는 이유는 꽃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니체를 사랑하는 사람은 많이 보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를 사랑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정말로 우리가 무언가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 무언가의 약점 때문입니다. 우리는 완벽한 존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존경하며 올려다볼지언정 그들에게 애착을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함에 질색을 하면서도 동시에 불완전함과 사랑에 빠집니다.


우리는 그저 같은 원리를 나 자신에게도 적용하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약점을 없애고 싶고 완전무결해지고픈 욕구는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존재가 정말 신 말고는 존재할까요?


우리 모두가 완전무결해지면, 즉 신처럼 된다면 '나'라는 존재는 어디로 사라지게 될까요. 어쩌면 정말로 우리의 특색이라던가, 특출함이라던가, 유일무이함이라던가 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약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나만 유독..." 하면 자책하지만, 이는 동시에 자신의 유일무이함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나톨 프랑스는 자신의 약점뿐만 아니라 고통도 소중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고통이 존재해야 선함과 인생이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세상에서 고통이 사라진다면 '선함'은 그 가치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더하여 우리의 인생도 가치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고통은 말 그대로 고통스럽지만 우리의 인생을 빛내주는 신성한 존재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약점이 없다면 나의 존재, 그리고 나의 강점도 모두 의미를 잃을 것입니다. 나의 약점이 있기에 나의 강점은 의미가 생깁니다. 나에게 약점이 없다면 로보트과 다를 것이 없을 겁니다. 약점은 나의 존재를 특별하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나의 약점은 다른 사람과 나를 구별해 주는 아주 고마운 특성입니다. 말 그대로 나의 약점에, 나의 불완전함에 애착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약점과 마주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랑한다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 문장 수집 노트에 이 문장을 적고 꾸준히 읽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내면에는 신이 될 소질이 조금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약점은 나에게 소중하다. 나의 존재 이유만큼이나 나의 불완전함에 애착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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