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이구 May 12. 2024

별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다

별을 보려면 어두운 곳으로 가야한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있었다.


작은 방에 어울리지 않는 큰 침대. 허름한 방에 어울리는 망가진 침대이기도 했다. 가만히 누워 어딘가 바라보고 있었다. 내 시선이 향하는 곳이 천장이었는지 창문이었는지 까먹었다. 아마 당시의 나 조차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들어 의미 없이 전원을 켜보았다. 현대인의 고질적인 버릇. 시간을 확인하고픈 마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핸드폰으로 무엇을 할 심산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질적인 버릇이 제 할 일을 해냈다. 친구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2 건이 와있었다. 공공장소에서 소리가 크게 울려 창피를 얻지 않기 위해 평소에 무음으로 해놓는다. 아니다. 그건 부차적인 이유였다. 근본적인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몰래 핸드폰 하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부모님이 나의 은밀한 범죄현장에 다가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무음으로 해놓는 것이 습관화되어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놓았던 것 같다.


이유야 어떻든 나의 통화기록에는 유난히 부재중이 많다. 덕분에 이리저리 잔소리도 많이 듣는다. 그들의 성화에 못 이겨 무음모드를 꺼놓아도 어느샌가 나의 핸드폰은 무음모드로 바뀌어있다. 무의식적으로 다시 무음모드를 해놓는 것 같다.



랄프 왈도 애머슨이 내가 어딜 가든 나의 거인은 함께 간다고 했던가(자기신뢰 中). 나는 어딜 가든 핸드폰을 무음모드로 바꾸려는 나의 거인이 함께 다닌다.


"여보세요? 전화했었어?"

"어떻게 넌 전화를 한 번에 받는 적이 없냐."

"미안, 무음모드였네."

"그것 좀 바꾸라고"

"이상하네... 분명 무음모드를 꺼놨는데 말이야. 무튼 왜 전화했었어?"

"지금 뭐 하는 거 있어?"


가만히 누워서 창문인지 천장인지를 바라보고 있다고 말할까 생각했지만 금세 마음을 바꿨다. 그러한 행위는 나에게 있어 확실하게 '뭐 하는 것'의 범주에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 범주에 속하지 않는 듯하다.


"여보세요?"

"아 미안, 뭐 좀 생각하느라. 아니, 지금 하는 거 없어."

"그럼 별 보러 갈래?"


정말 낭만적이지 않을 수 없는 대사이었지만 내 동성친구에게는 그다지 듣고 싶은 말이 아니기도 했다.


"지금?"

"아니 한두 시간 있다가? 더 어두워지면."


시계를 확인했다. 저녁 8시 이 자만 눈이 내리는 계절이라 밖은 이미 충분히 어두웠다. 하지만 이걸로는 충분치 않는가 보다.


"음..."


선택의 순간. 이대로 침대에 누워 멍 때리기, 혹은 별 보러 가기. 2시간 뒤면 10시... 별보러 갔다가 오면 12시는 넘을 것이다. 내일 일찍 일어나서 일하러 가야하는데...


"여보세요?"

"그래 보러 가자. 어디로 갈 거야?"

"가장 어두운 곳으로 갈 거야."


알고 보니 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을 위한 사이트가 존재했다. 그 사이트는 기본적으로 지도를 보여주는데 맛집, 도로, 최단루트를 알려주는 지도가 아니다. 지도는 다양한 색깔로 색칠되어 있었다. 빨간색부터 검은색까지 빈틈없이 칠해져 있는 지도는 각 지역의 어두운 정도를 보여주었다.


친구는 우리가 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어두운 지역을 찾아 손으로 가리켰다. 과연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보라색으로 색칠되어 있었다. 별을 보려면 가장 어두운 곳으로 향해야한다. 실제로 가보니 바로 앞도 잘 보일 정도로 어두웠다. 이렇게 어두운 곳은 철원의 산속에서 철야훈련을 할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철야 훈련이 정말 힘들었다.'는 문장만이 기억나지만 정작 훈련이 힘들었던 시각적 기억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보이는 기억은 오직 철야훈련 중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밝게 빛나던 별이다. 그 별에서 쏟아져 흐르는 성광은 많이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내 머릿속에 들어와 나가질 못하고 있다.  그 빛은 추억하기 위해 눈을 감을 때 눈 안 쪽에서 뿜어져 나와 닫혀있는 나의 눈꺼풀 안 쪽을 밝게 비춘다.


"어! 별똥별이다!"

"봤어?"

"봤습니다!"

"어디 어디?"

"이미 지나갔지 바보야"

"아이씨! 난 못 봤어!"

"소원 빌었어?"

"너무 순식간이었어"

"와 별똥별 처음 봤습니다."

"나도 나도"


별똥별 하나에 수군수군, 축축한 흙바닥에 누워있는 군복 입은 청년들의 어린아이처럼 들뜬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가장 어두운 곳에서 별은 우리를 마중 나온다. 알베르 카뮈는 세상은 우리에게 불친절하다고 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이방인 中).


그럼에도 이 세상은 어두운 곳에서 별이 더 밝게 빛나게 한다. 어두워질수록 더욱 밝게, 점점 더 밝게, 그러다가 가장 어두운 곳에서 우리가 헤맬 때 가장 밝은 별들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


친구와 함께 별보러 간 곳

가장 어두운 곳에 서있다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면, 누워보자. 하늘을 바라보라. 어떤 별이 가장 밝게 빛나고 있는지 확인해 보자.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어두운 곳에 왔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별을 보려면 가장 어두운 곳으로 향해야한다.


별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다.




이전 08화 바닥을 보면서 걸으면 그림자가 따라온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