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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륜 자전거.

_외출.

by 롤빵

나는 아이를 자꾸 바깥에 노출시키기로 했다.


낯선세계를 두려워하는 아이에게, 집말고 바깥도 재밌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우선 아이가 관심 갖는 일들부터 시작해야 했다.

바깥에서 하는 것 중에 아이가 관심 가질 만한 일들이 뭐가 있더라...


우리 집 앞엔 넓은 공원이 있었다.

거대한 분수대와 광장도 있었고 나름 오락시설을 갖춘 건물도 가까이 있었다.

광장엔 봄, 가을이면 소풍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고 여름엔 분수대에서 물놀이하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아이는 그곳에서 느긋이 소풍과 물놀이를 즐기는 걸 좋아했다.

그러나 지금은 겨울.. 물놀이도 소풍도 즐길 수 없는 계절이었다.


그래도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집에서 계속 불안해하고 유튜브를 찾는 것보다 생각의 전환이 될 것 같았다.


공원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가끔 자전거를 타는 사람과 산책하는 사람이 전부였다.

우리 가족도 보통 산책용으로 공원을 갔지만, 광장에서 다 같이 자전거를 타본 기억은 없었다.

아이는 가끔 광장을 누비는 4륜 가족 자전거를 타고 싶어 했다.

'타볼까?'


나는 즉시 4륜 가족 자전거를 빌렸다.

아직까지 보조바퀴가 없는 두 발자전거를 배우지 못한 아이에게 자전거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다.


'자전거가 재밌어지면 자꾸 바깥에 나오자고 하겠지?'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할 때 한 번을 못 태워주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타게 해주는 것 같아

찔린 마음은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노란 4륜 자전거는 알록달록 바람개비와 작은 우산 등으로 귀엽게 앞을 꾸며놓았고,

맨 앞 작은 자리엔 유아 한 명 정도가, 뒤쪽 3자리엔 어른과 어린이가 앉을 수 있었다.

아이와 나란히 뒷자리에 앉고 보니 실감이 났다.


나는 왼쪽 주페달과 방향을, 아이는 오른쪽 보조페달과 자전거 벨을 맡았다.

아이는 짧은 다리로 페달을 밟으려 안간힘을 썼다. 잘 닿진 않았지만 승부욕이 발동한 것 같았다.


우리는 힘껏, 하나 둘 하나 둘 보조를 맞추며 좁을 길을 빠져나가 광장으로 진입했다.

합이 맞으며 속도가 오르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집 안에 있다면 몰랐을 햇볕이 우리를 감쌌다.

상쾌한 공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나오길 잘했다 싶었다. 아이의 표정도 밝아보였다.


점점 빠르게 페달을 밟았다. 나는 마치 스포츠 중계를 하듯 떠들었고 아이도 덩달아 흥이 올라보였다.

아이의 반응에 힘이 난 나는, 조금이라도 더 재밌게 해주고 싶어 약간의 둔턱이 있는 오르막길을 올랐다.

그러나 경사 30도 정도 되는 둔턱은 생각보다 고행이었다.

평소 걷기 외에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지라, 허벅지가 후달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짧은 다리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헉. 헉..'


내 숨은 가파르게 차올랐고, 아이는 깔깔거렸다.

내가 거친 숨소리를 낼 때마다 아이는 스포츠 캐스터처럼 내 상태를 전했다.


"네 엄마씨~ 갑니다 갑니다 갑니다~!"


그렇게 겨우 둔턱 정상에 올라 내리막길을 달릴 때의 짜릿함이란..!


"도비 이즈 프리이이이이이이----!!!!!!"


해리포터의 도비가 된 마냥 무한한 해방감을 느꼈다.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우린 소리를 지르며 고행과 짜릿함을 몇 번이나 반복하며 신나게 놀았다.

오래간만에 듣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어찌나 반갑고 또 미안하던지..

나는 일을 많이 하긴 했지만 아이를 재밌게 해주는 능력은 있어서 어릴 때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나 개그에 아이는 숨넘어가게 웃곤 했었다. 그러나 최근 두 달간 집안에는 정적만 감돌았었다.

세 번째 보작 스트레스로 번아웃이 왔었던 내 상태도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행복은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왜 모르고 살았을까?'


나는 없는 힘을 쥐어짜 몇 번이나 둔턱을 오르내렸다.

허벅지를 불태웠던 1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어두웠던 아이의 표정이 오랜만에 밝아보였다.


이후로 나는 아이가 외출하고 싶어 할 때면 제일 먼저 4륜 자전거를 탔다.


사진출처 _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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